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 필로소픽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을 기록한 산악에세이 <검은 고독, 흰 고독>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165)

    

 

이 책은 단순히 산을 오른 모험담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저자인 라인홀트 메스너 산을 오르는 행위를 통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감동적인 자기고백이다. 저자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과정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산악인에게 산을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서 그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것일까? 이 두 가지 물음은 산악인을 떠올렸을 때 늘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고 나면 비로소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한 산악인의 기록이며, 더 나아가 한 남자의 기록이고, 인간으로서 남길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등반기이지만 오히려 철학 서적보다도 더 깊이 있는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을 담고 있다. 어떤 구절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개인의 명예를 위해 산에 오르고, 또 어떤 이는 조국의 명예를 위해 오른다. 그러나 메스너는 그러한 이유만으로는 산에 오르지 않는다. 그가 산으로 가는 것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함도,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다. 그는 절대고독과 마주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동생을 잃은 바로 그 산(낭가파르바트)을 그는 오른다. 모두가 단독등반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그 산을 메스너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진 채 홀로 오르는 데 성공한다. 그가 산에서 느끼는 절절한 고독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그러한 고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가 산을 오르는 과정은 자연의 불가해한 힘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메스너는 그런 오만한 승리에 도취되기 위해 산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산에 올라 고독과 마주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얻는다. 결국 그를 괴롭히던 고독은 두려움이 아닌 힘이 되었다. 메스너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산을 오르겠다는 그 순수한 목표에 집중했기에, 그는 산의 정상만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고독을 함께 정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수한 목표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산악인 메스너를 만들었다. 어떤 일을 순수한 열정으로 하다보면 결국 에 이르고, 도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홀스너는 몸소 보여주었다. 산에 왜 오르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산에 올라가야 한다. 어느 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깨달음처럼 다가온다. 삶에서의 열정을 잃어버린 채 눈앞의 사소한 것들만을 겨우 겨우 모면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산악인 홀스너의 글과 도전은 꽁꽁 얼어버린 열정을 다시 깨어나게 할 망치가 되어준다. 책을 덮으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