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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평점 :
2021년 9월 6일 밤 11시 30분경. 전직 에투알 무용수 스텔라 페트렌코가 저택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경찰은 추락사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그의 딸 루이즈는 사건의 의문점이 많다며 전직 형사 마티아스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살해 동기를 찾을 수 없기에 사건 성립조차 되지 않는 스텔라의 죽음을 두고 루이즈와 마티아스의 합동 수사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모은 퍼즐 조각들이 사건의 윤곽을 그려가고, 그 윤곽은 안젤리크 샤르베라는 이름으로 수렴한다. 그 사이 다양한 얼굴들이 목격된다. 아는 사람의 모르는 얼굴이. 루이즈가 엄마의 사생활을 파헤칠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누추한 비밀들(181쪽)”을 마주해야 한다.
『안젤리크』는 ‘욕망의 얼굴’을 그리는 소설이다. 타인의 측은한 인생을 보며 자신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사람처럼, 건너편 집에 드나드는 여자를 훔쳐보다가 홀로 반하는 사람처럼, 내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명 어디서든 존재하고 있을 표정들이 예기치 않은 때에 툭툭 튀어나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안젤리크의 욕망은 차라리 익숙한 얼굴이다. 우리는 누구나 더 많은 걸 누리는 자신을 꿈꾸기에 그 얼굴에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내가 아(126쪽)”닐뿐, 주인공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빛나는 시기가 올 거라는 그의 생각에도 자연스럽게 공감한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을 거라던 안젤리크의 각오는 얼마나 응원할만한가.
하지만 욕망이란 분노와 시샘 등 불순한 감정을 포함한 결정체이고, 표면의 색이 짙어질수록 내용물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적일 가능성”은 닭이 하늘을 날 가능성과 맞먹는다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말을 저자가 인용한 것은 이 대목에서 특히 의미심장해진다. 소설은 결국 무엇이 인간을 인간적이게 하는지를 묻는다. 다양한 인간상의 욕망을 폭로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하지만 욕망하는 자 모두가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삶은 결국 내가 욕망하는 것의 이름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삶의 좌표를 잃고 권태와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 관성적으로 살아가던 마티아스의 삶이 달라진 것은 이루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삶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고 불행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닥”치기에, 자신의 욕망을 미루지 않고 쟁취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은 욕망의 전면을 다룬다. 욕망에 따라 선인과 악인을 나누지 않고 그 모든 정체성을 내포한 것이 인간이라는 정의를 상기시키며, 인간됨으로 누릴 수 있는 자신 몫의 기쁨을 떠올려보게 한다. 페이지터너로서의 입지를 굳힌 저자의 작품이기에 재미를 의심할 이유가 없다. 페이지는 쉼 없이 넘어가고, 뜻밖의 전개에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비밀이 많은 소설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렇게나 능청스러웠다니. 보이는 힌트에 거만을 떨었던 나는 바로 겸손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 작성자의 솔직한 감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