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 - 텍스트의 실수와 왜곡을 잡아내고 진실을 건지는 법
오항녕 지음 / 김영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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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 서포터즈 18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에서 해석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종종 사실을 무시하고 해석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확인하자. 역사학은 사실을 기초로 해석하는 거다. 사실이 없으면 해석 자체가 없다. 때로는 사실 자체도 비판한다. 이는 사실에 담긴 진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과정이다. 사실에 대한 비판이 오류의 합리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때의 비판은 잘못의 지적이 아니라 의미 연관이나 기초 등을 밝히는 일을 뜻한다. 비판이 마치 오류의 합리화라도 되는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기에 덧붙이는 말이다.] - p.44



  1. 오항녕 교수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아우른 양란 시기 광해군과 인조 대에 관한 자료를 찾을 때였을 것이다. 대중적으로 광해군은 중립 외교를 추구하고 대동법을 시행한 성취가 알려진 반면, 인조는 반정을 주도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아들 소현세자를 죽였다고 의심받는 암군의 이미지가 강하다. 역사 속 인물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진 시선이 아니라 공과 과를 모두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겠으나, 모든 인물에게 그런 균형을 들이대긴 어렵다. 그래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두 임금에 대한 평가는 학계에서 쭉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에 관해 한명기, 계승범, 이정철, 김시덕 같은 학자들이 논문을 주고 받으며 각자 의견을 개진했다. 그 중에서 오항녕의 주장은 유독 더 날이 서 있던 기억이 난다.


   2. 여러 분야 중에서도 역사책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다만 논문 작성 관련 자료를 제외하고는 이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책이 아니라, 역사'학'이나 역사 '서술'에 관한 방법론을 접하는 건 무척 오랜만이다. 전에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건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다. 다만 유시민은 애초에 자신을 결코 학자로 소개하지 않는 작가이고, 책에서도 역사 서술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개인 의견을 덧붙이는 거라 분명히 했다. 그래서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은 결이 다르다. 이 책은 역사학자로서 오항녕의 자기 반성이 우선 돋보인다.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왜 역사라는 분야에서 실수가 일어나고 어떤 유형이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이뤄져 있다. 각각 사실, 서술, 비판의 오류를 다룬다. 이는 서문에서 소개한 역사의 세 영역, 즉 "흔적을 남기고 recording, 기록을 보존하고 archiving, 그것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고 이야기하는 historiography"와 맞물린다. 책에서 수많은 사례를 제시해준 덕분에 교과서 속에서 잘못 인용된 부분이나 잘못 알려진 상식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공부에는 끝이 없다.



[이렇게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호기심과 이야기가, 사실 탐구와 서술이, 서술과 비판 및 논쟁이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구분은 방편일 뿐이다. 결국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가능하면 실제 일어났던 진실에 가깝게 그 일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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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철 - 독일 제국의 흥망성쇠 1871-1918
카차 호이어 지음, 이현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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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통일해 프로이센이 서서히 역사에서 지워져가는 과정이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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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Pedia A-Z 세트 - 전4권 피디아 Pedia A-Z
로렌스 밀먼 지음, 김은영 옮김 / 한길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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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로 상식을 쌓을 수 있어서 무척 재미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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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좋은 삶을 위한 한 철학자의 통찰
애덤 아다토 샌델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길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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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사에서 모집한 행복을 기록하는 필사 북클럽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철학책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줄 뿐이다" 같은 주옥 같은 명언들이 모두 철학에서 나온 건 알고 있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희구 철지(希求 哲知), 즉 지혜(sophia)를 사랑(philos)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무슨 학문을 배우든 철학을 완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을 읽으려면 철학사, 즉 고대부터 중세, 근대에 걸친 방대한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를 이끌어낸 시대 배경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했다. 게다가 철학 용어는 일상 용어와 왜 그리도 유리되어 있는 건지. 독서를 하는 이유 중에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있고,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일은 어려운 철학책을 읽으며 행간 속 함의를 나름대로 골몰히 유추해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활동인 독서를 구태여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한 번씩 책을 멀리하고 싶은 '책태기'가 온다. 책을 사도 그만큼 읽지는 않는다. 독서(讀書)가 아니라 매서(買書)가 취미가 된 거 같다. 그래도 어쨌든 책을 읽어야 하니 한 권만 읽기 보다는 여러 책을 읽는다. 이른바 읽는 병렬 독서를 하다 보면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을 어느 정도는 정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중 일부는 이렇게 서평을 남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서평도 있지만, 서평단 활동으로 서평을 꼭 남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책을 받아 읽어보니 서평단에 신청할 때 기대했던만큼은 아닐지라도, 결국 책을 받기는 했으니 어떻게든 글은 써야 한다. 의무적인 서평을 남기려고 글을 쓰다 보면 분명 좋아서 하는 행위인 독서에도 활력이 떨어진다. 뭔가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그래도 결국 나는 책 살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비교적 쉽게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이렇지 않다. 먹고 살려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더 오래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이것저것 목표를 세워본다.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성취감이 들고, 이런 일이 쌓여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은 겨우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목표 앞에는 목표가, 목표 뒤에도 목표가 있다. 기껏 목표를 달성해도 ‘이제 어쩌지? 더 뭘 해야 하지?’라는 공허함이 몰려온다. 이런 공허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또다른 목표를 세워본다. 결국 우리는 자기 착취라는 굴레에 쉬이 빠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애덤 아다토 샌델은 이럴 때 어떤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자체를 위한 활동’에 세 가지 미덕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첫째는 위대한 영혼의 판단인 ‘냉철함’이다. 자신을 왜곡하는 규범과 사회에 맞서 주관을 확고히 드러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인류를 향한 유일한 사랑의 토대인 ‘우정’이다. 진정한 우정에는 통합과 대립, 유사성과 차이점 같은 반대 급부가 공존한다. 때로는 서로를 향해 격려를, 어떨 때는 채찍질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좋은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공동 활동의 동반자인 ‘자연과의 교감’이다. 우리는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을 해석하고, 형성하며, 삶의 여정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수명에는 끝이 있지만 삶이라는 여정에는 끝이 있으면 안 된다. 삶을 도착지 없는 여정 그 자체로 여기고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의 열쇠가 보인다는 게 애덤 샌델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사춘기를 겪는 주인공 라일리가 "난 부족해(I'm not good enough)"라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에 빠지게 된다. 영화 〈위플래쉬〉에 나오는 플레처 교수는 "영어에서 '잘했어(good job)'라는 말보다 해로운 말은 없다고' 앤드류를 계속 몰아세우지만, 결국 우리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간만에 철학 용어로 점철된 책이 아니라 일상을, 내 삶을 반추해볼 책을 읽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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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 수학을 사랑한 첼리스트와 클래식을 사랑한 수학자의 협연
양성원.김민형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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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서포터즈 18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알기론 서로 다른 분야 전문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주고받은 걸 책으로 엮어 크게 성공한 건 뇌과학자 정재승과 미학자 진중권의 <크로스>다. 그 후로 양자물리학자 김상욱과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의 <뉴턴의 아틀리에>처럼 일부러 상대방의 전문 분야를 주제로 이야기한 책이 있는가 하면, 노년의학자 정희원과 이동철학자 전현우가 이동과 건강에 관한 주제로 편지를 주고 받은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라는 책도 있다. 이러한 시도는 비단 도서 출판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방영되기만 하면 온갖 화제를 낳는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시리즈와 온갖 스핀오프도 결국 비슷한 시도라 봐도 좋을 것이다. 핵심은 다양성과 그 속에 자리한 교집합 속에서 우리가 어떤 번뜩이는 통찰력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얻을 수 있나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 책은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와 수학자 김민형 교수의 음악을 주제로 나눈 대담을 엮었다. 언뜻 보면 음악과 수학이 무슨 관련이냐 반문할 수 있다. 두 분야는 정말로 서로 전혀 관련 없는가? 수학은 극도로 추상적이고 이성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반면 음악에는 그런 엄밀한 이성만으로 도저히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 마음 속 감성을 자극한다. 음악과 수학 간에는 이런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도 음악이야말로 가장 ‘수학적으로 계산된’ 행위임을 곱씹어 보면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크게 반응하게 된다.

‘어떤 음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

정답 없는 문제에 관해 음악가와 수학자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만한 답으로 이어진다. 서로에 세계에 골몰하던 두 사람의 대화를 쭈욱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음악의 세계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라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수학자는 납득하기 힘든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수학 원리로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수학이 차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곳을 음악이 해준다고 여기면, 음악과 수학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우리 삶은 여전히 이어질 거다. 다만 지금보다 훨씬 팍팍하고 삭막할 것이라곤 다신있게 말할 수는 있다. 풍요로운 영혼을 위하여!


덧1. 음악과 수학의 콜라보인 저작물답게 화성학의 아버지인 바흐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보인다. 내가 몰랐던 여러 작품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덧2. 민음사 쿤데라 전집에서도 느낀 거지만 마그리트 그림이 책 표지에 쓰이면 정말 치트키가 따로 없는 듯하다. 음악 같이 추상적인 대상을 이토록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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