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레이철 워프 시리즈 5
팻 머피 지음, 유소영 옮김 / 허블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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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이 행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아가는 별종들의 이야기.

20편에 달하는 단편 속 인물들은 소위 '별종'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자신의 시대에서 강제로 빼내어진 네안데르탈인, 소녀의 정신이 덧씌워진 침팬지, 오지 않는 동료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외계인,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못하는 시간여행자, 죽은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에 집착하는 여자...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 혹은 강제적으로 세상과 단절된 이들. 이들의 삶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결핍을 가지고 있거나 주변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헤쳐나간다. 그 끝이 불확실하더라도 발을 내딛는다.

단편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것은 「채소 마누라」다. 수동적인 여성을 만들어 '사용'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그녀가 자신을 학대하던 남자를 죽이고 그가 그녀에게 그랬듯 땅에 묻고, 진행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다짐에서 오는 해방감이 가장 컸다. 「숲속의 여자들」에서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이 남편에게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짐작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돕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숲속의 여자들 중 하나가 되어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비웃는다. 「사랑에 빠진 레이철」에서 레이철은 애런의 죽음 이후 낯선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하지만 소녀이자 침팬지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센터에서 탈출해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 모두 스스로를 구원한다. 자신의 힘으로.

이런 인물들을 보며 '남자들은 왜 글 쓰는 여자들을 두려워 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글 속에서 여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현실의 여자들 역시 무엇이든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이런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팻 머피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층위의 '무엇이든 되기'를 보여준다.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이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의식 저변에 깔리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숨막히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쾌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들의 미래가 창창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얻는 쾌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단편집에서 흥미로웠던 다른 주제는 '민담'이다. 「파도가 다정하게 나를 부르네」에서 등장하는 물범 인간 실키, 「진흙의 악마」에서 등장하는 용암지대의 악마, 「눈의 보금자리에서」 속 예티는 민담이 현실화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날렵한 사냥개 네 마리와 함께」나 「뼈」는 그 자체로 민담처럼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은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비밀의 문을 열고 그 존재를 우리의 세계로 들이고 있다. 비밀의 통로를 걸어 그들의 세계를 찾아가고 있다.'는 팻 머피의 후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들의 존재를 믿기에 글을 쓴다고 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은 존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 역시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이 모여 이들이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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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의 구멍 초월 3
현호정 지음 / 허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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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기가 늘 쌍둥이로 태어나는 마을에서 홀로둥이로 태어난 고고. 같은 시기에 홀로둥이로 태어난 노노와 한 '켤레'를 이루며 살았지만, 노노가 사라진 이후 마을에서 추방 당한다. 마을을 떠난 고고는 어느 날 자신의 가슴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 길을 나선 고고는 협곡으로 향한다. 협곡인들이 망울에 생긴 구멍인 크레이터를 메우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협곡에서 고고는 비비낙안과 비비유지를 만난다. 하지만 협곡인들은 고고의 구멍을 발견하지 못한다. 협곡인들과 지내던 중, 고고는 비비낙안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비비낙안과 비비유지의 끈끈한 관계에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끼며 어떤 장면을 목격하고 협곡을 떠난다.


고고는 구멍으로 바람이 통과하여 바람의 흐름에 따라 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 도착한 남반구에서 고고는 소인 금을 만난다. 금은 고고의 구멍에서 지내게 된다. 둘은 감정을 공유하며 친밀해지지만, 너무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바람에 오히려 고통스러워지고 말았다. 결국 금은 고고의 구멍에서 나오게 된다. 금이 구멍에서 지낼 때에는 충만함을 공유했지만, 금이 구멍에서 나온 이후 고고는 또다시 앓기 시작했다. 구멍으로 먹은 것과 마신 것이 자꾸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금은 그런 고고에게 어쩌면 노노를 만나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새들이 사는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금의 이야기를 듣고 고고는 새들이 사는 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가 된 노노를 만난다. 둘은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 고고는 마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가고자 한다. 다른 새들이 흔쾌히 도움을 제공하며 마을로 갈 준비를 하며 고고와 노노는 이윽고 화해를 한다.


고고가 마을의 위험을 막는 것에 성공했는지, 구멍이 메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고가 구멍의 존재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고, 협곡인과 소인 그리고 새를 만나며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비비낙안의 말처럼 상처는 스스로 아물지 않지만 남의 도움만으로 아물지도 않는다. 남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아무는 것이다. 노노가 떠나고 마을에서 쫓겨난 뒤 고고는 울지 않기로 다짐하는데, 아픈 노노를 돌보면서, 마을을 떠나 홀로 지내며 드러내지 못했던 상처가 실존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구멍이라고 생각한다. 구멍이 생기지 않았다면 고고는 계속 습지에서 홀로 지내는 생활을 했을 테지만, 구멍이 생겼기에 고고는 끝도 없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결코 '혼자' 세상을 살아낼 수는 없으니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이전의 상처를 어설프게나마 치료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작가는 '망울'이라는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서 펼쳐 보인다. 매 장 마지막에 수록된 '망울의 창조 신화'는 고고가 겪는 상황과 맞물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허블 출판사의 한국 SF 시리즈인 초월 시리즈 중 한 작품이지만 SF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만이 풍길 수 있는 매력에 빠져보시길.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 어떤 상처도 남의 도움으로만 아물지는 않거든. 모든 상처는 안팎으로 아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아무는 거야." - P84

"미안함과는 달라. 미안하다는 건 내 잘못이라는 거잖아. 죗값을 다 치를 때까지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행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앞으로도 새로서 행복할거거든. 다만 힘과 지혜를 지닌 자로서 책임을 느낄 뿐이야."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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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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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소설 보다』와 『시 보다』 시리즈에 이어 론칭한 『SF 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얼음'을 소재로 한 여섯 편의 단편을 모았다. 작가들 라인업이 좋아서 궁금한 마음에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당첨되어 가제본을 제공받았다. 가제본에는 단편 여섯 편만 수록되어 있다. 정식 출간본에는 책의 시작과 끝에 문지혁 작가의 '하이퍼 링크'와 심완선 평론가의 '크리틱'이 수록되어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이 글도 궁금해서 정식 출간본으로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심완선 평론가의 글이 너무 궁금하다. 기획 위원이니 시리즈에 글을 쭉 실리겠지?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작가들이 워낙 자신의 개성이 강한 작가라, '얼음'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쓴 이야기지만 여섯 편 모두 각자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여운은 엄청나다. 경쾌하게 얼음을 씹는 느낌이 나기도 하고, 얼음을 씹었을 때의 시린 느낌이 부각되기도 하고, 차가움과 상반되는 따스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앤솔러지다.

🧊「얼어붙은 이야기」 곽재식

자신이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첫 시작이 이렇기 때문에 그 이후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이 아주 커진 상태로 읽게 된다. 주인공이 트럭에 치이기 직전 시공간이 멈추고 생사귀가 등장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개되는데, 그 이야기의 끝이 다시 소설의 첫머리로 돌아간다. 궁금증과 속도감 있는 대화로 순식간에 읽은 단편이다. 역시 곽재식 작가답게 현실인 듯 현실 아닌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달한다. '이렇게 전개된다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읽다 보면 그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 "인생이 길지 않잖아요. 수십억 년 된 행성과 별들이 지내오는 시간에 비하면 백 년쯤은 잠깐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나마 넓디넓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수십억 명이나 되는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보내는 삶이거든요. 그런데도 그게 굉장히 귀중하다는 생각은 또 있어요. 아까 우리가 이야기했던 대로, 이런 삶 하나를 위해서 은하계 몇 개를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p.34)

🧊「채빙」 구병모

세상의 거의 모든 얼음이 녹으며 인류가 거의 절멸 직전까지 몰린 뒤, 현대 문명은 물속에 잠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시대. 사람들이 채빙을 하러 오는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존재가 주인공이다. 연유를 모르지만 배경지식을 지니고 있는데,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사한 혹은 현명이라 부르며 추앙한다. 두 무리의 갈등을 모두 지켜보지만 개입할 수 없어 그저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눈을 뜬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얼음새꽃을 마주한다. 관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생각을 엿듣는 느낌인데, 너무 슬펐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사람을 애처롭게 생각한 그. 자신은 사한도 현명도 아니라 했지만 이런 마음을 가졌는데 사한이나 현명이 아닐 리가.

🔖 그 안에서 너무 춥지 않기를…… (p.54)

🧊「얼음을 씹다」 남유하

혹한으로 생존이 어려운 시대. 먹을 것 역시 부족하므로 사람들은 죽은 이를 먹는 풍습을 갖게 되었다. 시체를 먹지 않고 유기하는 자는 위법자다. 유리아는 죽은 딸을 차마 먹을 수 없어 딸의 시체를 보호하려고 한다. 자신의 시체가 먹히지 않기를 바라는 자들이 몸을 던지는 배반의 호수에 가지만, 그곳에는 시체를 노리는 시체 사냥꾼들이 있다. 결국 전 연인인 알렉의 집에 아이를 보관하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안전하지 않다. 인육을 먹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그 모습을 끔찍하게 여기는 유리아.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유리아의 모습은 처참하다. 유리아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된다. 시린 매력이 있는 작품.

🔖 먹지 않아. 먹지 않아. 난 널 먹지 않아. (p.96)

🧊「귓속의 세입자」 박문영

회사 워크숍이라는 명목으로 이탈리아에 끌려온 해빈. 2034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강제로 관전하게 된다. 수많은 인파의 열광을 견디지 못하는 해빈은 힘겨워 한다. 해빈과 함께 온 세입자도 있다. 해빈의 왼쪽 귀에 사는 세입자다. '온기 때문에 행성 문명의 일부가 파괴'된 곳에서 온 세입자는 어찌 보면 해빈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 '열기는 주변으로 퍼지면서 많은 걸 오염'시킨다고 하지만,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물론 어떤 때에는 과도한 열광이 거슬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외따로 산다면, 살 수 있을까? 나만 해도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는 것은 아닌걸. 하지만 세입자의 모이면 더 큰 구획이 만들어지며, 서로의 경계가 선명해진다는 말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인간은 지성체가 아니에요. 사람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야 살아갈 수 있어요.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요." (p.119)

🧊「차가운 파수꾼」 연여름 (BEST!)

온도 상승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건물이 붕괴하는 지역. 노이가 사는 아파트는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그 아래에서 온도를 유지시키고 있는 선샤인 덕분이다.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 상처를 입는 노이는 이모를 이어 선샤인을 돕고 있다. 하지만 선샤인의 힘은 계속 약해지고 있고, 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노이도, 선샤인도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외부인 이제트가 아파트에 등장한다. 이제트는 몸이 회복되면 멀리 떠날 거라고 하지만, 노이와 가까워진다. 노이는 끝이 다가옴을 알기에 이제트에게 얼른 떠나라고 하고, 이제트는 함께 떠나자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선샤인이 있는 지하 2층의 온도가 다시 내려간다. 한없이 차가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 여섯 편 중 가장 여운이 긴 단편이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자제했더니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지만 좋은 이야기다.

🔖 무모하긴. 방법 같은 게 어디 있다고. (p.160)

🧊「운조를 위한」 천선란

운조는 수의사다. 동물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얼리기도 한다. 폭설을 헤치고 이동하느라 얼었던 무릎 아래의 다리의 감각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운조였지만 병원에 가지 못하고 마거릿의 연구소로 향한다. 마거릿은 '냉동 보존' 기술을 상용화시킨 연구소의 책임자다. 그러나 운조가 도착했을 때, 마거릿은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기다리다가 불길함을 느낀 운조는 마거릿을 찾아나서다 액체 속에 빠진다. 눈을 떴을 때엔, 뿌연 피부를 가진 생명체를 마주한다. 그들과 지내며 운조는 자신의 첫 반려동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곳은 처음 사고를 당한 시점으로부터 1,690년이 지난 미래다. 붉은 눈에 뒤덮인 세계의 작은 큐브 안에 모여 있는 모든 것을 잃은 이들. 붉은 눈(snow)에 파묻혀, 붉은 눈(eye)에게 되돌아가고자 하는 묘사가 인상 깊었다.

🔖 그 땅에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는 무정한 한줄기의 비로 내리더라도. (p.198)

*서평단에 당첨되어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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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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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최근 들어 더 자주, 많이 거론되는 단어다. 많은 청년들이 비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부부와 아이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나 역시도 비혼을 지향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비혼을 선언하지만 10년 뒤의 삶, 혹은 20년, 30년 뒤의 삶을 상상하면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혼자 사는 삶의 즐거움은 예상 가능하지만 가구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우리의 윗세대 중 비혼을 선택한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혹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특히나 사회적인 편견의 대상이 (주로) 되는 여성의 경우에는 어떨까? 비혼을 선택한 20대 여성인 나는 불안전한 미래 전망을 보며 어떤 것을 준비해야 될까.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이라는 산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나이를 더 먹은 내가 걱정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내 물음에 대한 답변 같은 책이 바로 『에이징 솔로』다.

저자는 '에이징 솔로'를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이라 정의한다. 이 책에서는 에이징 솔로 중에서도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에이징 솔로 여성 19명과의 인터뷰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사는 삶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지점은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의 조사 결과였다. “자기 주도적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진술에 전체 1인 가구의 51.4%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40대 여성은 58.6%, 50대 여성은 65.5%가 그렇다고 대답해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 “일상생활에서 소신을 표현하는 편이다”라는 말에도 그렇다고 응답한 1인 가구는 전체의 50.8%였는데, 40대 여성은 58.6%, 50대 여성은 61%로 평균보다 훨씬 많았다. 이 조사 결과를 보니 나의 40대, 50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삶의 만족도가 저 정도로 높다니.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런 걸까.

에이징 솔로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다들 결혼하는 게 기본이고 결혼하지 않는 게 선택인 양 말하는데, 거꾸로 아닌가요? 뭔가를 하겠다고 하는 게 선택이죠. 저는 비혼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결혼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고 그냥 그 상태로 쭉 사는 거예요."라는 인터뷰이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출생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거론한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가장 깊고 가치 있는 경험'이라 여기며 이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여성은 진정한 기쁨을 알지 못한다 말하는 사회의 분위기 역시 언급한다. 하지만 인터뷰이와 저자는 '가장 가치 있는 하나의 경험'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반박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의 원인은 여성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라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인터뷰이들은 혼자 나이 드는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생계, 주거, 돌봄, 죽음 준비 등 다양한 고민이 존재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어디서 살아야 할까? 아파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나를 대신하여 일 처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지금의 나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들이었다.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라는 우유부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비혼 여부를 떠나 모든 20대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미래에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로썬 취업이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느슨한 공동체, 혹은 동거를 통해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선례를 소개한다. 전주의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는 같은 아파트 이웃으로 구성된 공동체로, 공간비비를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고, 서로 돌본다. 각자 자기 집이 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느슨한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여주의 노루목 향기의 경우에는 여성 노인 세 명이 한 집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공동체다. 이들은 이웃과 함께 문화 활동을 하고, 인근 공동육아 공동체의 아이들에게 뛰어놀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며 돌봄을 제공하기도 한다. 작은 동거 집단이 마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가족이 아닌 이들과의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연결이 가능함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삶의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이런 공동체가 증가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에이징 솔로가 법적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1인 가구라는 이유로 주택청약에 있어 차별을 받고, 일터에서도 휴일 출근이나 야근을 강요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혈연으로 이루어진 이들만을 가족으로 보는 제도들 역시 1인 가구, 혹은 비혼 동거 가구의 경우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꼬집는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새로운 복지국가의 모델로의 전환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말한다. 현재 한국의 경우는 '국가-가족-개인 모델'로, '가족-개인 사이에 부양과 돌봄이라는 가족 기능을 전제하고, 그 기능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에만 국가가 보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복지 정책을 시행한다. 반면, 저자가 소개하는 '국가-개인 모델'은 '개인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개입이 가족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에게 직접 작용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가구 구성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으면 좋겠다. 최근 한국 상황을 보면 암담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의견을 피력한다면 그런 국가로 변화하리라 믿고 싶다.


*서포터즈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괜찮아, 오지 마"가 "그래, 와줘"로 바뀌었다는 말. 나는 이 말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자율과 독립을 가치 선반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고 살아오던 사람이 굳건하게 믿는 상대에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순하게 기대는 말,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한 사랑의 고백처럼 들려서였다. - P176

혼자 나이 드는 삶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바라본다면 이 책에서 에이징 솔로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 생애 전환, 친밀한 관계 맺기, 여러 층위의 연결망,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기 등을 다르게 실천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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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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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초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인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이 좋아서 두 번째 작품은 언제 나올지, 어떤 작품일지 정말 기대가 됐다. 초월 시리즈가 담아내는 감성과 물성이 너무 좋아서 이 시리즈는 쭉 소장해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책장이 버텨주길 바라며. (지금도 자리가 없다) 김희선 작가는 알지 못했던 작가였는데,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빛과 어둠의 시계방』은 총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마다 그 이야기만의 설정을 가지고 있어 지치지 않고 쭉 읽을 수 있었다. 신기한 점은 모두 다른 소재를 채택했지만 본질은 모든 이야기를 관통한다는 점이다. 시간여행, 세계 리셋, 마인드 업로딩, 꿈 지도, 기억 재구성, 자동인형, 영화 등 이야기마다 중심축이 되는 요소는 다르다. 그러나 모두 '과연 내가 아는 이 세계가 단 하나의 진실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간 서점」에서는 시공간이 겹쳐지면서 시계수리공에 대한 다른 기억을 가진 인물들이 공존한다. 「오리진」에서는 둠스데이 버튼이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눌려 세상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재창조 되었다고 말한다. 「달을 멈추다」에서는 주인공이 계속된 사람들의 마인드 업로딩을 멈추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데, '과연 이 시도가 처음일까?' 하고 자문한다. 「꿈의 귀환」은 유리 가가린의 꿈 지도를 만들며 꺠달은 사실에 대한 이야기다. 「악몽」에서는 주인공의 악몽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에 답이 있다. 「가깝게 우리는」은 시계 명장이 자동인형을 만드는 이야기인데, '나는 온전한 나 자신이 맞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는 MIB의 기억 재구성 장치라는 요소를 가져와 '나의 온전한 기억'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마지막으로 「끝없는 우편배달부」 역시 이 세계가 현실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꿈과 현실, 타임루프, 시뮬레이션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세계의 정체에 대해,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깨면 사라지는 꿈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하나 하나 다 매력있는 이야기인데, 단편이다 보니 자세히 쓰면 읽는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 이 정도로 줄이겠다.


+ 종종 민간조사관이 등장하는데, 이 민간조사관이 등장하는 단편들은 느슨하게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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