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비슷한 연배의 여덟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처음 <여자전>이란 제목을 보고는 여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들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읽어보니 제목이 <여자전>인 이유는 단지 그들이 여자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이 여자란 사실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여자였단 사실은 그들의 삶을 풀어나가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준 하나의 요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의' 요인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여자들의 이야기이지만 여덟개의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오셨나를 느낄 수도 있지만, 그들 각자의 살아온 궤적을 하나로 여기면 안된다. 요사이 이런 유형의 책들, 큰 이야기보다는 작은이야기를, 사회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많은 경우, '대표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어떤' 것을 구성해 보려는 노력들을 하는 것 같다. 애매하다. 무엇이 대표적인 것이고, 무엇이 평범한 것일까? 여러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수렴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그것은 왜곡이 아닌가?

여튼, 이 책은 이런 난점들을(어쩌면 쓰잘데기 없는 문제들인)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휙 지나가버린다. 단지 여덟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무한한 애정을 가지며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정갈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간혹 거슬릴 정도로 너무 호흡이 짧은 문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사족이겠지만 한 가지만 더. 어쨌든 이 글들은 각 할머니 자신들의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믿지 못할 정도의 이야기도 좀 있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규정하다보니 그렇게 굳어져 버린, 그렇게 믿게 돼 버린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것처럼, 작가가 들을 이야기 중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취합하고 구성하여 이 책을 쓴 것처럼, 읽는 사람들도 자신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가의 글쓰기 단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비판적 시각이 있어야만 하는 종류의 글이라고 여겨지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너무 따뜻한 시각만 견지한 것은 아닐까?)

여덟의 이야기가 다 다르게 와 닿는다. 그런데 유독 마지막의 이영숙 이야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평소부터 조선왕실의 마지막 구성원들(고종, 순종, 명성황후 등등)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이 첫째 이유겠지만, 어쨌든 이영숙의 이야기는 자꾸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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