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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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에서 경제력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동시에 빈부격차가 큰 나라이기도 하다. 분명 부유한 국가인데,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이런 낭비와 풍요의 한가운데에 어떻게 이렇게 대책 없는 결핍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다. 이 문제를 직시하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풍요롭게 살고 있는 '우리'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의 상태를 꼬집고 있다.


분명 평균 생활수준은 향상됐다. 그러나 빈곤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는 '가난이 끈질기에 이어지는' 이유는 '그걸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빈곤은 단순히 충분한 돈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며, '충분한 선택지가 없고 그 때문에 이용당하는 상태'라고 정의했는데, 임대주택 시장의 경우를 보면 선명히 드러난다. 임대주택 시장에서 가난한 동네의 임대주들이 잘사는 동네의 임대주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지출인 유지비는 적은데 수입인 임대료는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은 주택담보대출에 접근할 방법도 없다. 은행 거래 시에도 초과 인출을 하는 경우 부과해야 하는 수수료가 산더미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이것은 누구의 배를 불리는가?'


하지만 사회는 계속해서 이 불합리한 구조를 합리화한다. 바로 능력주의가 사회가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며, 복지를 확대하는 건 그들의 복지 의존성을 키우므로 국가의 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투자할 자원이 부족하다고. 저자는 사람들이 이 말도 안되는 선동에 휩쓸리는 건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우리의 삶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서로 맞물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임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민간의 부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의 공공재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고, 따라서 공공재에 투자하는 비용도 줄어들며 공공재는 가난한 자들의 것이 된다. 공공기관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게 되면 공공기관에서 공급하는 기회가 줄어들며, 종국에는 공공기관을 대체하는 민간기업이 만들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기회도 사라지며 빈곤선 아래의 가구는 계속 빈곤선 아래를 맴돌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여러 조사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저자는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못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잘사는 것이 문제이지,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착취하고, 가난을 해소하는 것보다 풍요에 돈줄을 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우리끼리만 배부르면 되는 배타적인 지역 사회를 만듦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있다.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안은 간단하다. 저소득층에게 충분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돈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체납 중인 불량 납세자들에게서 끌어오면 된다. 공정한 조세 집행이 어려운가? 하지만 그것이 반빈곤 정책 예산을 늘릴 수 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의 빈곤은 의회와 기업이 취하는 조치의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일을 할 때 매일 내리는 결정들 수백만 가지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인 우리는 우리의 소비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처럼, 빈곤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종국에는 경제 격차로 갈라둔 담장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주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꾸어도 위화감이 없다.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미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의 빈곤 문제를 분석한 책이지만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조사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공공재 투자가 줄어들면 결국 잘사는 사람들은 민간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공재를 사용하게 되면서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이라는 부분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 하나인 '민영화' 생각하지 않을 없었다. 우리가 민영화를 반대해야 하는지 책만 읽어봐도 바로 깨달을 이다. 최근에 읽은 『가족 각본』의 내용도 생각이 났다. 가족 제도는 국가가 손을 써야하는 돌봄의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돌봄 노동 전가로 이득을 보는 마피아를 찾아내보라고 했는데, 이득을 보는 마피아는 역시 기업이었다. 국가가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자신의 몫을 떠넘기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어떻게 일어설 있겠는가.


*아르테 북서퍼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가난은 물질적 결핍과, 만성통증과, 투옥과, 우울증과, 중독 등등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일 때가 많다. 가난은 직선이 아니다. 사회적 병폐들이 단단하게 엉킨 매듭이다. 가난은 범죄, 건강, 교육, 주책 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사회문제와 관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가난이 끈질기게 이어진다는 것은 수백만 가정이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안전과 안정, 품위를 거부당한다는 뜻이다. - P62

그 원뿌리란 바로 가난이 상처이고 고난이라는 단순한 진실이다. 수천만 미국인이 가난해진 것은 역사의 실수나 개인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다. 가난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은 그걸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P86

핵심은 하나의 의존, 그러니까 시민들의 국가에 대한 의존 상태를 약화함으로써 또 다른 의존, 그러니까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의존을 지킨다는 것이다. - P152

민간의 풍족함과 공공의 누추함을 가속화하는 움직임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 이는 공공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철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이런 투자 철회를 통해 결국 에는 주된 기회의 공급처였던 공공기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민간사업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P189

솔직해지자. 과거부터 축적된 기회를 나눌 때는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 이 나라의 잉여에서 이득을 얻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를 나눠 가져야 하므로 결국 전보다 적게 가져가야 한다. - P199

나는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자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안정망을 균형 있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반적인 사회복지에 더 많이 투자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이 돕고 부유한 사람은 더 적게 도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 P221

발밑의 땅이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피기보다는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에 더 마음을 쏟으며 방어적인 태도로 우리 것을 지키려고 한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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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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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한국SF에 푹 빠져서 과제까지 이걸 주제로 레포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 ‘포스트휴머니즘’이었고 ‘사이보그 선언’이었으며 ‘도나 해러웨이’였다. 그때부터 도나 해러웨이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 시작은 못하고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펀딩 소식이 들린 것이다. 표지도 강렬하면서 명확한 것이 계속 아른거려 결제했다. 책을 받고 나서는 여유가 생기면 읽겠다고 미뤄두었다. 그러다 아르테 북서퍼에 선정된 거다. 마감일이 확정되자 두려웠지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려웠다. 하지만 뿌듯했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는 해러웨이의 저술 10편을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1부 ‘생산과 재생산 체계로서의 자연’에서는 영장류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인간이 영장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 통념이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다룬다.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에서는 남성중심적인 영장류학 이론이 페미니즘과 혼합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이론의 설득력을 위해 서사, 즉 말하는 방식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강조한다. 3부 ‘부적절한/부적절해진 타자를 위한 차이의 정치학’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이론들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조류인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나 래디컬 페미니즘의 전략을 설명한다. 그리고 유색인 여성, 레즈비어니즘 등 정체성이 교차하는 부분들을 짚어내며 ‘사이보그’라는 새로운 주체를 등장시킨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내용이 어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해러웨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집에 해러웨이에 대한 책을 사두었는데, 그 책을 읽고 다시 차근차근 읽고 싶다. 정체성 정치가 부각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SF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공부하고픈 학자임에 틀림없다.


영장류부터 사이보그까지, 페미니즘이 과학에서 어떤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해러웨이는 질문하고 있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우리. 우리는 자기자신을 누구라 명명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보그가 되어 지구에서 살아남아 보자! (P.15)


🔖페미니즘은 과학의 분명한 성차별적 편향에 응답하는 논변에서조차도 생산과 재생산에 대한 적절한 최종 이론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론들은 여전히 우리를 비껴간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과학 이론을 조립하는 데 쓰일 규칙들을 정식화하는 정치-과학적 투쟁에 가담하고 있기 대문이다. (p.81)


🔖이와 같은 관행이 자연을 이론화하는 우리를 이끄는 만큼 우리는 계속 무지하며, 우리는 과학의 실천에 개입해야만 한다. 이것은 투쟁의 문제이다. (p.123)


🔖픽션 읽기는 또한 여성들 가운데서 연결과 분리를 지도화하고, 지역적/지구적 세계에서 그들이 구축하고 그들이 참여한 사회운동을 지도화하는 테크놀로지로 기능할 수도 있다. (p.206)


🔖나는 이러한 사이보그가 우리의 사회적•신체적 현실의 지도를 그리는 픽션이자, 매우 생산적인 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상상적 자원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p.273)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래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중략)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P.328)


*아르테 북서퍼 활동으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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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 - 짧은 문장으로 익히는 글쓰기의 기본
벌린 클링켄보그 지음, 박민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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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문장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잘 쓰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는 '흐름'과 '자연스러움'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강조한다.

물 흐르듯 써지는 문장이란 없다는 것을,

물 흐르듯 써지는 문장은 클리셰로 가득 찬 문장임을 지적한다.

술술 잘 써지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 온 내게 유의미한 조언이다.

저자는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와 리듬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글 전체의 의미에 집중하기 보다 문장 하나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한없이 늘어트린 문장보다 짧은 문장이 명료함을 잊지 말라 한다.


글을 쓰고 나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 보라는 조언은 백 번 동의한다.

나 역시 애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쭉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어색하거나 잘 읽히지 않는 부분과 맞닥뜨린다.

그럼 그 부분을 수정하면 되는 거다.


글을 쓸 때 처음 생각한 것을 바로 적지 말라는 건 의외였다.

일단 초고를 쓰고 퇴고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었다.

저자는 초고를 씀과 동시에 퇴고를 하길 권한다.

문장 하나에 많은 고민이 깃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다시 퇴고를 볼 때 수월하고 완성도도 높다는 거다.

고려해 볼 부분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저자이기에 한국어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한 것처럼, 내게 도움 되는 부분을 취하면 된다.

뒷부분에 실전 문제는 교정 교열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두고두고 참고해야겠다.


책 본문도 이런 식으로 (거의) 문장별로 줄이 나뉘어 있다.

본문을 따라 글을 써봤다.

가독성이 좋은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특성을 살리는 본문 배치임은 확실하다.

원서도 이런 배치였을까?

번역을 할 때 어려웠을 것 같다.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다르니까.

저자의 글이 깔끔하니까 오히려 수월했으려나?

편집 측면에서 궁금한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 논리 전개에 대한 강박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마법과도 같은 진실을 부정합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항상, 그리고 즉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진실 말입니다.

문장의 틈새는 때로는 호흡을 가다듬는 기능을 하고

때로는 여운을 주는 여백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나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에서든 끝낼 수 있습니다.

단 하나로 정해진 순서란 없습니다.

(p.41-42)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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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수고하셨습니다 - 오늘부로 직장인 은퇴합니다
전혜성 지음 / 싱긋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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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마음을 갖자.


오랜 기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왔던 저자가 타의로 퇴사를 하고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일에 미쳐 살았고, 자기 커리어에 자부심을 가진 저자가 '일'을 잃게 되며 겪은 혼란이 담겨있다. 저자는 처음 겪는 혼란 속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일에 파묻혀 살았던 삶이 진정 그가 원하는 삶이었나? 어려워 보이는 일을 자진해서 맡아 성공시킨 자기 능력이 사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것은 아닐까?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백수의 삶에서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구직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풀며 미래에 대한 고민도 내비친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직장이 전부라는 생각으로부터 은퇴하자'이다.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직장인을 은퇴하겠다고 야심 차게 선언했지만, 책이 나온 지금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백수 경험을 전후로 바뀐 것은 그의 마인드이다. 저자는 과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지 않는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기가 깨달은 바를 지금 힘들어하고 있을 이직(준비)자, 구직자, 재직자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이제 첫 직장 생활을 앞둔 나에게 선배 직장인인 저자의 책은 마인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게 될 내 삶이 흐릿하게만 그려질 따름이었다. 나보다 앞서 오랜 직장 생활을 겪은 저자의 조언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대해야 하는지, '나'와 '일'을 어떻게 분리해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곧바로 직장 생활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고 짧은 유예 기간이 주어진 만큼, 나 자신을 잘 돌아보고 다져서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무사히 내디뎠으면 한다.


🔖 직장을 다니더라도 무턱대고 덤비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한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를 태우지 않기를. 남을 위한 일은 나를 갉아먹지 않을 정도까지만. 나를 위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나를 아끼도록 열심의 주체와 방향을 바꾸려고 해. 내가 나를 위해 사는 열심의 인생으로. 처음부터 이 배의 선장은 나였으니까. (p.23)


🔖 삶에도 비상구가 필요하다. 자화자찬도 하고 다독여보아도 여전히 제자리라면 잠시 떠났다 오는 거다. 명상, 혼코노, 양궁, 사우나, 당일치기 여행…… 어떤 형태라도 좋다. 마음의 파장을 잠재우는 것이든 심장의 맥박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든 잠시 피했다 돌아올 수 있다면.

긍정타령이 먹히지 않는 재난의 상황에는 피난을. 삶의 비상구 하나, 열 일을 해낸다는 걸 알게 되기를 바라며, 정체기의 그대에게, 지금, 도망을 추천한다. (p.232)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더라도 무턱대고 덤비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한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를 태우지 않기를. 남을 위한 일은 나를 갉아먹지 않을 정도까지만. 나를 위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나를 아끼도록 열심의 주체와 방향을 바꾸려고 해. 내가 나를 위해 사는 열심의 인생으로. 처음부터 이 배의 선장은 나였으니까. - P23

삶에도 비상구가 필요하다. 자화자찬도 하고 다독여보아도 여전히 제자리라면 잠시 떠났다 오는 거다. 명상, 혼코노, 양궁, 사우나, 당일치기 여행…… 어떤 형태라도 좋다. 마음의 파장을 잠재우는 것이든 심장의 맥박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든 잠시 피했다 돌아올 수 있다면.
긍정타령이 먹히지 않는 재난의 상황에는 피난을. 삶의 비상구 하나, 열 일을 해낸다는 걸 알게 되기를 바라며, 정체기의 그대에게, 지금, 도망을 추천한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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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단티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교유서가 어제의책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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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긴즈부르그’라고 하면 가장 먼저 『치즈와 구더기』가 떠오른다. 학부 개론 수업 때 참고도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독하진 못했다.)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에서 있었던 이단 심문 기록 중, 결국 이단으로 처형당한 한 사람의 기록을 파고 들었던 책이었기에 『베난단티』는 어떤 일을 다룬 책일지 궁금했다. 『베난단티』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프리울리 지역에서 있었던 이단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민중신앙(베난단티 신앙)의 위상 변화를 분석한 책이다.


여기서, '베난단티'란 누구인가? 이들은 '마녀와 마법사의 사악한 계획에 반대하며 그들 저주의 희생자들을 치료해주었다고 언명'했다. '적들과 마찬가지로 산토끼나 고양이 등등의 동물을 타고 신비로운 밤의 모임에 참석했다.'(p.58) 이들은 이렇게 처음부터 마녀인듯 아닌듯 모순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녀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베난단티)가 이기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주장에서, 베난단티 신앙이 풍요제 같은 농경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인 '육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심문 기록에서 베난단티의 진술은 '사바트가 실제로 가시적이라는 관념과, 환상과 상상이라는 그에 대립되는 관념 모두를 유지한 이단 심문소의 구도 속에 의도적으로 짜맞춰졌다.'(p.94) 초기에 베난단티로 심문에 응한 이들은 심문관들의 유도 심문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으나, 시간이 흘러 '마법과 일반적인 마술적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더 회의주의적이고 동시에 더 합리적인 태도가 확산'되며(p.322) 결국 베난단티와 악마 혹은 마녀와의 연관성을 인정한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가고자 한 권력(가톨릭)과 합리적인 태도의 확산으로 인한 믿음의 부재가 베난단티라는 민중신앙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이단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베난단티라는 민중신앙이 몰락하는 역사를 새로 쓴 작업도 좋았지만, 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베난단티'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죽은 자들의 행진'과 관련된 독일 신화와 '풍작을 위한 전투'와 관련된 리보니아나 슬로베니아의 신화가 합쳐져서 생겨난 민중신앙일 가능성, 즉 게르만 신화와 슬라브 신화가 혼합된 결과로 베난단티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프리울리 지방에 국한된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칸반도 케르스트나키 신앙에서 등장하는 빌레나치나 모데나 지역의 디아나 신앙처럼 유사한 민중신앙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신앙은 지역마다 명칭은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형태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퍼져있던 어떤 거대한 민중신앙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한 책이 카를로 긴즈부르그라는 대가의 박사 논문이었다는 사실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전부터 존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쌓아올렸다고 하지만, '미시사'라는 새로운 역사 분야의 문을 엶과 동시에 지구사의 흐름 역시 안 놓치지 않았는가. 정말 대단한 역사학자임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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