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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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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작가들은 그 자리에서 저마다 할 수 있는 말들을 했다. 나는 좀 당황한 나머지 부끄럽고 두루뭉술한 얘기를 했다. 절망에 대해 혹은 희망에 대해 모두가 한마디씩 하고 이윽고 이창근씨 아내인 이자영씨 차례가 왔을 때, 그녀는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시절로 혼자 돌아가듯 담담하게 말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 앞에서 나는 좀 놀랐다. 그러고 그 '놀랐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자영씨는 여기서 어떻게 더 노력하라는 건지,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때때로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 속에선 황량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중략)

 

지난달, 임시분향소에 갔을 때, 고잔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넘게 조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운동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주위에 수다를 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떠드는 건 오직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원 바깥에서 그네를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뭐라 외치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모든 게 마치 전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상복을 입은 내가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삶의 생생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슬픔 속에 숨기려 해도, 환멸 안에 감추려 해도, 냄새처럼 기어코 드러나고야 마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그 '어쩔 수 없는 선명함'이었다. 분향소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부모님을 따라온 몇몇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느 청년은 모래바람 한가운데서 입을 가린 채 중간고사 교재를 읽고 있었다. 은색 스팽글이 잔뜩 달린 분홍색 손가방을 든 여자아이의 취향은 참으로 초등학생다워 어여뻤고, 엄마 품에 안긴 채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아기의 무지는 그 자체로 아기다워 고마웠다. 거기 나온 이들은 다들 어렵게 시간을 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인들에게 나름 인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야 나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싶었던 것 못지않게 나와 같은 감정, 같은 슬픔을 느끼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곧 거기 모인 이들의 분노와 원망,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과 슬픔도 결국 모두 산 자의 것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건, 죽은 자들은 그중 어느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거였다. 산 자들이 느끼는 그 비루한 것들의 목록 안에서조차 그들이 누릴 몫은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김애란, <눈먼 자들의 국가> 중

-

분노와 원망,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과 슬픔을 써 내려가던 작가는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내가 죽는 꿈을 꾸었던 어느 날, 살아있다는 실감을 되찾으려 서둘러 몸을 뒤척여 사방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때 조차 가슴 깊이 그것을 두려워했지만, 죽음은 두려움까지도 죽이고 만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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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즈 야스지로 한나래 시네마 17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윤용순 옮김 / 한나래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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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가 재개봉한다.

 

한달 전 쯤에는 <부초(1959)>를 필름으로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또 그로부터 두어달 전에는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리뷰를 쓰면서 오즈를 다시 생각할 계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야마다 요지의 <동경 가족(2014)>이 개봉하기도 했고. 지금 오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행운처럼 느껴진다.

 

언뜻 웨스 앤더슨과 오즈 야스지로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아래 발췌한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을 보면서 현대 감독 중 한 사람이 떠오른다면 단연 웨스 앤더슨이 아닐까 싶다. 화면의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을 자의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전에 없던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전략. 그것이 웨스 앤더슨이 오즈와 공유하는 접점이며 데이비드 보드웰이 the Ozu Strategy라고 명명한 것이다.

 

"영화에는 언어 사용에 즈음하여 그 발화나 해독을 규제하는 절대적인 질서로서의 문법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은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자유가아니다. 모든 영화 작가는 재능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부자유를 피하기 어렵다.

이 사실로부터 오로지 고정 화면에 집착한 오즈 야스지로가 결코 풍부한 영화적 가능성을 계속해서 방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원래 시작부터 영화는 두드러지게 부자유한 환경에 속해 있다. (중략) 또한 가장 자유스러운 영화는 전략적으로 그 부자유를 철저히 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한계를 두드러지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즈 야스지로는 더없이 자유로운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는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 '날이 개인다는 것' 일부.

하스미보다 오즈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즈를 백주의 작가로 묘사하면서, 오즈가 백주의 작가였기 때문에 드물게 등장하는 비내리는 장면의 감동이 더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부초>에서 처마 밑으로 쏟아지던 빗방울...) 오즈의 미학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생략과 절제가 전부는 아니다. 하스미 시게히코에 따르면 갑작스러움, 대담함이야말로 오즈 미학의 정체라 할 수 있다.

 

"아내가 숨을 거둔 바로 그 날, 이른 아침부터 동경과 오사카에서 달려온 아이들과 친척들이 모인 집을 빠져 나와 아버지인 류 치슈는 혼자서 조망이 트인 정원 구석에 서서 밀집된 인가의 지붕 너머로 바다를 본다. 며느리인 하라 세츠코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그 옆에 머문다. <동경 이야기>의 끝 부분에 위치한 이 장면에서 아내를 먼저 보낸 류 치슈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하라 세츠코는 모두가 기다리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 때 시아버지는 아내와 헤어짐의 의식이 거행되려는 날이 더운 하루가 될 것이라고 작게 말을 한다. 사실 두 인물의 배후에는 맑게 개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런 날씨에 대한 언급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기호를 읽어야 할까? 그는 지금부터 평소와는 달리 특히 무더운 날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평소와 같이 또한 그 날도 더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어쨌든 보는 이들이 화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쾌청하며 더운 날이 시작되려 한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오즈의 맑은 아침이다. (중략) 오즈에게는 사물의 윤곽을 애매하게 떠올리게 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는 백주白晝의 광선의 작가이며 미묘한 뉘앙스보다는 과도한 선명함을 고집한다. 하늘은 애매하게 구름이 끼거나 하는 것을 금지당한 채 단지 맑게 개어있는 것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중략)

오즈의 시정이란 이런 대담한 섬세함 속에서 촉지되어야 한다.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오즈의 화면은 계절적인 수사학의 서정에 젖는 일이 결코 없으며 그 내러티브의 지속은 놀라고 싶다는 우리의 필름적 욕망조차 넘어서 버린다."


"백주의 작가"와 재회하기 좋은 계절.(조금 늦은 걸지도.)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요즘이지만, 눈이 아프도록 쨍한 날 하루 <동경 이야기>를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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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 쓴 일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409
박성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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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 테이프를 뜯는다

 

가까운 속눈썹을 여기, 떨림이라고 두고

나는 한쪽으로만 집착할 각오로 발목을 자른다

 

이규가 어찌 성립되었든

마스카라 뷰러로 칼을 갈았거나 눈을 감아 얼굴에 능선을 만드는 일

눈에 혈통을 묻는 일, 다시 말해

잘린 발목으로 당신 속눈썹을 반만 붙잡는 일

감금한 내 몸 일부를 팽팽하게 당겨 소거하고, 당신의 시선 쪽으로 발자국을 놓는다

 

황색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각질들이 흰색을 띠는 것처럼

본래에서 색을 절충한, 투명은 붙잡을 것이 있어, 투명은 투명

 

투명한 피를 흘리는 나는 얇거나 지나치다

돌아보는 길을 돌려다가 대답을 만들고

끈적한 너는 바라봄으로써 날을 세운다

칼을 물고

발에게 피를 묻고, 나는 대답이 없다

 

준비된 곁으로 나는 한 번은 부딪힐 이유이다

 

그만, 그만, 너를 붙인다

의도하지 않아도 지문이 남아 있다

 

박성준, '기대심' 전문, 시집 <몰아 쓴 일기> 중

 

-

박성준의 어떤 시들은 발목이 잘려 몸이 기울어진 사람의 단말마 같다.

시집을 넘기는데 팔다리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나조차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육체, 육체에 앞서거나 뒤쳐지는 자아,

관계의 부산물들이 의도하지 않은 지문처럼 남는다.

 

시인은 이 총체적인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무력감에 짓눌리는 대신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보려는 것 같다. 통증 속에서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삶에 대한 도착적인 열정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살아있다는 증명이 오직 병뿐인 당신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통증을 만든다"

 

'회복기의 노래' 부분

 

-

일기를 몰아 쓴다. 어떤 날들을 간신히 기억해낸다. 나는 내게 가까스로 붙들린다.

당분간은 이 시집을 붙들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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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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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읽었던 어느 날 이후로, 무덤처럼 깊고 좁은 어둠 속으로 머리를 들이 밀 때마다 다시 보게 된다. 오래 묵은 습관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사물이 되고 사물은 우리가 되는 순간을. 그 느리고 평범한 죽음의 과정을. 그렇게 한벌의 수저가 되어 간밤 꿈으로 찾아온 당신의 죽음을.

-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겆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베인 곳을 또 베었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 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녹슨 못이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유희경,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전문,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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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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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강성은, '기일(忌日)' 전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중


-


내가 내는 소리 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시집이 뒤척이는 슬픔 주위를 내내 서성이며 책장을 부스럭거렸다. 마지막 연이 어쩐지 하이쿠와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바르트가 바쇼의 하이쿠를 두고 이렇게 논평한 것이 떠올랐다.


"가을날의 보름달

밤새 내내

연못 주위를 서성이네."

 

슬픔을 말하는 데에는 '밤새 내내'란 표현보다 더 간접적이고도 효과적인 표현은 없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


나는 버리고 줍기를 반복한다. 너는 때때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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