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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연극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0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지음, 홍재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1849~1912)는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대표작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헨리크 입센과 더불어 세계적인 작가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다만 국내에는 북유럽 문학이 그리 많이 소개되지 않았고(애초에 전공자도 적은데다가,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작가인 크누트 함순, 그리고 앞서 언급한 헨리크 입센 정도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고 봐야할 듯) 소설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는 희곡에서 큰 입지를 남긴 작가라 나는 이번 신간을 통해 스트린드베리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됐다.
사실 초기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대부분 북유럽 국가 출신이지만 그 중에서 21세기에도 작품이 외국어로 꾸준히 번역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고 들었다. 반면 스트린드베리는 결국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 100년이 지나서도 조국 스웨덴과 한참이나 떨어진 한국이란 나라에서 번역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톨스토이, 조이스, 카프카, 보르헤스 그리고 쿤데라, 로스, 매카시 등 세계 문학에 끼친 파급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끝내 노벨문학상을 못하고 타계한 경우가 많았다. 스트린드베리란 작가도 그 안타까운 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듯 싶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그의 대표작 2개 「미스 줄리(Fröken Julie, 1888)」과 「꿈의 연극(Ett drömspel, 1902)」를 수록했다. 주목할 만한 건 14년 사이에 그가 추구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사조가 완전히 바꼈다는 점이다. 하지절 전야에 하인인 장과 귀족인 미스 줄리라는 인물 간에 싹튼 사랑, 그리고 그 사랑과 설전이 오가는 부엌이라는 일상 공간을 무대로 삼는 미스 줄리. 계급과 성별 문제 사이에 팽팽한 위계 질서가 마구 뒤섞이는 상황을 포착했다. 반면 표제작인 꿈의 연극에서는 힌두교 신인 인드라가 등장한다. 그의 딸을 인간계로 내려보내며 딸이 만나고 다닌 여러 인간 남성들과의 관계는 앞선 작품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정신 없이, 수시로 바뀌어만 갔다.
책 뒤에 수록된 역자 해설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는 스트린드베리의 가정사에 있었다. 천한 신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콤플렉스, 어린 시절 겪은 어머니의 죽음, 세 번이나 됐던 결혼과 이혼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정신 착란을 겪는 등 마음에 큰 병을 얻었다. 특히 1890년대에 겪었던 문제가 심각했다. 다만 스트린드베리의 정신 상태만이 아니라 그 시기는 모든 분야에서 격렬하고 역동적인 변화와 발전, 즉 베르그송의 책 제목처럼 '창조적 진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미술은 재현을 포기하고 추상으로, 음악은 구성을 등지고 즉흥으로, 과학은 뉴턴의 법칙을 넘어 양자의 세계로, 그리고 문학 역시 서사가 아니라 묘사와 서술에 집착하던 움직임이 보였다. 힌두 신화의 주신인 시바는 창조와 파괴라는 상반된 개념을 같이 관장한다. 모든 분야에 시바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변화는 급진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난 것이다.
비록 스트린드베리와 프로이트가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한들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꿈'을 소재로 불후의 성취를 남겼다는 건 참 신기하고, 그래서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스웨덴에서 바다 건너 유럽 정중앙에 자리잡은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로이트를 바탕으로 슈니츨러나 츠바이크 같은 작가들이 '심리'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우리가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발현하는 곳이다. 꿈에는 현실과 달리 아무런 제약과 한계가 없으며, 한없이 자유로운 곳이다. 다른 나라에 살았어도 같은 시기를 살았던 인물들 간에 이런 공통점을 보였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의 이론 정립보다 이전에 문학계에서는 진작에 시간과 공간이 별개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