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반수연 지음 / 강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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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통영을 읽다 보면 달아난다는 것의 정체를 여실히 알게 된다. 그렇지. 달아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고향인 통영으로부터 달아나고 또 달아났던 반수연 작가. ‘토영에서 천하의 반수연이었다던 그는 왜 그토록 달아나지 않고는 안 되었을까.

 

택아, 주먹 좀 펴고 자라. 자면서도 그리 주먹을 쥐고 자노. 누군가가 손을 만지작거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어머니인지 누나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153

 

은 캐나다에서 테이블 톱에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상실은 그로 하여금 주먹을 쥐고 자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다. 저 주먹. 자면서도 풀지 못하는 저 주먹이 손가락 때문만은 아님을. 떠나는 것이 중요했지 도착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는 작가에게 이국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섣불리 주먹을 펴지 못하고 살아냈을 삶. 그것이 아무리 원하던 삶이었다 해도. 더군다나 해방은 그리움과 함께 포장되어 일괄 구매할 수밖에 없는 패키지 상품 같은 것이었을 터이다.

 

소설 일곱 편 중 어느 하나도 울음을 삼키지 않고는 써지지 않았으리라. 그때 삼킨 울음들, 이제 다 풀어놓으시라. 몸 구석구석 박혀 있을 눈물을 다 쏟아내시라. 통영으로부터 부단히 달아나, 달아난 곳에서는 한 순간도 잊지 못한 통영을 향해 머리를 둔 그의 삶과 문학에 나의 눈물도 보탠다. 이 헤어날 수 없는 뼈아픈 역설 앞에 고개를 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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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적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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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지아의 작품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이토록 예리하게, 웅숭깊게, 옹골차게 해부하고 풍자하는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자신만만하고 스피디한 문장과 서사도 그렇거니와(자본주의의 적, 문학박사 정지아의 집), 궁극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직조하는 힘(검은 방,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그로서는 상당히 이채로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게 가볍고 매끈하고 모던한 감각(존재의 증명, 애틀랜타 힙스터), 그리고 그 이상이 담긴 소설집이다. 이 빛나는 소설들을 다 읽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돌연 무릎을 쳤다. 말미에 있는 대단히 짧은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그 전문은 이러하다. "... 옳은 건 없다.잘 모르겠다." 역시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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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을 믿지 마
김이정 지음 / 강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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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 있는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편편이 울컥하면서 읽었다. 베트남, 인도, 유럽을 작가와 함께 여행하는 느낌. 여행은 기실 내면을 향한 것이었고 상처와 고통을직면하게 만든다. 작중 인물이 이토록 진실하고 용기 있을진대 그들을 창조한 작가는 과연 자신의 고통을 정면돌파해온 사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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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
이수경 지음 / 강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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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천만 노동자와 그 가족이 읽어야 할 소설이라 생각했다. 책으로 묶인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천만 노동자 바깥의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는 세파에 휩쓸리면서도 의연한, 물 같은 사람. 넘쳐흐른 물이 천만 노동자 바깥의 세계에 스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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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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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에 대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그리고 함부로 인생에 져주는 즐거움.(p5)

 

그래서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허망하게 배반당하고 말았다. 첫장부터 순식간에 빨려들어가 다 읽을 때까지 도무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엔 봄이 오고 나에겐 당신이 오네(작가의 말)

 

내게도 "당신"이 온 봄날이 있었던가. 더듬어 보자면 구석기 시대의 기억 쯤 되려나. 어떤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 나도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사람이지, 그리고 함부로 인생에 져주는 사람이지, 라고 웃음을 머금게 되었는데.

하지만 그것이 즐거움인가. 이 경지는 대체 뭔가.

 

누구도 울지 않을 때 우는 힘(p115)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써주었다는 인사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또르르. 생각해 보니 누구나 울 때 울지 않는 힘보다는 누구도 울지 않을 때 우는 힘이 세겠다. 우는 게 뭐 부끄럽겠나. 울지 않고 한 세상 건너가는 사람들 참 딱할 뿐. 그들은 눈물조차 아까워서 꽁꽁 싸매는 인류이니 울지 않는 사람은 모름지기 피하고 볼 일이다.

 

길 끊긴 객지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따스했습니다. 그냥 이곳에 폭 갇혀서 봄이 오든 그대가 오든 이별이 오든 종말이 오든, 무엇이든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저녁이 왔고, 저는 객지의 여인숙에서 사나흘 수취인불명의 소포 같은 잠을 잤습니다.(p288)

 

옆에는 시골 버스터미널 사진이 곁들여 있다. 매점, 이라고 크게 씌어진 간판의 불빛과 어떤 이들의 뒷모습이 공연히 짠해 보인다. 무엇이든 올 때까지 기다리다니. 수취인불명의 소포 같은 잠이라니. 나도 이제 뭐라도 기다려볼까. 봄도 그대도 이별도 종말도 오지 않으면 저녁이라도 온다지 않나. 그러면 나도 소포 같은 잠을 잘 수 있을까.

 

아아, 이토록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에세이라니! 허접한 리뷰 따위 쓰지 말고 그냥 한 번 더 읽는 게 남는 장사겠다. 읽다가 다시 울고, 다시 웃고, 그러면서 "아픈 것은 더 아프게, 슬픈 것은 더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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