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소금 >, 빔 벤더스, 훌리아노 살가도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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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 인생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이 땅의 소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살가도의 사진 푸티지 사이사이 이 영화의 공동연출자이자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아들이기도 한 훌리아노 살가도의 기록영상이 끼어든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연출자 빔 벤더스가 살가도의 촬영현장에 동행하여 작업 중인 살가도의 모습을 담아낸다. 인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인 만큼 다양한 주변인들의 증언이 등장할 법도 하지만 전무하다시피 하고, 내레이션의 대부분을 벤더스, 훌리아노, 그리고 세바스티앙 살가도 자신이 맡고 있다. 그 때문인지 영화 전체가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친절하게 해설하고자 하는 코멘터리 영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영화는 이토록 단촐한 구성으로 일생을 사진에 바쳐온 작가의 삶과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이 땅의 소금>은 결과적으로는 어딘지 단순하지 않은 영화가 되었다. 일단 살가도의 사진 푸티지가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 영화도 그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따라붙었던 윤리적 문제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선한 의도를 배반하는 사진의 미학적 효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름다울 수 없는 대상을 아름답게 재현해내는 예술가의 권능은 정말로 무죄일까? 벤더스의 카메라가 다큐멘터리 영상 특유의 현장성으로 인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과 비교하여, 탐미적으로 거의 완벽에 이른 한순간을 포착한 스틸 이미지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를 얼마나 압도하는가.
백곰을 찍는 살가도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 그는 오두막에 숨어 대상을 염탐하고 포복자세로 대상에 접근한다. 이때 그는 총구를 겨누듯 렌즈를 조준한다. 영화는 살가도와 백곰의 교감을 강조하려는 듯 백곰과 살가도의 유사한 행동을 평행 편집으로 보여주지만, 이 시퀀스가 상기시키는 것은 적군과 아군의 대치상황 - 전쟁영화이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살가도의 사진을 다소 엄격하게 비판하며 말한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진들의 초점, 모든 것을 그들의 무능함으로 환원하는 그 초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 게다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고통이나 불행은 너무나 엄청날 뿐만 아니라 도저히 되돌릴 수도 없고 대단히 광범위한 까닭에 아무리 특정 지역에 개입을 하고 정치적으로 개입을 하더라도 그다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손택은 사진 이미지가 사람들을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살가도의 사진은 손택의 기준에서 충분히 윤리적이지 못했다. 살가도에게 인간은 구제불능으로 악하다. 오직 자연만이 선하다. 오랫동안 인간의 고통을 다루었던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살가도 역시 종래엔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으로 회귀했다. 최초엔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탐욕에 호기심을 느끼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작가가 오랜 시간 인간의 고통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잔혹함에 환멸을 느끼기까지, 그 일련의 사진 여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의 깊은 절망과 무력감에 쉽게 반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손택의 이의제기 역시 유효하다. 대상에 대한 호의로 가득 찬 연출자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소금>은 애초에 목표하지 않았던 쟁점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