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 개정판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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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참 어려웠다. 문장은 짧았지만 읽는 내내 힘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관련글을 잘 안보는데 이 책은 안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써 놓은 비평에서 작가의 첫 작품으로 이 책을 읽으면 이해 안 될 수도 있을거라 했다. 작가의 소설들의 기반은 체험을 고스란히 녹여낸 ‘날 것’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개연성을 기반하는 소설은 다듬고 정리된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날 것’이라 한다면 사는 일은 다듬을 수가 없다. 날것 그 자체이다. 작가는 다듬지 못하고 오롯이 있는 대로 드러내야 하는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 소설을 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는 어느 한 사람의 적나라한 사생활을 염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태하는 장면이나 상대를 관찰하며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비속어가 참으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지인에게 하소연했더니 유교걸이어서 그런거라 했다. 유교걸이라니... 헛웃음이 났다.
유교걸이란 표현이 참 신선했다. 사회가 정해 준 규범들을 잘 따르는 여자. 그런 의미라면 나또한 두번째라 하면 서럽다. 그래서 이 글이 불편했던 것이었을까?

‘너는 여자니까 얌전해야지.’
‘무슨 학생이 이래?’
‘나이가 찼으니 시집을 가야지.’

나는 아직도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을 따르는 것에서 심신의 안정을 얻는다. 그러다가도 가끔 부당하다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아 내면에서는 저항해 보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약속들을 내가 깰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나의 옷장에는 채워져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것일 수 있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비워야 한다. 다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이 책은 채워갈 수 있는 것들과 채울 수 없는 것들을 나의 옷장에서 바꿔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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