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여름에는 호캉스를 다녀왔다. 여름휴가 기간에 유독 수도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소심한 나는 차마 서울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평생을 살아 온 서울에서 여행객처럼 지내보기로 했다.

 

여름휴가란 모름지기, 비행기를 타고 다섯, 여섯 시간을 날아가서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호텔에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통유리창 너머로 열대지방의 이국적인 정취를 감상하고, 때로는 열대의 맑은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의 여름 휴가는 늘 그래왔다. 휴가 일정이 잡히면 여행지부터 선정하고, 비행기 값이 비싸지기 전에 어서 여행사에 연락해서 우리 식구의 자리를 잡고, 부랴부랴 서류를 보내놓고는 출발하기 전까지 손을 꼽으며 기다렸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돌아와서 산더미같은 빨래와 마주하면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전형적인 휴가였다.

  

서울에서 호캉스라니. 낯설기만 한 이 여행을 우리는 시도해봤다. 호텔을 예약하고, 가족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그래야 숙박이 가능하므로- 주민등록등본을 출력하고, 휴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소박한 짐을 싸서 자동차에 실었다. 빠진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마트를 가자고 기약하면서 우리는 출발했다. 첫날은 숭례문이 보이는 호텔에서 숭례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왜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이와 이야기도 나누었다. 둘째 날은 경복궁이 보이는 호텔에서 연달아 이틀을 잤다. 호텔 근처의 조계사에서 은은히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들으면서, 비에 젖은 조계사를 사진으로 남겼다. 경복궁도 돌아보고, 근처 고궁박물관과 세종박물관도 방문했다. 과일이 먹고 싶어서 노점에서 몇 개 사기도 했고, 야식이 먹고 싶으면 호텔 옆 햄버거 가게로 나갔다.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싶으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그래봤자 비행기값도 안 나올거라면서 우리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가장 큰 호사는 어디를 가든 말이 통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으면 손짓발짓까지 동원하거나 가이드분께 부탁해야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에 <서울시>로 시작하는 주소지를 갖는 사람이 느끼는 묘한 안정감까지 더해졌다. 서울에서 여행객으로 살아보는 닷새 남짓의 낯섦은 뜻밖에도 내가 서울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니, 문득 호캉스의 느낌이 떠올랐다. <노바디의 여행>.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는 나는 그야말로 서울 토박이었다. 서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다녀왔던 곳이어서, 겉으로는 참으로 익숙했다. 서울에서 나는 섬바디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그 짧은 닷새 만에, 나는 서울에서 노바디가 되었다. 서울 사람이 아닌, 서울에 사는 여행객에 되어 버리자,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차를 타고 지나갔던 광화문 사거리를 걸어 보니, 알지 못했던 유적지와 표지석들이 가득했다. 광화문 앞의 하늘이, 구름이 광화문의 단청과 어우러지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이 찍히는지 나는 마흔이 넘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방송에서 본, 금속활자 출토 지점을 멀리서 확인도 해봤다. 생전 처음 조계사에 가서 향도 피워보았다. 마치 필리핀의 한 성당에서 촛불을 봉헌했던 것처럼 말이다. 철저하게 관광객이 되어 자유 여행을 해보면서 나는 서울에서 누구도 아니었다가, 점차 서울 사람이 되어갔다.

 

여행의 이유란, 결국 매 순간 자신의 원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작가님은 여행을 인생의 원점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여행의 이유란,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뼛속까지 알게 되는 것.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여행의 참맛을 몰라서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떤 여행이든, 끝나는 그 순간 결국은 돌아올 곳을 향하게 된다. 내게는 그것이 집이고,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일테니, 나의 원점은 늘 집으로 표현되는 삶일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속의 여행, 방랑. 나에게 여행의 이유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의 설렘이다.

 

<직접 도서를 구입하여 읽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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