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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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윤혜정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다. 예술가들과 전시들을 설명하는 그의 철학적, 윤리적, 독창적 문체와 표현들에 매료되어서 이 책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계기로 그분의 다른 책들도 다 읽어야겠다는 집념이 생겼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여느 예술전시회를 보더라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예술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크게 알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처음 본 순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 좋은 것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던,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 관람객이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는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어야 하는 것도 알았다. 또한 관객이 그 표현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멋보다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각성을 했다.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어떻게 볼지에 너무나 신경을 써왔고 그것이 내겐 맞지 않는 습관이란 걸 인식하지 못했다. 저자 윤혜정이 들려주는 다양한 현대 미술가들과 그들의 정신세계, 표현 형식, 그리고 저자의 경험담들은 나를 깨어나게 해 주었다. 내가 우물 안에서 천하를 바라고 있었구나. 우물을 우주라고 여기고 있었구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작가는 ‘그것이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우리는) 가야 한다.’라는 당위 하나로 그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해야만 할 것이 보이고 느껴지니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재료를 선택한 이유도, 그 재료에 부여한 의미도, 그리고 내 그림들에 담은 스토리도 그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나의 강한 끌림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한다. 잘 보이려고, 그럴듯해 보이려고 작가노트를 쓴다거나 작업을 하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잘못된 태도이다.

좋은 작품은 그 작품이 어디에 놓이든, 어떤 작품 옆에 배치되든 잘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컬렉터 아인스타인 부부가 말했다(p137). 설령 무채의 작업이라 해도 색으로 넘치는 곳에서는 작은 흑백이 보는 사람을 향해 손 흔드는 하나의 숨은 픽셀이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채인 곳에서는 다채의 무엇이 보는 사람들을 목마르게 하는 그것이다. 묻히면서도 묻히지 않는, 가려운 곳을 알아주는 작품.

“리히터가 예술가의 조건에 가장 엄격한 탐구를 실천했다면, 시에는 인간의 조건에 가장 극단적인 탐구를 실천했다. 리히터가 평생 잡히지 않는 진실을 그리기 위해 희망이라는 영원한 딜레마 속에 갇힘으로써 스스로에게서 해방되었다면, 시에는 실제로 제 몸과 생을 시간의 프레임과 우리에 가둠으로써 제 자신에게서 해방되었다.” - p224

어쩌면 예술가는 ‘자신’이라는 가장 강력한 올가미에서 벗어나려 온 생을 몸부림치는 사람일까도 싶다. 여기서 자신이라는 것은 자유롭고 싶은 나를 잡아두려는 반대의 나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각 자아를 옥죄는 사회적 이념을 말하는 것 아닐까도 싶다. 그렇게 보니 이 책에서 소개된 예술들은 작가들이 자신의 전 생애를, 어디에도 속하려 하지 않고 이것, 저것으로 명명되고 싶지 않은, 그저 어디의 사이에 존재함에서 오는 만족을 표현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이는 것 밑의, 숨겨진 곳의, 때로는 우리네 미물들은 파악 못할 거대한 전체의 은밀한 이벤트들을 느끼고 보여주는 것이 내가 추구할 예술임을 마음에 꾸욱 새겼다.

값진 가르침 주신 저자 윤혜정 님, 그리고 좋은 책 제공해 주신 을유문화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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