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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좋은 삶을 위한 한 철학자의 통찰
애덤 아다토 샌델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길사 / 2024년 5월
평점 :
*. 한길사에서 모집한 행복을 기록하는 필사 북클럽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철학책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해줄 뿐이다" 같은 주옥 같은 명언들이 모두 철학에서 나온 건 알고 있다.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희구 철지(希求 哲知), 즉 지혜(sophia)를 사랑(philos)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무슨 학문을 배우든 철학을 완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을 읽으려면 철학사, 즉 고대부터 중세, 근대에 걸친 방대한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를 이끌어낸 시대 배경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했다. 게다가 철학 용어는 일상 용어와 왜 그리도 유리되어 있는 건지. 독서를 하는 이유 중에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있고,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일은 어려운 철학책을 읽으며 행간 속 함의를 나름대로 골몰히 유추해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활동인 독서를 구태여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한 번씩 책을 멀리하고 싶은 '책태기'가 온다. 책을 사도 그만큼 읽지는 않는다. 독서(讀書)가 아니라 매서(買書)가 취미가 된 거 같다. 그래도 어쨌든 책을 읽어야 하니 한 권만 읽기 보다는 여러 책을 읽는다. 이른바 읽는 병렬 독서를 하다 보면 하루에 읽어야 할 분량을 어느 정도는 정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중 일부는 이렇게 서평을 남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서평도 있지만, 서평단 활동으로 서평을 꼭 남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책을 받아 읽어보니 서평단에 신청할 때 기대했던만큼은 아닐지라도, 결국 책을 받기는 했으니 어떻게든 글은 써야 한다. 의무적인 서평을 남기려고 글을 쓰다 보면 분명 좋아서 하는 행위인 독서에도 활력이 떨어진다. 뭔가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그래도 결국 나는 책 살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비교적 쉽게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이렇지 않다. 먹고 살려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더 오래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이것저것 목표를 세워본다.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성취감이 들고, 이런 일이 쌓여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은 겨우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목표 앞에는 목표가, 목표 뒤에도 목표가 있다. 기껏 목표를 달성해도 ‘이제 어쩌지? 더 뭘 해야 하지?’라는 공허함이 몰려온다. 이런 공허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또다른 목표를 세워본다. 결국 우리는 자기 착취라는 굴레에 쉬이 빠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애덤 아다토 샌델은 이럴 때 어떤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활동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자체를 위한 활동’에 세 가지 미덕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첫째는 위대한 영혼의 판단인 ‘냉철함’이다. 자신을 왜곡하는 규범과 사회에 맞서 주관을 확고히 드러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인류를 향한 유일한 사랑의 토대인 ‘우정’이다. 진정한 우정에는 통합과 대립, 유사성과 차이점 같은 반대 급부가 공존한다. 때로는 서로를 향해 격려를, 어떨 때는 채찍질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좋은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공동 활동의 동반자인 ‘자연과의 교감’이다. 우리는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을 해석하고, 형성하며, 삶의 여정에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수명에는 끝이 있지만 삶이라는 여정에는 끝이 있으면 안 된다. 삶을 도착지 없는 여정 그 자체로 여기고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의 열쇠가 보인다는 게 애덤 샌델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사춘기를 겪는 주인공 라일리가 "난 부족해(I'm not good enough)"라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에 빠지게 된다. 영화 〈위플래쉬〉에 나오는 플레처 교수는 "영어에서 '잘했어(good job)'라는 말보다 해로운 말은 없다고' 앤드류를 계속 몰아세우지만, 결국 우리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간만에 철학 용어로 점철된 책이 아니라 일상을, 내 삶을 반추해볼 책을 읽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