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가난의 정의
루스 리스터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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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의 의미가 뭔지, 능력주의가 만연한 한국에서 가난이란 뭔지 궁금합니다! 수치상으로 우리는 과거보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체감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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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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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스턴(Houston), 응답하라." '휴스턴'이란 지명은 우주비행사들이 나오는 영화에 꼭 등장하는 지명이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연구하는 곳이 바로 NASA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사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거다.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으며 꾸준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천체물리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거다.


  그런데 하킴 올루세이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례와 결이 많이 다르다. 현재 NASA의 과학임무국에서 근무하는 물리학자 중 유일한 흑인이다. 1965년 민권법 제정 이후 흑인들이 법적으로 받는 차별은 공식적으로 없어졌으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러 층위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며 바닥 같은 삶을 경험하고 있는 비율도 높다. 미국이란 나라의 공교육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작동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좀처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교육학에서 오랜 논쟁은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인데,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을 발현시킬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재능이란 본성은 미처 발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하킴 올루세이의 어릴 때 이름)의 어린 시절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별거 중인 부모를 따라 어느 한 곳에서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다. 제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온갖 잡일을 해야 했다. 비슷한 상황에 노출된 많은 어린이들처럼 하킴은 빈민가의 갱스터로 전락하기 충분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하킴은 주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엄마가 방문판매업자에게서 구매해준 백과사전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두꺼운 백과사전의 지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주제들 중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Einstein)과 뉴턴(Newton) 같은 물리학자들의 생애와 이론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돈을 세는 행동이나 퀴즈를 푸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동거하는 가족과 다니는 학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고등학생 시절 용돈벌이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몰래 마약을 팔았다. 선생님들의 꾸준한 격려를 받으며 스탠퍼드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지만 흑인인 그는 주위의 백인들에게서 크나큰 소외감을 느끼며 방황했다. 마약 중독자가 될 정도로 말이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수했는지를 강조하며, 그 후의 일은 동화책의 결말처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하킴은 그 후에도 자신이 얼마나 외줄타기 같은 인생을 보냈는지를 술회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같은 일들은 결국 인생이란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는 있어도 목표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건 결국 삶에서 죽음까지의 지난한 과정인데, 어떤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인생이 그 이후로 확실한 길을 보장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갱스터, 마약 중독자, 대마초를 판매하는 문제아, 가난과 폭력, 떠도는 삶, 흑인으로서 겪은 인종차별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부정적인 면, IQ 162, 영재, 스탠퍼드 대학 박사, NASA 소속 천체물리학자, 대학 교수, 연구원 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도 될 것이다. 양극단적인 삶의 단면은 그러나 반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그의 인생에서 함께 했다. 컴퓨터는 이진법을 써서 세상을 0과 1이라느 극단값의 조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은 이진법을 쓰지 않는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로 온갖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며, 심지어 0과 1 사이에는 저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은 희망이다"라는 그의 말을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삶을 극단적인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으로 보기보다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살피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죽는 순간까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 까치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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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 포풀리 - 고전을 통해 알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모든 것
피터 존스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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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한 번뿐인 인생마저 한도가 있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한정된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간접 경험이다. 시간과 돈의 제약으로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간접 경험의 수단으로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은 수단은 단연 책이다. 요즘에야 워낙에 많은 매체가 발달해서 직접 경험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는 경험을 다방면으로 선사해줄 수 있지만 그건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극히 최근의 일이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책은 지식 보전과 전수의 가장 중요한 매체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많고 많은 책 중에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읽히는 책 중의 책을 '고전'이라 한다. 혹자는 고전을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이라 일축하는데, 책의 내용이 워낙에 유명해져 상식처럼 통용되다 보니 굳이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시대마다 고전이 있지만 서양의 고전은 곧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문헌들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가, 호메로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같은 문학 작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 세네카, 베르길리우스 같은 후대 로마 시대의 인물까지, 이들이 남긴 저작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번역, 재독해, 재인용되어 우리 지성사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들은 파편화되었다. 그러니까 워낙에 유명한 것들이라 위 인물들의 이름은 다 들어봤고, 어떤 작품들을 남겼는지는 알고 있더라도 정작 이 고전들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졌는지 그 계보와 맥락은 좀처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공백과 간극을 메꾸어주는 책이다. 백과사전식이라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의 분량상 엄청나게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주제를 설명하고 있기에 고전을 둘러싼 의문은 웬만하면 이 책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1장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태동기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간략한 역사를 알려준다. 

2장은 고대 문헌이 동로마 제국과 중동 문화권을 거쳐 르네상스에 유럽으로 역수입된 경로를 전한다.

3장은 남아 있는 당시의 유물을 바탕으로 고고학에 근거하여 시대상을 밝힌다. 

4장은 귀족정, 참주정, 민주정이란 정치 체제의 기원을 설명한다.

5장은 고대 사회가 어떻게 남성 우위 사회가 되었는지, 여성이 어떻게 억압받았는지를 규명한다.

6장은 황제와 제국으로 대표되는 제정 로마의 특징이 이어진다. 유럽의 단일한 체계는 대부분 이 시기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7장은 로마가 통치한 광대한 식민지를 어떻게 반발없이 통치했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8, 9장은 그리스어와 로마어가 현대의 유럽어, 특히 영어에 미친 영향을 어휘와 문법 중심으로 말해준다. 풍부한 예시가 돋보인다.

10장은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에 관한 대목인데, 언뜻 보기에 대립되는 두 사상이 조화롭게 어울렸던 시대가 바로 고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1장은 철학과 과학을 예로 들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정립됐던 지식의 한계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여 새로운 지식을 정립했는지를 역설하며 마무리한다.

부록에는 라틴어 발음과 그리스어 철자가 실려있다. 어학책이 아닌이상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내용인데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유용해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이 부분만 따로 찾아 읽기 좋을 듯하다.

부록 뒤에는 색인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궁금한 개념을 언제든 찾기 쉽게 되어 있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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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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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신체의 병과 마음의 병이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발달해가는 의학 기술 덕분에 어지간한 신체의 병은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 발병 원인도, 마땅한 치료법도 아직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중 치매는 대표적인 마음의 질병이다. 치매를 앓는 사람도 많고 오래 전부터 있었던 병이지만 치매를 마주한 순간 우리는 무력해진다. 그래, 마치 홀로 바다에 있을 때 만나는 태풍같이...


  마음의 병인 치매는 환자는 물론이고 주변인들에게 마저 아주 끔찍한 체험과 고통을 안겨준다. 기억을 지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애초에 불완전하다지만 살면서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이 있을 거다.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추억들은 치매에 걸린 이후 무심히 하나둘씩 지워진다. 도려내어진다. 씻겨내려간다. 이윽고 우리의 기억은, 아니 추억은 원래의 흔적도 없이 얼기설기 기워진 누더기처럼 변해버린다. 기억은 맥락을 잃고 쪼그라든다. 빈 자리엔 공허한 공백이 대신 한다.


  짧건 길건 살면서 우리는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 부모님만큼 소중한 인연은 없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정을 과연 뭘로 대신할 수 있을까. 내가 한살 두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다시 말해 부모님 역시 그만큼 나이를 드신다는 거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부쩍 더 많아진 거 같은 부모님 얼굴의 주름, 줄어든 머리숱, 구부정해진 허리를 보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맞이해야 할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건 곧 늙어간다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 책의 경우처럼 '엄마'에게 불쑥 치매가 찾아올 수 있다. 전형적인 영국의 노동자 계층 부모에게서 성장한 작가 나이젤은 마땅한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엄마의 남은 인생을 책임져야 했다. 따로 살고 있던 엄마의 집에 찾아가는 횟수가 불쑥 잦아지고 그 집 앞으로 통지되는 각종 요금들은 이제 자기 몫이 되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여간 일이 아니었다. 온갖 서류 더미에 덮혀 살던 작가는 엄마를 요양원에서 모시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술회한다.


  삶은 치열하다.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연속해서 마주하는 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채로 물에 던져진 상황과 같을지도 모른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갖은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그 발버둥이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아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차라리 몸에 힘을 쭈욱 빼고 있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가라앉지 않을 수는 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표되는 상반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중요한 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완급을 조절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작가 나이젤은 인생의 완급을 조절하는 일을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고 떠나보내는 일을 통해서 배운 듯하다. 가볍건 무겁건 간에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다. 그런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눈부신 햇빛을 반사하건, 세찬 파도가 몰아치건 바다는 결국 바다이다. 슬프지만 삶은 언제나 기쁘고 빛나는 순간으로 가득하지는 않다. 삶은 죽음이란 종착지로 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그 여정 도중 필연적으로 노화와 질병을 마주한다. 내가 나중에 어떤 시련이나 고난을 겪으면서도 삶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길 바랄 뿐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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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일본 정독 -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 읽기
이창민 지음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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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만큼 한국에게 양가적인 나라가 있을까? 이른바 '이웃 나라의 법칙'의 전형적 예시인 한일관계를 들여다 보면 참으로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따로 없다.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국인 일본을 이웃나라로 두고 있는 이상 한국은 정치와 경제 부문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는 피식민지-식민지배 국가 시절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과거사 문제가 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상당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을 보인다. 일본 기업에게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 배상을 명시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있자 2019년부터 일본은 한국을 수출입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거함으로써 맞대응했다. 한국은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부품의 상당수를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는 큰 타격이었다. 


  경제 부문에서 마찰을 겪은 두 나라는 코로나 국면을 지나면서 이제는 비자 협정 마저 갱신하지 못하며 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로 갔다. 국민들의 불편함만 더 커졌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계속 두고볼 수는 없다.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가 글로벌 밸류 체인 Global Value Chain으로 재편되면서 두 나라의 상호의존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을 연구할 필요성은 단순히 경제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장기간 저성장을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한국의 미래상이라는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마주한 문제를 탐구하는 건 곧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나중에 마주할 문제에 대한 해법을 미리 고민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반가운 책이 보였다. 경제학으로 학위를 취득하여 도쿄대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외대에서 지역학을 연구 중인 이창민 교수의 이력을 보니 한국과 일본 사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능숙하게 설명해줄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누어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탐구한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서술한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는 단절된 시간대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연속선이기에 셋 중 하나라도 등한시하면 전체 맥락을 충분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 읽기"라는 부제가 단적으로 드러내주듯 이 책이 경계하는 바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감정이 워낙 양가적이기에 둘 중 하나의 의견으로 치우치기가 쉬운데 저자는 일본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경험을 살려 철저히 선행 연구와 통계 자료에 기반을 두고 주장을 펼친다. 다만 1장 일본의 과거 분석은 여러 기업들과 사회 현상 등의 예시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 설명이 중심이라 이해가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2장 일본의 현재 이해와 3장 일본의 미래 전망 부분은 저성장, 양극화, 아베노믹스 등의 경제 이론과 현상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기에 거시경제에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앞부분보다 이해하기가 살짝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교양서를 지향하기에 최대한 쉬운 표현으로 복잡한 경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고, 저자의 다른 연구 자료도 각주로 소개하여 보충 자료를 제시한다.


  맺음말에서 일본에 대해 우월감도, 열등감도 가지지 않는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젊은 세대라고 해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에만 매몰되는 것은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일종의 투트택 전략인데, 이 책을 읽은 나는 적어도 일본에 대한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시각에 쓸리지 않을 거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 더숲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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