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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평점 :
질병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신체의 병과 마음의 병이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발달해가는 의학 기술 덕분에 어지간한 신체의 병은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 발병 원인도, 마땅한 치료법도 아직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중 치매는 대표적인 마음의 질병이다. 치매를 앓는 사람도 많고 오래 전부터 있었던 병이지만 치매를 마주한 순간 우리는 무력해진다. 그래, 마치 홀로 바다에 있을 때 만나는 태풍같이...
마음의 병인 치매는 환자는 물론이고 주변인들에게 마저 아주 끔찍한 체험과 고통을 안겨준다. 기억을 지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애초에 불완전하다지만 살면서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이 있을 거다.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추억들은 치매에 걸린 이후 무심히 하나둘씩 지워진다. 도려내어진다. 씻겨내려간다. 이윽고 우리의 기억은, 아니 추억은 원래의 흔적도 없이 얼기설기 기워진 누더기처럼 변해버린다. 기억은 맥락을 잃고 쪼그라든다. 빈 자리엔 공허한 공백이 대신 한다.
짧건 길건 살면서 우리는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 부모님만큼 소중한 인연은 없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그 정을 과연 뭘로 대신할 수 있을까. 내가 한살 두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다시 말해 부모님 역시 그만큼 나이를 드신다는 거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부쩍 더 많아진 거 같은 부모님 얼굴의 주름, 줄어든 머리숱, 구부정해진 허리를 보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맞이해야 할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건 곧 늙어간다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 책의 경우처럼 '엄마'에게 불쑥 치매가 찾아올 수 있다. 전형적인 영국의 노동자 계층 부모에게서 성장한 작가 나이젤은 마땅한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엄마의 남은 인생을 책임져야 했다. 따로 살고 있던 엄마의 집에 찾아가는 횟수가 불쑥 잦아지고 그 집 앞으로 통지되는 각종 요금들은 이제 자기 몫이 되었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여간 일이 아니었다. 온갖 서류 더미에 덮혀 살던 작가는 엄마를 요양원에서 모시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술회한다.
삶은 치열하다.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을 연속해서 마주하는 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채로 물에 던져진 상황과 같을지도 모른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갖은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그 발버둥이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아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차라리 몸에 힘을 쭈욱 빼고 있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가라앉지 않을 수는 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표되는 상반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중요한 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완급을 조절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작가 나이젤은 인생의 완급을 조절하는 일을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고 떠나보내는 일을 통해서 배운 듯하다. 가볍건 무겁건 간에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다. 그런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눈부신 햇빛을 반사하건, 세찬 파도가 몰아치건 바다는 결국 바다이다. 슬프지만 삶은 언제나 기쁘고 빛나는 순간으로 가득하지는 않다. 삶은 죽음이란 종착지로 가는 과정이고, 우리는 그 여정 도중 필연적으로 노화와 질병을 마주한다. 내가 나중에 어떤 시련이나 고난을 겪으면서도 삶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길 바랄 뿐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