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망 없는 불행>과 <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자살한 엄마의 일생을 회고하는 이야기이다.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한 개인은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특정한 생활을 할 것을 강요받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요구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했고 아이들의 소망을 나중에는 비웃기까지 했다. 여성의 호기심을 말살시키고, 가난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회의 요구를 내면화하면서 잘 사는 듯 보였지만 끝내 죽음을 선택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것 같다. 여자의 일생에 연민이 드는데 자식의 입장에서 감정을 빼고 서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끝까지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이 이야기>는 연극배우인 아내와 글쓴이 사이에서 딸이 태어나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아내는 집을 나가고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된다.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체념하는 아이를 보며 고통을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으로 취급 받으며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독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딸에게 축복을 비는 어느 시인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한 사람이 겪어낸 두 가지 영역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여자의 아들로 살았던 과거와 여자를 양육하는 현재의 시차도 존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위치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어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내 가족이 겪은 고통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당연히 생겼을 것 같다. 관찰자로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듯 보이지만 끝까지 지켜보는 눈동자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끝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는 아이를 잘 키울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어 <소망 없는 불행>이 더 와닿았다. 유난히 여자들에게 폭력적이었던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대물림되는 삶이 이런 유형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에는 어디까지 끊어낼 수 있을 것인지, 나중에 이 또한 잘못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나 또한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만났다. 페터 한트케의 다른 저작이 궁금하다.

반년이 지난 후 아이는 새 학교에 대해 반항하기를 포기했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거의 말하지 낳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처지에 동의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언뜻 볼 때면 때로는 운명에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까지 남자는 나이 든 한 인간의 두 눈에서나 그런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운명에 체념한다는 것은 극단적이고도 슬픈 폭력을 생각나게 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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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끄덕끄덕하며 또 다시 펼쳐보게 된 정지음 작가의 책이다. 두 번째 책에서 달라진 점은 전업작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난번 책에서는 ADHD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나와 세계의 충돌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 표현들이 신선한데 마지막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어떤 친구가 떠오른다. 작가는 이런 평가를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소위 똘끼로 중무장한 느낌이다. 난 똘끼를 사랑하는 독자니까 합격! 92년생이라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고 소설을 출간준비중이라는데 궁금하다.

쾌락 자체는 목적이 아님에도, 목적성을 띤 강화가 순식간에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쾌락 추구는 능동적인 자포자기이기도 했다. 나 역시 매일매일 주정뱅이나 누군가의 애인이 되므로써 오롯이 내가 되어보는 비극을 방어하는 중이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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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차별 받던 시절에 ‘그린북‘의 존재덕분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흑인들이 생겼다. 우편배달부였던 사람이 만든 것인데 개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한 일화였다. sns 유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에코 체임버‘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소리가 그 안에서만 울리는 밀실을 의미합니다. 욕실에서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가 울려서 제법 근사하게 들립니다. 밀실에 갇혀 자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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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견에 대한 견해가 새롭게 다가왔다.
초독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재독을 하면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음악가인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초견의 목적은 남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 판단은 뒤로한 채 본능에 기대어 직관적으로 악보를 읽어내고 그 순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주해보는 일. 고된 연습이 아니라 악보를 슬쩍 훑어보고 작품을 맛보며 즐기는 시간.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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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인정이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글인 것 같다.
인용문들이 좋아서 다음에는 원전으로 만나보고 싶다.
니힐리즘과 무를 기억해본다.

예술작품이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가상이듯이, 인문 세계도 하나의 가상이다. 인문 세계는 가치를 재설정하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산물이자, 창의적으로 꾸며진 ‘거짓‘이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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