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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즈 야스지로 ㅣ 한나래 시네마 17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윤용순 옮김 / 한나래 / 2001년 1월
평점 :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가 재개봉한다.
한달 전 쯤에는 <부초(1959)>를 필름으로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또 그로부터 두어달 전에는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리뷰를 쓰면서 오즈를 다시 생각할 계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야마다 요지의 <동경 가족(2014)>이 개봉하기도 했고. 지금 오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행운처럼 느껴진다.
언뜻 웨스 앤더슨과 오즈 야스지로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아래 발췌한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을 보면서 현대 감독 중 한 사람이 떠오른다면 단연 웨스 앤더슨이 아닐까 싶다. 화면의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을 자의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전에 없던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끌어내려는 전략. 그것이 웨스 앤더슨이 오즈와 공유하는 접점이며 데이비드 보드웰이 the Ozu Strategy라고 명명한 것이다.
"영화에는 언어 사용에 즈음하여 그 발화나 해독을 규제하는 절대적인 질서로서의 문법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무엇을 하든 가능하지만 그 가능성은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절대적인 자유가아니다. 모든 영화 작가는 재능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부자유를 피하기 어렵다.
이 사실로부터 오로지 고정 화면에 집착한 오즈 야스지로가 결코 풍부한 영화적 가능성을 계속해서 방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원래 시작부터 영화는 두드러지게 부자유한 환경에 속해 있다. (중략) 또한 가장 자유스러운 영화는 전략적으로 그 부자유를 철저히 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한계를 두드러지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즈 야스지로는 더없이 자유로운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는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 '날이 개인다는 것' 일부.
하스미보다 오즈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즈를 백주의 작가로 묘사하면서, 오즈가 백주의 작가였기 때문에 드물게 등장하는 비내리는 장면의 감동이 더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부초>에서 처마 밑으로 쏟아지던 빗방울...) 오즈의 미학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생략과 절제가 전부는 아니다. 하스미 시게히코에 따르면 갑작스러움, 대담함이야말로 오즈 미학의 정체라 할 수 있다.
"아내가 숨을 거둔 바로 그 날, 이른 아침부터 동경과 오사카에서 달려온 아이들과 친척들이 모인 집을 빠져 나와 아버지인 류 치슈는 혼자서 조망이 트인 정원 구석에 서서 밀집된 인가의 지붕 너머로 바다를 본다. 며느리인 하라 세츠코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그 옆에 머문다. <동경 이야기>의 끝 부분에 위치한 이 장면에서 아내를 먼저 보낸 류 치슈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하라 세츠코는 모두가 기다리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 때 시아버지는 아내와 헤어짐의 의식이 거행되려는 날이 더운 하루가 될 것이라고 작게 말을 한다. 사실 두 인물의 배후에는 맑게 개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런 날씨에 대한 언급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기호를 읽어야 할까? 그는 지금부터 평소와는 달리 특히 무더운 날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평소와 같이 또한 그 날도 더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어쨌든 보는 이들이 화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쾌청하며 더운 날이 시작되려 한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오즈의 맑은 아침이다. (중략) 오즈에게는 사물의 윤곽을 애매하게 떠올리게 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는 백주白晝의 광선의 작가이며 미묘한 뉘앙스보다는 과도한 선명함을 고집한다. 하늘은 애매하게 구름이 끼거나 하는 것을 금지당한 채 단지 맑게 개어있는 것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중략)
오즈의 시정이란 이런 대담한 섬세함 속에서 촉지되어야 한다.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오즈의 화면은 계절적인 수사학의 서정에 젖는 일이 결코 없으며 그 내러티브의 지속은 놀라고 싶다는 우리의 필름적 욕망조차 넘어서 버린다."
"백주의 작가"와 재회하기 좋은 계절.(조금 늦은 걸지도.)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요즘이지만, 눈이 아프도록 쨍한 날 하루 <동경 이야기>를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