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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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흔히 어떤 이를 돈 키호테 같다, 라고 말하면 분명 좋은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은 다소 엉뚱한 이를 가리켜 돈 키호테 같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돈 키호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풍차를 향해 덤벼들고, 시골 처녀를 공주라 여기고, 주막을 성으로 여기는 괴짜 돈 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는 왜 돈 키호테와 같은 인물을 창조했던 것일까요? 작가 서영은은 세르반테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며 돈 키호테의 정신을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책을 읽으며 돈 키호테의 열정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저 광기로밖에 비춰질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의 열정은 지고의 선()을 향한 발걸음이었으며, 영적인 완성을 위한 삶이였음을 알게 됩니다.

저자는 돈 키호테가 진짜 기사는 아닐지 몰라도, 그가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기사라고 믿기 때문에 그의 삶은 연극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끝없는 자기 확신인거죠. 조금의 위험도 용납하지 않고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당시 스페인의 시골 귀족들에게도 돈 키호테처럼 위험을 찾아다니는 삶은 그저 부정하고 싶은 그 무엇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했기에, 비겁하게 돈 키호테의 용맹함을 광기라고 치부해버리고 마는 거죠.

 

어느 날 밤, (돈 키호테)가 산초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길을 떠나자마자, 그의 출정은 곧바로 남아 있는 자 모두를 안주하는 자로 만들어버린다. (156)

 

 

저자가 가는 곳마다 만나는 돈 키호테와 산초의 동상들, 그리고 작가 세르반테스의 흔적들, 하지만 그런 흔적들과 동상에서가 아니라, 저자가 걷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돈 키호테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행의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 여행의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무얼 깨닫고, 보게 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죠. 그렇지 못하다면 남는 것은 그런 여행지들에서 찍은 의미 없는(우리는 의미 있다고 착각하는) 사진들뿐이겠죠. 여행에서의 흔적은 사진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돈 키호테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의 싸움은 세상의 상식과의 다툼이고, 일상의 안일함과의 치열한 싸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자는 돈 키호테의 무모함은 믿음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세상 모두가 비웃는다 해도 그의 믿음은 늘 생생하게 깨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인간은 누구나 편안함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숨이 막힐 것만 같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우리가 만약 이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모두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모두가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건데, 우리는 그 틀을 벗어난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직장에 다녀야하고,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하고, 정년이 될 때까지 죽어라 일하고, 일을 그만두고 나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당하고, 비로소 정신을 차려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죽는 그 날까지 마비되어 살다 죽을 수도 있는 거겠죠. 돈 키호테가 빼든 창은 바로 그런 삶을 겨눈 것이 아닐까요?

돈 키호테에서 묘사하고 있는 푸른 벨벳옷의 신사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얼핏 보면 위대하고 교양 있는 모범적인 삶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삶의 위선을 꿰뚫어 보는 이는 오직 돈 키호테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이 여정에 오른 것도, 예수님이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신 그 검 혹은 돈 키호테의 높이 쳐든 창과 같이 어떠한 자기기만도 피해갈 수 없는 그 엄정한 겨눔에 자기를 꿰어, 진정 산 자로서 남은 여생을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 부분을 읽으면, 돈 키호테가 나선 길이 결코 광기에 의존해서만 나설 수 있는 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열정과 확신, 그리고 세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커다란 용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은 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싸운다면, 누구나 내 편이 되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과 맞서 싸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아무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돈 키호테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발걸음은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자는 돈 키호테의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바람(익힘, 기다림, 숙성)의 실상實像, 나타남에 이르는 것인데 반해, 속임수는 바람이 전혀 없으면서 입술로만 말하는 거지요.

 

책을 덮고 나서, 돈 키호테의 창이 제 심장(양심)을 겨누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살아서 숨만 쉬고 있었을 뿐, 나는 제대로 산 자로 살아있었는가, 입술로만 말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저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책이 제가 애써 무시했던 진실을 일깨워 주었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해 주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갔던 길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대로 책에 실린 컬러 사진을 보고 또 보며 마음으로나마 그 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이 책을 통해 산 자로서 더 나은 삶, 깨어있는 삶, 보다 가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삶을 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요?

 

오랜만에 가슴을 쿵쾅대게 하는 좋은 책을 만나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표지만 봐도 가슴이 울컥하네요.

 

세상아, 결투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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