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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페라의 유령 (한글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52
가스통 르루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연극에 문외한이다. 연극은 왠지 나와 어울리지 않다. 이제껏 본 연극이라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대학생들의 졸업작품 몇 편 본게 전부다. 연극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연극은 나하고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오페라의 유령' 은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고 꼭 한 번은 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그리고 몇년전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관람할 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어느날 우연히 친구집을 들렀다가 먼지 낀 서재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다. 친구를 찾아간 목적도 잊은채 책을 읽어 나갔다. 천상의 목소리와 악마적인 건축가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선천적인 기형으로 지하실에서 숨어 살아가야하는 비운의 주인공 에릭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다에의 애틋한 사랑이 중심인 연극과는 다르게 이 책은 다소 추리 소설적인 섬뜻함과 스릴이 군데군데 장치되어있고 프랑켄쉬타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드라큘라, 미녀와 야수류의 다소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페라의 유령, 아니 정확히는 '오페라 극장의 유령' 은 처음에 책을 접하기 전에 상상했던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 웅장한 오페라와 선 굵은 연기자들의 혼신을 다하는 연기속에서 틀림없이 그보다 더한 감동을 얻으리라고 예상했었지만 '이큐, 아이큐, 제이큐' 모두 보통이하의 지능을 자랑하는 나의 상상력으로는 활자화된 책 속의 내용을 충분히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마치 서로 다른 내용을 책 한권으로 엮어 놓은 것처럼 전혀 다른 두 개의 내용, 극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헤프닝과 샤니 자작과 크리스틴의 러브 스토리, 을 읽으면서 이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작가의 의도였을까? 라는 물음에 빠졌었다.
중반부에 이를 수록 등장인물들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에릭과 극장의 두 지배인간의 갈등, 샤니 자작과 크리스틴 간의 갈등,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갈등, 하지만 모든 갈등요소의 원인은 가면을 뒤집어쓴 비운의 사나이 에릭으로부터 시작한다. 종반부로 갈수록 그들의 갈등은 조금씩 해결이 되지만 '극장의 2층 5번 좌석' 의 비밀처럼 의문에 둘러싸인 극장 건물 구조에 대한 실마리를 접하게 되면서 앞서 읽었던 내용을 다시 읽어 봐야 하는 이상한 독서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과연 이 요상한 책을 계속 읽어야 할까! 잠시 책을 멀리했다.
며칠 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책을 손에 들었다. 페르시아인과 라울(샤니 자작)의 극장 탐험기다. 에릭에 의해 납치된 크리스틴을 구하기 위해서 이들은 온갖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파리 극장의 지하로 내려간다. 악마적인 건축가의 재능을 타고난 에릭은 이들을 가볍게 위험속으로 빠트리고 크리스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예냐 아니오냐! 수많은 파리시민의 생명이 그녀의 한 마디에 달려있다. 지하실에 숨겨둔 수천톤의 화약이 그의 최후의 선택이었다는 설정은 다소 황당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차라리 크리스틴이 '아니오.' 를 선택함으로서 유령의 악마적인 면을 더욱더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오늘날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연극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크리스틴은 에릭을 선택하고 지하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속에서 헤매다 정신을 잃은 페르시아인과 라울은 겨우 목숨을 구하고...이후의 이야기는 아직 연극과 책을 접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말을 아끼겠다.
선천적인 기형을 타고난 에릭, 그의 악마적인 행동을 놓고서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그를 약간은 동정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태어나자 마자 부모마저도 외면해야했던 그의 끔찍한 외모는 그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나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럴수록 그는 점점더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지하세계만이 그의 유일한 평화이자 안식처였을것이다. 그만큼의 기형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그보다 더한 후천적인 기형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의 외로움은 아닐테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혼자만의 지하실에서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먼 훗날 언젠가 그 답답하고 삭막한 지하실 좁은 문을 활짝 열어버리고 우리들 자신이 사람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면 아니 나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오페라 극장의 유령'을 악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숨기고 사랑마저 포기해야 했던 불운한 한 남자로서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