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심리학 - 단번에 상대의 성격을 간파하는
제바스티안 프리드리히.안나 뮐러 지음, 서은미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매~우 눈치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한동안 상당한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눈치를 봐서 말하지 않아도 재깍재깍 해내야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어찌나 잘 알고 실행하던지. 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암묵적으로 그런 정보들을 다 알고 행동하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게 가장 어려운 말은 그것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지!"

이를테면 '야, 오늘 차장님 기분 안 좋으시잖아. 비 오는 날이고 저 옷 입고 오신 거 보면 오늘 기분 최악이야. 조심하자.'하는 대리님의 말은 마치 천기를 내려받은 천상계 사람의 말과 같았고, 센스 있고 재미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회사 선배에게 늘 비슷한 모양의 넥타이만 매는(심지어 같은 티셔츠를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 공기업 선배를 소개시켜줘 머리에 알밤을 먹은 적도 있었다. 물론 눈치 없음이 어떤 ...경우에는 순진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애정의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되돌이켜 보면 직장 생활에서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의 대부분이 나의 그 '눈치 없음'에서 기인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쓰다 보니 마음이 아파지려 한다.ㅎㅎ

 

그런 나에게 '단번에 상대의 성격을 간파하는 취향의 심리학'은 얼마나 반가운 이름이었던가! 이 얼마나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는지! '제바스티안 프리드리히'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이 독일 심리치료 전문가는, 이 책에서 '신체언어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취향'이라고 밝히며, 휴대폰, 넥타이, 양말, 자동차, 시계, 반지, 냉장고, 여행가방 싸는 스타일, 가구 선택 등등의 사소한 것들로 어떤 사람의 취향을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볍게 심리 테스트를 하듯 '나는 어떤 성향이지?', '내 남편은 어떤 취향이지?'하고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데, 평소 내가 노랑색을 좋아했던 것과 나의 남편이 SUV만을 고집하는 것,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신형 냉장고를 애지중지하시는 마음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책을 통해 힌트를 얻게 되었다.

 

나만 몰랐던 건지 ㅠㅠ 나중에 비싼 물건을 사게 된다면, 어떤 것을 사야할지도 대강 마음에 정하게 되었다. 각 명품에 대하여 사람들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작은 액세서리에 있어서도 정제된 디자인의 심플한 반지를 좋아하는 사람의 자의식이 오히려 강하다는 부분에서는 격하게 동의했다. 읽다 보면 뜨끔하는 부분도 있고, 다른 사람의 취향이 이러했구나 짐작하게 되는 부분도 있어서, 페이스북계의 신이라는 '봉봉'에 비견하는 신뢰감으로 술술 읽어나갔다.

 

그러나 인간이란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취향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간단히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취향은 시간이 가면 변하게 마련이고, 취향은 어떠한 경향성 없이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단서들이 한 사람의 성격을 빙산의 일각이나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이루는 데 있어(특히 오래 곰삭는 가족같은 관계가 아닌, 빨리 파악해야 하는 공적인 관계에 있어) 취향의 파악이 중요하다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부분일 것이다.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한 이 독일 박사님의 책을 며칠 동안 나누어 읽으며 내 취향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와 가까운 이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외양이나 말투, 행동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피면 이러한 많은 단서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간 나는 너무 많은 것에 무관심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배려 없이 행동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좀 하게 되었다.(그동안 내가 소개팅 시켜준 사람들이 왜 잘 안 되었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ㅠㅠ) 앞으로 어떤 물건이나 가구를 볼 때마다 이 독일 박사님의 진정성 있는 유머가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아래와 같은 부분은 특히 인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부분으로서, 박사님의 유머가 잘 드러난 부분이라 지하철에서 읽다가 누군가 생각나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ㅎㅎ

 

남이 적어준 구매 목록을 가지고 장을 보러 간 사람들은 일회용 비닐 봉투를 여러 개 사서 물건을 담고 주로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이미 계산이 끝난 뒤에도 계산대 옆 진열대에서 껌을 하나 골라 들고는 바지 주머니를 한참 동안 뒤적인 끝에 찾아낸 현금으로 다시 한 번 계산한다. 이렇게 획득한 노획물을 구매 목록을 작성한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내놓긴 하지만, 이들의 장보기 결과가 두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들이 다시 장보기를 부탁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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