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박현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은 근사하다. 저자는 세종의 정치를 당시대의 (정조는 몇백년 후지만) 9명의 눈으로 본, 아홉개의 그림들을 모아서 그려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저자의 해석이나 추론은 최대한 자제하고 사료를 재구성하는 데 전력하면서, 사료가 침묵하는 부분은 상상적 고찰로 풀어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의도는 전혀 실천되지 못하였다. 그나마 한 가지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사료를 깊게 읽고 그것으로 최대한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뿐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이 책은 아홉개의 그림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저자의 국가관을 투영하여 조선초기의 정치에 관해 수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술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세종의 정치에 대한 이해를 단 한발짝도 진전시키지 못하였다. 오히려 저자 자신의 국가관과 정치관만 짜증스럽게 되풀이 하여 들은 느낌이다.

일단 제목부터 맞지 아니하다. 이 글은 세종에 대한, 세종의 정치에 대한 글도 아니다. 이 글의 주소재는 조선 초기, 태종부터 세조까지,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하나의 국가로서 기틀을 다지던 시기이다. 그것으로 저자는 자신의 국가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얼핏 저자가 왕조시대의 국가관을 배워 다시 현대로 가져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자가 현대 국가에 가지고 있는 국가관을 그대로 가지고 왕조시대로 들어가 자신의 국가관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포장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저자의 국가관은 서설에서 태종의 국가관인 것처럼 서술한 부분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p.21; 나는 저자의 국가관과 정치관에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고,  이 글은 저자의 서술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이므로 일단은 덮어둔다.) 어쨌든 왕조시대의 국가관과 근대의 국가관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부터 확립해야 하나 저자는 무슨 연유인지 그러한 비교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리고 끝낸다.

이 책에서 의욕적으로 제시하는 서술방법의 두 가지 특징은 당시대의 9명의 눈으로 재구성했다는 것과 필요할 시에 상상적 고찰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먼저 9명의 그림을 모았다는 부분. 그 9명을 선정할 때부터 큰 위험을 안고 있었다. 보통 이런 방식을 취할 경우에는 기존의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나, 하층민, 상상의 화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이 책은 매우 중요한 9명의 역사적 인물을 취했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기록이 남아있고, 많은 연구와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인물들 9명, 세종까지 10명은 그 한 명만을 취해도 어려운 일인데 10명을 섞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기에 이 글은 실제적으로 9명의 시선을 섞지 않고 있다. (세종의 시선은 사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조선건국부터 세조의 시기까지 거의 연대기적으로 배열하여 각각의 화자들의 시선은 결코 섞이지 않고 있다. (정조의 부분은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시선으로 글을 구성하고자 하였으면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건을 둘러싸고 각각의 화자들이 어떻게 보는가를 모아야 그 장점이 들어날텐데 이 글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상상적 고찰의 문제. 한 마디로 저자가 말하고 사용하는 상상력은 역사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없고 단지 수사적 상상력에 불과하다. 일단 앞서 말했듯이 9명의 화자를 각기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부터 수사적 상상력을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 실록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나 가끔 실록이외의 자료를 이용하여 구성할 때 시기가 맞지 않은 자료를 별다른 고민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 화자로 설정하였다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여기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중요한 역사적 인물들이고 그들에 관한 기록과 그들 자신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에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하겠다. 실제로 저자는 거창하게 상상적 고찰을 운운했지만 결국엔 각 자료들의 서술상의 연결을 위한 서사적 상상력에 머물거나, 자신의 역사적 해석과 국가관 및 정치관을 그대로 투영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런 문제점들을은 이 책의 화자들을 저자로 단순히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통일된 서술체계가 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차라리 그렇게 썼더라면 그나마 조금은 나은 책이 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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