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이란 말이 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없습니다.
산유국産油國이란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것이 생산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소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상의 생물을 동물, 식물, 미생물로 분류한다면, 생산자는 식물밖에 없습니다.
동물은 철저한 소비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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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인간관계 마저도 화폐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천민적 사고입니다.
그 두 사람은 학창 시절 운명적인 사랑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인이 뛰어난 작가이거나 아니면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연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인간적 품성이 제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품사회의 문맥이 보편화되어 있는 경우 인간적 정체성은 소멸됩니다. 등가물로 대치되고 상대적 가치형태로 존재합니다. 상품사회의 인간의 위상이 이와 같습니다. 인간 역시 상품화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간 이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직업과 직위 그리고 수입과 재산을 궁금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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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파출소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유일하게 자주국방 체제를 갖춘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가 이 노랑머리에게 여성다운 품행을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여자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입니다.
그 여자를 돌로 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오만 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무지함이 아닐 수없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순수한 어떤 것을 상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왜소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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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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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 추억을 또박또박 휴지에 적고 있는 동안만은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습니다.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는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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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름이 뭐야?"
"이름은 왜요? 그냥 번호 부르세요. 쪽팔리게."
어쩔 수 없어 자기 이름이 ‘응일 應-이라고 했더니, 한일 자 쓰냐고 또 묻더랍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뉘 집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혼자 말씀처럼 그러더래요.
이름자에 한 일자 쓰는 사람이 대개 맏아들입니다.
영일이 정일이 태일이 등입니다.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날 밤 한 잠도 못잤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모님과 누이동생 생각으로 잠 잘 수 없었습니다. <중략>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 경우처럼 ‘뉘 집 큰아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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