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요 하숙집의 선물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다마요 하우스는 내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여성 전용 하숙집이다. 지은 지 75년, 방 다섯 개에 거실, 부엌 겸 식당, 헛방으로 구성된 목조 단독주택이다. 하숙생은 세 명. 현관, 욕실, 화장실은 공용이다. 역에서 도보로 5분. 버스 정류장도 가깝다. 특기할 점은 아침과 저녁에 식사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집세는 7만 엔. 12p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는 김에 하는 거라며 하숙생들의 식사도 같이 차려(12p) 주던 주인장 다마요가 미국에 있는 친구를 간병해야 한다며 외국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 할 관리인을 보냈다. 다마요의 ‘영혼의 쌍둥이’ 라고 하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굴까? 새로운 관리인 ‘도모미’를 맞기로 한 쇼코는 한 시간이나 늦게 하숙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모미’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한 남자만이 하숙집 울타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뿐.

 

   새로온 관리인 니시오 도모미는 남자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진회색의 중절모를 썼다. 아름다운 회색 머리카락을 지녔고 180에 달하는 큰 키에 어깨도 넓고 듬직하다. 험상궂고 무서운 얼굴이다. 게다가 하늘색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워 끌고 있다. 뭐지, 이 괴상한 매치는? 이 남자 정말 괜찮은 걸까? 이미 나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내 멋대로 도모미를 상상했었다. 살집이 좀 있는데다 여성스러운 면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우락부락한데 높은 목소리를 가졌고 잔소리꾼이라도 재미있을 것 같아, 등등. 그런데 예상외의 남자가 나타났다. 중역 비즈니스맨의 느낌을 폴폴 풍기다던 그는 왠지 점잖아 보이고 은근 엄격한 구석도 있다. 게다가 수상한 자를 바닥에 메치는 박력 있는 남자다. 기대했던 것처럼 밝고 수다스럽고 살갑고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묵묵하고 남자다운 게 매력 있었다. 살림도 잘하고 뜨개질도 잘 하는 이 남자, 니시오 도모미. 그러나 그가 정말 잘하는 것은 참견하기, 라는 것.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이건 다마요 하우스의 관리인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사태라는 생각이 드는데. (36p) 하숙집에 사는 ‘코’ 자매 - 슈코, 료코, 데코의 사생활에 관여하는 일이 그에겐 당연한 직무다. 료코의 엽서를 멋대로 읽고 참견하는 것도 그의 일이고 답장하지 않는 료코를 대신해 엽서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료코의 집까지 찾아가는 것도 그에겐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데코와 결혼 허락을 받으러온 가미도조노 준을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도, 데코를 향해 심한 말을 퍼붓는 가미도조노 준의 어머니를 쫓아내는 것도 도모미의 몫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료코를 미행하기도 하고 술에 취한 채 지구대에서 보호받고 있는 슈코를 데리러도 가야한다. 그가 마땅히 관리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확실히 지나친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면 사생활 침해가 어쩌고 하면서 펄펄 뛰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모미는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고맙기까지 했다. 자신의 아이를 가졌으니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가미도조노를 바닥에 내던지며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무슨 짓을 했냐며 위협하는 모습이나 료코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에게 얻어온 매실로 그녀가 좋아하는 매실청을 정성을 담아 담그는 모습이나, 술에 취해 투정하고 주정하는 서른여섯의 슈코를 결국 업어주기까지 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미워할 수가 없다. 슈코, 료코, 데코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도 그녀들처럼 도모미에게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

 

   그동안 다마요 하우스에서 살면서 나와 료코는 특별히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서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 당연한 소리다. 우리는 친구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다. 단지 같은 하숙집에 모인 서로 다른 두 사람일 뿐이다. 42p

 

   가족은 만능이 아니다. 가족이기에 구원하지 못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오만한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79p

 

 

   “그들이 집에 있으면 수시로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고함 소리일 때도 있고 우당탕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일 때도 있지만 말이죠. 그 모든 게 몹시 기분 좋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는 따뜻한 소리였습니다. 그리운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런 게 가족이 있는 생활이구나, 하고 말이죠. 어두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두운, 마음이…….” 290p

   공교롭게도 다마요 하우스 사람들은 모두 불완전한 가족에 속해있다. 슈코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폭력을 썼고 그로 인해 언니는 왼쪽 귀를 못 쓰게 됐다. 료코는 용태가 악화된 아버지를 계속 외면하려 했다. 데코의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와 별거 중이었는데 그녀의 결혼식을 앞두고 드디어 이혼을 했다.

불완전한 가족을 지닌 세 사람은 도모미가 등장하면서부터 점차 바뀐다. 그저 같은 하숙집에 모인 서로 다른 사람들뿐이었던 것이 어느덧 가족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이후 도모미가 20년 만에 준비하는 파티였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도모미의 변화이자 회복인 지점. 그들의 파티가 어느 파티보다도 즐겁고 따뜻하게 다가온 건 당연했다.

 

   끝으로 슈코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슈코는 계속 길을 잃고 헤맸다. 방향치라곤 하지만 너무 잦았다. 목적지를 아예 모르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목적지를 찾을 만한 온전한 정신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그녀는 언제쯤 헤매지 않게 될까. 데코처럼 가족이 생기면 나아질까? 료코처럼 죽기 살기로 덤비는 목표가 있다면? 슈코에게도 동행자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무리 길을 잃어도 외롭지 않게. 혹은 헤매는 그녀를 구해줄 수 있도록.

   다정한 봄이 왔다 간 느낌이다. 따뜻했던 시간이 지나고 간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소설의 결말도 비슷하다. 아쉬움이 더해져서야 비로소 제대로 끝이 났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도 재미였지만 무엇보다 장면들이 생생했다. 마치 읽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처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오누마 노리코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볼 계획이다. 마음에 들었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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