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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용 - 소설가 함정임의 프랑스 파리 산책
함정임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가 함정임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들'을 좋아해서 소설가 함정임이라고 부른 게 아니다.
고유명사처럼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 '소설가 함정임' 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책상, 의자, 식으로 사물의 정해진 이름을 부르듯,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 뿐.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는 볼 수 없는 '우물같은 깊이'가 그녀의 글에서는 있다.
'동행'으로 유명한 그녀-
소설가 김소진의 미망인으로 유명한(그러나 이렇게 표현하기가 참 죄송한) 그녀-
대학시절, 선배들이 이번주 합평용 소설로 제시해 준 '동행'을 읽다가
지하 도서관 인문코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이 책 제목처럼 '인생의 사용'법이 따로 있다면,
그녀의 글들은 아픔이나 삶의 굴곡 같은 것을 제대로 녹여낸 것이 느껴져 참 좋다는 말이다.
인기있는 작가의 농담이 툭툭 튀어나와 유쾌한 글을 읽고 있을 때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더 잔잔해서 좋을 때가 있고,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보다 우리나라 시골 골목을 묘사한 글에 더 정감이 느껴질 때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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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1쇄 : 2003년 8월 5일.
펴낸 곳 : 해냄 출판사.
* 출판사에서 반 년, 일했던 경험으로 책을 읽을 때면 앞 부분이든, 뒷 부분이든 꼭 몇쇄본인지를 파악하는 습관이 있다.
한줄 평 : 파리여행을 앞둔 사람들 보다는, 파리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펼쳐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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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
인생이란 한 사람의 일생을 말한다.
프랑스의 19세기 작가 모파상은 한 여자의 일생을 소설로 써서 "어떤 인생"이라 했고,
역시 프랑스의 20세기 현대 작가 조르주 페렉은 현대 파리와 파리지엔의 삶을 형식 파괴적인 소설로 써서 "인생 사용법"이라 명명했다.
작가는 그 어떤 족속보다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일면과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하여 매혹된다.
그것은 내가 사는 이 세상, 동시에 내가 닿을 수 있는 저 세상에 대해 매번 홀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32
이러한 위안과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행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선물인가.
하루도 변화하지 않고는 존재 이유를 상싱한 내 모국의 수도,
내가 떠나온 서울의 폭력적인 변화 속도를 이곳에서는 좀처럼 감지할 수 없다.
이방인 이라서 그런가.
이방인으로서 누리는 특장이란 바깥의 사유를 통해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선 자세로 파리를 바라본다.
p.105
보들레르, 우울
나는 천 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에 시와 연애편지들, 소송 서류에 연가(戀歌)들이,
또 영수증들에 말린 무거운 머리카락들이,
서랍들 속에 가득 쌓인 커다란 장도,
내 슬픈 머리만큼 비밀을 감추고 있지는 않다.
공동묘지보다도 많은 주검 간직한,
내 머리는 피라미드, 엄청난 납골당.
-나는 달도 싫어하는 하나의 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