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잿빛이거나 너무 강한 한낮이고 우리는 모르는 영역에서 거북이처럼 숨거나 말을 삼키다가 뒤집힌 손톱처럼 흉해진다. 하지만 “흉측한 것과 해로운 것은 달랐다”고 작가는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세랑은 폭력과 혐오, 재난으로 망가진 지금의 세상을 다채롭게 보여주는데 탁월하다. 최후의 순간에도 사람들의 이타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희망으로 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들이 벌일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부상자들을 위해 붕대 감는 법을 배우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달리 감는 법을 배울 때. 나의 모든 여자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 밖의 모든 말들로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 김금희의 글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를 계속 확인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우연한 사랑, 필연적 죽음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박이서 등 16명 지음 / 푸른약국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유재석이 부캐를 하나씩 늘릴 때마다 나는 묘하게 안도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며 여러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내가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정반대의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한 사람이 그 모든 역할을 다 하겠다니 진짜 별난 사람 아닌가.


김밥천국 옆에 붙은 작은 약국에선 책을 파는데 이번엔 아예 책을 내버렸다, 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내 반응도 비슷했다. 나는 좀 벙벙해져서 평소 입버릇처럼 하곤 했던 말을 되새겼다. 인간, 대체 뭘까.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동물인 걸까.


‘푸른약국’의 약사님은 책을 만들었고, 푸른약국은 ‘푸른약국 출판사’가 되었다. 푸른약국 출판사가 야심차게 출간한 첫 책은 약국 내에 자리한 ‘아직 독립 못 한 서점(이하 아독방)’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달았다.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본체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름 안에 ‘변화’의 느낌이 실려 있는 게 인상 깊었다. ‘독립 못 한’에서 ‘독립한’으로, 약국에서 태어난 서점이 이제는 저만의 지평을 열며 새롭게 달려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아독방의 2막’ 같은 느낌이랄까.


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2막이 되어주고 있는가는 애정하는 두 작가의 추천사를 읽을 때부터 알았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 나는 고백해야겠다. (……) ‘독자들의 책’은 그 자체로 무섭도록 놀라운 서사이자 세계다. 6p


한 번도 노면에 직접 닿은 적 없는 바퀴의 안쪽 면과 이 땅을 드디어 접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쓰고 읽는 모든 사람이 연루된 상태가 아닐까. 놀랍게도 이 상태는 “한번 장착하면 거의 무한대로 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9p



염승숙, 윤고은 작가의 추천을 나란히 받은 책 안에는 무려 열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우연’, ‘사랑’,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한 ‘아무거나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품들이었다.


“‘아’독방 ‘무’명 작가들 ‘거’리낌 없이 ‘나’를 표현하다”는 프로젝트 명이 단박에 납득이 될 정도로 정말이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거리낌 없는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죽음’만 하더라도 저마다 얼마나 다른 톤의 분위기를 보여주던지, 이쯤 되면 작가들끼리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미리 짜기라도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다 들 정도였다.


의심은 곧 놀라움으로 잊혔는데,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연인이 죽어버려서 ‘뭐야, 진짜 죽은 거야?’는 말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예감에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오그라들기도 했다. 정부에서 권고 사망을 추진하는 시대가 오는가 하면 한 클럽에선 죽은 자들이 술잔을 부딪치고 춤을 췄다.


어떤 젊음은 늙음이 꿈이자 희망이었는데 어떤 늙은이는 바로 그 뒷면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집을 떠나고 있었다. 낯선 이와의 상상어린 대화 뒤에 속이 꽉 조이며 답답해지는 망상이 곧바로 따라붙던 걸 기억하면, 이 책은 구성 면에서도 남다른 센스를 발휘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켜세우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실제로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다음으로 내가 많이 한 말이 “어떻게 이 글 뒤에 이 글이 나와?”였다. 한 권의 책이 독자의 마음에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디디며 나오는지를 알면서도 그 노력의 일부를 실감할 수 있던 순간은 특별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선물 같다. 그 이야기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맛인 동시에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간다면 그보다 더 신이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는 기성작가와 신인작가, 심지어 처음 글을 쓰는 사람도 함께했다고 들었다. 노련한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동시에 언젠가 이 날을 기다리며 마음에 꽁꽁 숨겨왔을 신인작가들의 아껴둔 문장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이런 말을 하다 보니 윤고은 작가의 추천사가 눈 안에서 떠오른다. 아독방이라는 하나의 문 안으로 졸졸졸 걸어 들어가는 열여섯 편의 소설이. 문 밖으로 나온 소설들이 어깨를 맞댄 채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익명의 얼굴은 도저히 그려볼 수 없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이제 막 세상에 터진 열여섯 개의 웃음소리가 “국경 열 개를 단숨에 넘”을 수 있을 듯 즐겁게 울려 퍼지는 것을. 한 목소리인 듯 어울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마음을 울리는 글을 읽을 때면 컴컴한 영혼이 빛으로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영혼의 플래시는 어둠의 영역에 존재하던 내 안의 오래된 기억과 생각들을 끄집어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유라는 이름의 비눗방울은 투명한 빛으로 한참을 부유하다가 어딘가에서 터졌다. 책은 끝없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고 내 영혼을 자유롭게 했으므로 나는 책 읽기를 사랑했다. - P83

내 마음속에 시적인 감성이 들끓고 있는데, 그는 그 감성이 피어오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거야. 무슨 말을 더 하겠니? 나는 증기가 가득 차 있는데 꼭 닫아둔 커다란 솥단지 같았어. - P99

뭔가를 이룰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을 때 나는 나로, 너는 너로 거기 있었는데, 무엇이든 이룬 것이 있어야 할 순간에 우리는 이룬 것들로 불렸다. - P116

살아 있으면 뭐하니,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는데. - P162

훈훈한 훈민정음을 쓰는 골골거리는 골룸이 힘센 임꺽정에게 까칠한 까나리 액젓을 먹이는 인생이란 생각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고 세상은 행동하지 않아도 편리해지지만, 재미는 잃지 말자. 그 정도의 여유는 가지고 살고 싶다. - P244

신에게 무엇을 바쳐야 내가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 P23

소질 없는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이야기인데. 아무 말이나 해봐요. - 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