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자기뼈의운명을알겠는가 #토머스브라운 #하이드리오타피아 #아티초크 #서평 인간은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기도 한다. 죽음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임에도 자신에게서 가장 멀기를 바란다. 그만큼 죽음이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다. 모든 활동은 죽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고 늙지 않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몸은 생명 활동을 멈춘다. 남는 것은 유골과 삶의 흔적들. 그 뼈에는 뼈의 물리적 성분들 뿐 아니라 사자가 더 긴 삶을 위해 쏟아낸 혼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인간은 후에 자신의 유골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더욱 소중하게 다루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은 끝나더라도 나의 고군분투했던 흔적은 고귀하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라는 제목은 내게 말한다. 네 뼈의 운명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자세히 알 필요도 없고 네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오히려 현생을 가장 소중하게 다루고 지금의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며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라고. 그것은 즉 후생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현생에 최선을 다하면 후생은 다 잘 처리될 거라는 의미 아닐까.사실 유골을 묻을지 화장할지는 인간이 정한 장례법일 뿐 더 크고 높은 차원에서는 문젯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한낱 인간에게나 생이 끝나는 것이지, 혼의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여권 심사의 과정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의 남겨진 몸은 다음 단계로 가는 관문에 들어가기 위해 혼이 던져버린 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뼈가 묻히든 태워지든 자연히 썩든 그저 잘 머물렀던 이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게 두는 것이 가장 예를 갖춘,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책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내게 인간의 몸에 대한 집착, 자신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은 심리를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하듯 이야기해 주는 은둔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몸이 사후 어떻게 될지 보다는 내게 지금 주어진 작은 것들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고 있다. 그 이후의 일은 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좋은 책 제공해 주신 출판사 아티초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