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두 사람(다치바나 다카시, 사토 마사루) 의 대화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쉬운 반면 읽기는 쉽지 않다. 

느낌 탓인지 몰라도, '사토 마사루'가 한 수 위라는 느낌을 받았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p. 40~43 

다치바나 : 연합적군사건을 다룬 나가타 히로코의 <열 여섯 개의 묘비>도 포함(추천도서목록에) 시켰습니다. 사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만 하죠. 

사토 : 나가타 히로코와 함께 연합적군을 이끌었던 사카구치 히로시는 제가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옆방에 있었습니다. 

다치바나 : 아, 그랬군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사토 : 대화가 금지됐기 때문에 전혀 말을 섞을 수 없었습니다. 

다치바나 : 폭력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운동장에서 나지막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나 보죠? 

사토 :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카구치는 사형수였고, 저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접견금지조치를 받고 있었거든요.
변호사 외에는 아무와도 면회할 수 없었고, 편지왕래나 신문구독도 물론 불가능했습니다.
책을 구입할 수 없으니 변호사가 가끔 책을 넣어 주었는데 그 책마저도 검여릉ㄹ 거친 후에나 볼 수 있었습니다.
운동도 개별적으로 해야 했어요. 운동장은 사방이 콘크리트 벽이었고 천장에는 그물이 쳐져 있었습니다. 

다치바나 : 그런데 어떻게 옆방에 사카구치가 있다는 걸 아셨나요? 

사토 : 일주일에 한두 번, 그 방에 비디오테크가 달린 TV가 들어가더군요.
저는 원래 TV를 잘 안 보는데 그때는 얼마나 보고 싶던지 간수에게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간수가 몰래 제 방에 들어와 열쇠를 걸어 잠그고는 이렇게 말했지요.
"원래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데, TV는 형이 확정된 사람만 볼 수 있어요.
내 말이 뭘 의미하는지는 당신도 알 것이오."

형이 확정되면 그날로 머리를 깎고 구치소에서 형무소로 이송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형 확정자인데도 구치소에 남아 있다면 그건 사형수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옆방이 사형수의 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옆방 면도기가 잘못해서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보니 '31호 사카구치'라고 써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간수가 일부러 제게 알려 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다치바나 : 간수가 왜... 

사토 : 우린 서로 신뢰하고 있었거든요.
옆방을 들여다보면 안 되지만, 화장실에 갈 때는 보였어요.
방에는 1미터 정도의 높이로 서류다발이 쌓여 있더군요.
원래는 독방에 보관할 수 있는 서류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그에게는 제한이 없더군요.
30년이나 수감돼 있었으니 그 정도 높이가 된 것이겠죠.
펜으로 그린 그림도 있었는데, 묘기산인 것 같았습니다.
연합적군의 아지트가 있었던 곳이죠. 

다치바나 : 아, 그렇군요. 

사토 : 제 앞의 독방에는 1심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항소 중인 사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죽였는데 두 번재 살인을 할 때는 살의가 없었다는 말만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답니다.
어느 날 밤 그가 플라스틱 식기를 벽에 두드리면서 "죽고 싶지 않아!"라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카구치가 "그런 이야기는 낮에 판사 앞에 가서 하시오. 간수들에게 폐가 되지 않소!"라고 꾸짖었지요.
그날 밤 구치소 간부가 사카구치 방을 찾아가 깊이 머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사카구치는 "저 사람은 이제 거의 한계에 온 것 같습니다.
의료실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했고, 얼마 안 있어 의료담당 직원이 들것을 가지고 와서 앞방 남자를 데리고 갔지요. 

그의 목소리에는 한마디의 군더더기도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력이 있었습니다.
구치소의 질서유지를 위해 무척 노력했지요.
혁명 운동도 이와 마찬가지로 조직과 그 주변을 생각하면서 했을 겁니다.
그는 폼을 잡는다거나 특별사면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치소에서 그는 소위 엘리트적인 존재였고, 항상 위엄이 깃들어 있었어요.
거기다 확정사형수에게는 일반미결수 보다는 좋은 대우가 따랐습니다. 

우리는 알사탕밖에 살 수 없었지만 사형수는 커피사탕도 살 수 있었거든요.
어느 날 그의 쓰레기통에 라이오네스 커피사탕 포장지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먹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치바나 : 그런데 그는 책을 많이 읽었나요? 

사토 : 굉장히 많이 읽었지요.
구치소에서는 오후 1시 15분쯤에 책을 운반하는 수레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모두들 누가 어떤 책을 읽는지 엿보게 되지요.
대부분의 책들이 오락잡지인 <실화시대>였지요.
그 밖에 범죄물이나 폭력물, 심지어 야한 만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카구치는 철학이나 역사 같은 진지한 책을 읽었지요. 
제가 하버마스를 읽었을 때였는데, 사카구치도 그로부터 1,2주 후에 변호사를 통해 하버마스의 책을 구해 읽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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