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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4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4월
평점 :
‘불행을 평등하게 나눠주는 기계’를 만들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을 했기에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 “왜 맨날 똑같은 사람만 불행해야 해?” 라는 이 아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만 열 세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네 명의 아이들은 모임을 만들었다. 그것도 일명 부적응자 클럽. 나(마르탱), 바카리, 프레드, 에르완은 “우리 대 나머지 세상 전부.”(10p) 라는 정신으로 산다. 그들은 자주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세상에 만만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고작 중학생인 그들에게 불행은 이미 너무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제는 새로운 불행이 기러기 떼처럼 몰려오기까지 했다. 모든 게 다 우울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은 보나세라 선생님의 정직 처분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희한한 보나세라 선생님이 자신들과 동류라고 느끼고 부적응자 클럽의 명예회원으로 임명하기까지 했었다. 습관적으로 의욕을 잃고 축 늘어지곤 했(41p)던 아이들이 분노로 인해 생겨난 폭발적인 에너지로 행동을 했다. 교장선생님께 보나세라 선생님을 변호하는 편지를 썼던 것. 이 대목에선 아이들의 진지한 호소가 눈에 띈다. 편지를 받은 교장선생님도 당황했을 것이다.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술을 마시는 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누구보다 보나세라 선생님 자신에게 안된 일이고, 선생님은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일에서 우리가 보호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다. 선생님이 술을 마시기 때문에 우리가 나쁜 본을 배우게 된다는 구실로 선생님을 자르는 건 최악의 위선이라는 뜻이다. 나쁜 본은 사회를 통해, 전쟁을 통해, 부패를 통해, 너도나도 돈과 소비를 최고라도 여기는 세상을 통해 날마다 배우고 있다. 우리 우울한 천재 선생님에게 배우는 게 아니란 말이다. - 본문 42p
사건은 에르완이 구타를 당하면서 더 심각해진다. 막연히 감돌던 위협적인 분위기가 현실이 되었고 학교는 더욱 불안한 곳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르완은 ‘불행을 평등하게 나눠주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미친 짓이라고, 정의가 아닌 공격성의 힘으로 균형을 잡으려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나’는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그 기계가 정말 작동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있었(79p) 던 것을 보아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은 마찬가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에르완이 만든 기계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그 시도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물론 타인에게 공격적인 방법이었기에 나쁜 방법이라는 데엔 동의하지만 고통을 밖으로 드러낸(93p) 것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분명 보통의 아이들은 아니다. 음악을 잘하는 프레드, 수학과 물리에 미쳐있는 바카리, 발명가 에르완.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나, 마르탱.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삶에서 중요한 발견을 이룬 게 아닐까. 게다가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며 행복이다. 어떤 불공정한 일과 더러운 불행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헤쳐 나가기를. 무슨 짓을 해도 밉지 않을 악동들. 그건 그들의 마음이 못 돼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좀 삐뚤어졌으면 어떠냐. 나쁘지 않으면 됐지. 원래 특별한 사람들은 좀 특이하게 사는 법.
111p의 얇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읽기 쉽다. 귀여운 악동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속에는 제법 심각한 문제들이 나온다. 따돌림, 학교폭력, 음주교사, 아이를 방치한 아버지, 아버지의 실업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학생 같은 문제들. 어둡고 무거운 문제들이 어둡고 무겁지 않게 나온다. 아무래도 귀여운 아이들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귀여워하다 그들의 문제도 귀여워해버린 걸지도. 좀 곤란한 일이다. 문제는 문제대로 진지하게 다시 봐야겠다.
-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