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종옥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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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4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김종옥의 「거리의 마술사」였다. 바로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품. 첫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는 이력은 놀라웠고 그의 소설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거리의 마술사」는 왕따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죽은 ‘남우’에 대한 이야기를 변호사와의 면담이나 ‘희수’의 회상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마술을 보여줄게. 마술. 속임수. 실제로 일어난 게 아니지만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29p) 라던 남우는 정말 마술처럼 사라져버렸다. 죽었는데도 죽지 않고 사라진 것뿐이라는 느낌을 소설 끝까지 지울 수 없던 게 신기했다. 뭔가 환상적인 느낌이 가미되었다고 할까.

 

 

   그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마법 같은 일은 분명히 그 순간에 일어났다고 그녀는 믿었다. 그것은 세상이 일순간 아주 평화로워진 것 같은 마법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남우를 내려다보는 학생들 모두가 일순간 그 세계 속에 포함되게 하는, 마치 그들 모두가 하나의 눈을 가진 하나의 영혼이 되게 하는 마법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본 모든 것이,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것은 분명히 남우가 그들 모두를 대신해서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 모두가 남우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세상 전부다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 순간 붙잡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11p 「거리의 마술사」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관념적인 부분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존재감 없는 아이 남우가 반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 안나(연예인이었다) 때문에 반 아이들의 눈에 띄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 혼란을 겪던 아이들이 찾아낸 감정이 ‘증오’였다는 게 씁쓸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파국의 씨앗이 생겨나다니.

 

 

  2.

 

   … 그렇다고 맛깔스러운 에세이나 지적이고 감성적인 여행기도 딱히 아니었다. 나로서는 그런 것이 왜 그리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무색무취하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나 자신부터 그의 게시물들을 멍하니 읽고 있으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노릇이었다. 글에다가 중세의 마법 같은 걸 걸어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57p 「절반이상의 하루오」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 웹진문지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절반이상의 하루오」. 그런 만큼 많이 소개되었고 나만 해도 두 번째 읽는 거였다. 이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다들 본문 속에 있는 ‘무색무취’ 를 인용하기에 나는 말아야지 했는데, 결국 나도 같은 부분을 쓰고 말았다. 이유는 모든 인용자와 같다. 그 부분이 이장욱의 소설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독자가 어떻게 느낄지를 귀신 같이 알고 소설에 써 두다니, 이런 센스 있는 작가님 같으니라구, 너스레 떨며 붙여 봤다.

   「절반이상의 하루오」는 내가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던 하루오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어느 곳에서든 삶을 살아내는 하루오의 여행은 남다르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나’가 하루오로 착각된다 해도 (그 둘이 어느덧 하나처럼 닮아버려서)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나도 하루오가 될 수 있을지도? 말하고 싶은 것은, 그토록 분명하게 정의해왔던 자아를 포함한 모든 문제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좀 악착같이 구는 나에게 그런 효과는 쉬엄쉬엄 생각해도 되겠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는데, 사실 이런 건 너무 개인적인 거니까 이쯤 말하고.

 

 

   3.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황당하게 시작한다. 다른 때와는 좀 다른 주말 아침에서 시작하네, 불길한 일이 일어나려나, 생각했지만 그것이 설마 지구멸망일 줄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 날이라는 흔한 전제를 (우리는 이 문제를 화두로 이상하리만치 많이, 잦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 날 무엇을 할 것이냐, 라는 질문에 답해본 적이 있을 듯) 이리도 아무렇지 않게 들이밀며 진지하게 글을 쓰다니. 더 놀라운 것은 소설 속 분위기다. 인류가 멸망하는 비극 앞에서 아무것도 극적인 것이 없다. 정작 주인공조차도 공을 만나 해장국을 사 먹으려 만나서 지금 제일 억울한 사람은 “내일 치아 교정 끝내는 사람”(119p)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의 공포를 느낀 지점은 바로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내일 죽는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매 순간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부질없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 살아 있는데도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110p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무얼 해도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극도의 체념과 무기력. 지구가 사라지기 전에 먼저 죽어버린 인류.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4. 두려움을 조성하는 건 박솔뫼의 「우리는 매일 오후에」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나는 매일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잘 지낼 것(266p)이니까 매일 산책을 하는 그들도 잘 지내야 맞다. 그러나 그들의 산책엔 무언가 괴이한 구석이 있다. 병원이 사라졌다 슈퍼가 나타나는 이상한 골목을 헤매고 엉뚱한 건물에 들어가 숨기도 한다. 이들의 이상한 산책은 언제라도 계속 될 것 같은데 그럴수록 필사적인 저항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같은 질문을 몇 차례고 하는 것이, 맨 몸으로 서로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혼자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 같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골목은 계속하여 바뀐다. 나는 계속 헤맨다. 숨고 싶다. 김미월의 소설 속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박솔뫼의 「우리는 매일 오후에」도 벌어질 것만 같다.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의 절반 크기로 작아졌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보다 더 괴상한 일이 찾아올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곳은 새로운 골목 내일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고 그러면 영영 못 올 수도 있는 길. 269p 「우리는 매일 오후에」

   

   미래를 묻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미래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땅속이든 막다른 골목이든 골목 안 하얀 집이든 숨어 들어가 몸을 작게 웅크리자. 그러면 홍수와 테러와 방사능을 피할 수 있을 거야.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맛도 색도 냄새도 없지만 우리가 이렇게 헤맨다면 피할 수 있을 거야. 강아지 같은 남자의 작은 등에 고개를 묻었다. 272p 「우리는 매일 오후에」

 

   5. 황정은의 글은 아무리 찾아봐도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무슨 얘기냐면 있는 걸 있다고 쓰고 간 걸 갔다고 쓴다. 한 걸 했다고 쓰고. 그게 전부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뭔가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녀의 「양산펴기」도 그랬고 이번에 읽은 「上行」도 마찬가지였다. 「上行」은 친구네 고추밭에 고추를 함께 따고 돌아오는 하루의 이야기다. 시골의 전경, 먹을 사람이 없어서 차고 넘치는 고추와 고구마 호박 같은 것들, 오제의 어머니와 고모, 노부인의 사연들을 포함한다. 희한한 게 이 작품은 곱씹을수록 문제가 나타난다. 그 때문인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행이 유독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문제들을 모두 뒤에 두고 앞으로 달려가는 기분 탓일까.

 

 

   다음에 오냐.

   네.

   정말로 오냐.

   네.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

   오긴 뭘 오냐 니가, 라고 토라진 듯 중얼거리는 할머니 앞에서,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자 약속도 아닌 약속을 해버린 나는 얼굴을 붉혔다. 158p 「上行」

 

   우린 여전히 돌아보지도 돌아오지도 않고 앞으로만 가겠지.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믿는 사람처럼.

 

 

   6.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은 이전까지 내게 있던 그녀의 이미지를 더 확고히 다져주었다. 잘 쓰인 외국작품을 잘 번역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등장인물을 비롯한 모든 이름을 외국인의 것으로 바꾸고 다니까 더 외국소설 같았다. 브라이언 그린 박사가 기고한 「고든 굴드 - 과학자의 사랑」을 ‘설치미술가이자 린디합퍼인 손보미’가 번역과 정리를 했다는 설정으로 ‘작가 손보미’가 가장 자신 있는 형식이라던 전기형식으로 쓰였다. 고든 굴드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가정부였던 에밀리 로즈에게 집요하게 구는 그가 흥미로웠다. 「여자들의 세상」의 “사랑은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는 문장에 붙박여 있던 남편이 연상됐다. 여튼 이 소설은 고든 굴드의 씁쓸한 인생 이야기다. 일생을 백억분의 일이라는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매달렸지만 사실 그것은 오차가 아니었고 비비안(전 부인)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는 줄곧 에밀리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에 사로 잡혀(오차를 해결해야한다/에밀리로부터 나를 사랑했다는 말을 듣겠다 같은) 한 평생 괴롭게 살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의 글귀는 더한 여운을 남겼다. 혹 그가 뒤늦게라도 에밀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당신은 언젠가 중력에 맞서서 날아오를 거요.”

   그리고 당신은 음탕한 여자가 아니오.” 204p 「과학자의 사랑」

 

   7. 만약 24년 전 헤어진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건다면 어떨까? 아버지는 살인범이다. 어머니를 죽였다. 그 때 내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그 날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긴 하지만 (이모에게) 입양되어 지금껏 별 탈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친부가 나타난다. 그것도 병에 걸려서. 것도 모자라 내가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신장투석실에 나타난다. 좋든 싫든 나는 앞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다섯 시간 동안 그를 만나야 한다. (229p)

 

 

   기습적으로 찾아온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편두통이 생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둡고 위험한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얼굴을 대하면 대할수록 점점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고 마음이 상했으며 이상하게 억울했으며 기이한 수치심을 느꼈다. 234p 「당신의 피」

 

   정용준의 「당신의 피」는 이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를 공감이 가도록 썼다. 또 부정할 수 없는 혈육과 투석기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친부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그것이 불가함에 따른 절망이 두드러졌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문장이 역시 마음에 들었다. 획기적이랄까, 기발한 무언가는 없지만 탄탄하게 잘 쌓인 탑을 보는 기분이었다.

 

 

   8. 마치며. 작년 2012년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4950원에 구입해서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대박, 5천원도 안 주고 굉장한 걸 샀어! 수상 작품 일곱 편 모두 신나게 읽었던 나에게 그 책은 말 그대로 ‘득템’이었다. 2013년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나는 역시 4950원에 샀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3회가 더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득템한 기분은 여전하다. 책이 출판되고 1년 동안은 특별보급가인 5,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커피 한 잔 값에 무려 일곱 편이나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2014년 판이 기다려진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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