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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 포풀리 - 고전을 통해 알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모든 것
피터 존스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평점 :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한 번뿐인 인생마저 한도가 있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한정된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간접 경험이다. 시간과 돈의 제약으로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간접 경험의 수단으로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은 수단은 단연 책이다. 요즘에야 워낙에 많은 매체가 발달해서 직접 경험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는 경험을 다방면으로 선사해줄 수 있지만 그건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극히 최근의 일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책은 지식 보전과 전수의 가장 중요한 매체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읽히는 책 중의 책을 '고전'이라 한다. 혹자는 고전을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이라 일축하는데, 책의 내용이 워낙에 유명해져 상식처럼 통용되다 보니 굳이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시대마다 고전이 있지만 서양의 고전은 곧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문헌들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가, 호메로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같은 문학 작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 세네카, 베르길리우스 같은 후대 로마 시대의 인물까지, 이들이 남긴 저작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번역, 재독해, 재인용되어 우리 지성사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들은 파편화되었다. 그러니까 워낙에 유명한 것들이라 위 인물들의 이름은 다 들어봤고, 어떤 작품들을 남겼는지는 알고 있더라도 정작 이 고전들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졌는지 그 계보와 맥락은 좀처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공백과 간극을 메꾸어주는 책이다. 백과사전식이라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의 분량상 엄청나게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주제를 설명하고 있기에 고전을 둘러싼 의문은 웬만하면 이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1장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태동기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간략한 역사를 알려준다.
2장은 고대 문헌이 동로마 제국과 중동 문화권을 거쳐 르네상스에 유럽으로 역수입된 경로를 전한다.
3장은 남아 있는 당시의 유물을 바탕으로 고고학에 근거하여 시대상을 밝힌다.
4장은 귀족정, 참주정, 민주정이란 정치 체제의 기원을 설명한다.
5장은 고대 사회가 어떻게 남성 우위 사회가 되었는지, 여성이 어떻게 억압받았는지를 규명한다.
6장은 황제와 제국으로 대표되는 제정 로마의 특징이 이어진다. 유럽의 단일한 체계는 대부분 이 시기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7장은 로마가 통치한 광대한 식민지를 어떻게 반발없이 통치했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8, 9장은 그리스어와 로마어가 현대의 유럽어, 특히 영어에 미친 영향을 어휘와 문법 중심으로 말해준다. 풍부한 예시가 돋보인다.
10장은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에 관한 대목인데, 언뜻 보기에 대립되는 두 사상이 조화롭게 어울렸던 시대가 바로 고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1장은 철학과 과학을 예로 들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정립됐던 지식의 한계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여 새로운 지식을 정립했는지를 역설하며 마무리한다.
부록에는 라틴어 발음과 그리스어 철자가 실려있다. 어학책이 아닌이상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내용인데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유용해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이 부분만 따로 찾아 읽기 좋을 듯하다.
부록 뒤에는 색인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궁금한 개념을 언제든 찾기 쉽게 되어 있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