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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ㅣ 범우문고 281
존 스타인벡 지음, 이성호 옮김 / 범우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시골 어느 바닷가의 평화로운 마을에 어부 키노와 아내 주아나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 코요티토가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아기가 무시무시한 전갈에게 물리고 키노 부부는 아기를 살리려고 이웃한 부자마을에 있는 의사를 찾아가지만 욕심 많은 의사는 돈이 없다며 치료를 거부한다. 그들은 결국 치료받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다행히 아기는 목숨을 건진다. 그러던 어느날 키노는 바다 속에서 커다란 진주를 발견한다. 마을은 그 사건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키노는 진주를 팔아서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회반죽으로 지어진 부자 마을에 진주를 팔러 간다. 마을 사람들도 행렬을 이루어 뒤를 따라가고 부자 마을에도 이 소문이 퍼져 수많은 진주 상인들이 키노가 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진주를 헐값에 사려는 욕심쟁이 상인들에게 실망한 키노는 그냥 돌아오게 되고 이때부터 키노 부부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저주를 받은 진주를 던져 버리자는 아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키노는 더더욱 진주에 집착한다. 누가 훔쳐 가지나 않을까 불안해 잠을 제대로 못 이루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키노는 누군가 진주를 훔쳐 달아나는 것을 목격하고 뒤를 쫓는다. 진주를 훔친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다는 사실에 분노한 키노는 해변가에서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낯선 괴한이 기다리고 있었고 몸싸움을 벌이던 끝에 키노는 괴한을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만신창이가 된 채 뒤를 따라오던 주아나는 이 장면을 보게 되고 그들은 더욱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그들은 동생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한다...
[감상문]
존 스타인백 하면 제임스 딘이 주연한 에덴의 동쪽이나 분노의 포도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노라면 우리네 삶은 너무나 치열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자신의 삶이 그만큼 치열했던 것처럼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부유하거나 권력을 누리는 특권층이 아니라 언제나 삶에 찌들고 핍박받으며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그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지금은 결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오늘 따라 웬지 그 섬 사이의 간격이 더 멀어져 버린 듯한 생각이 든다. 너무 가까워지면 불편하고 그렇다고 저만치 멀어지면 외로워서 견딜 수 없는 관계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생각을 해 본다. 며칠 전 읽은 책 속에서 약간은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섬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신화나 설화같이 예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작품도 아주 나쁜 것과 아주 좋은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이런 식으로 흑백으로만 나누어질 뿐 어디에도 중간이라는 것은 없었다. 우리들이 정해 놓은 사회의 윤리적 잣대를 선악의 개념으로서 개나 고양이에게 강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인것처럼. 그럼에도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 라는 말에는 아름다움, 고귀함, 순수함, 풍요로움 이런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존 스타인백의 단편소설 '진주'를 통해서 우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주로 인해 꿈꾸던 행복은 결국 그 진주로 인해서 파멸로 치닫고 희망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던 진주는 해변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사악함이나 추악함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줄거리를 통해서 이미 짐작하신 분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진주를 매개체로 한 두개의 커다란 갈등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번쩍 번쩍 빛나는 회반죽 도시로 대변되는 부자들과 고기를 잡거나 값싼 진주를 팔아서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어부들 늘상 그렇듯 부자들은 이런 빈자들을 동정하기보다는 업신여기며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질 않는다. 이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어쩌면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부익부 빈익빈'이란 저주받을 이 빌어먹을 상황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존 스타인백의 궁극적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과연 그가 이 작품에서 말하려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는 진주를 주제로 글을 쓴 것일까? 짧은 시간 읽은 중편 소설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소중한 작품이었다. 나 스스로 던진 질문에 한동안 얽매여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