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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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듯 국경을 넘어온 남매가 7층에 살고 있다. 관리인도 10여 년 전 국경을 넘었다고 들었다. 2층에 사는 미인은 태어날 때부터 거기 살았는데 오른쪽 눈이 없다. 3층 할머니는 텃밭의 작물을 기르고 아이도 기른다. 그 집 아이는 입주민 대표인데 주기적으로 연구실에 들러 시키는 대로 몸을 내맡긴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무너져 내리며 숨 쉬듯 먼지를 내뿜는 늙은 건물(34)”,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늙는 사람들.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은 사하맨션이다.

주민권을 가진 L도 체류권을 받은 L2도 되지 못한, 마땅한 이름도 없는 사람들을 사하라고 부른다.

 

조남주의 사하맨션은 기업인지 국가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국가 시스템 밖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려온 주민이란 자격을 회수하며 역으로 주민, 아니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꼬집는다. 자본이나 기술, 전문지식이 없으면 국민이 될 수 없다는 기준 자체가 황당한데, 이 같은 일이 너무도 쉽게 일어나서 읽으면서도 당황했다. 기업이 도시를 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는 우리 역시 얼마나 쉽게 우리의 권리는 강탈당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듯 보여 정신이 번쩍 났다.

 

소설은 일관적으로 우울한 사건사고를 다룬다. “비참한 생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사하맨션에 숨어들기까지의 인생사 중 멀쩡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맨션에서의 삶 역시 비참하긴 마찬가지인데 그만한 비참함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는 심정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는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없을 듯 보이는 미래라도 꼭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건 곧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원래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일들에 이제야 화가 나고 억울해진 사람들이.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112p

나도 타운 주민이 되고 싶어.” 51p

 

사라는 울고 우미는 도망쳤다. 도경은 타운 주민인 수를 선택했다. 진경은 생각했다. 잔가지들만 거두어서는 해결될 것 같지 않(306)”다고. 아예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맨 손으로 무작정 흙을 파내기 시작한 진경은 무모해보였지만 그 시도가 헛되지 않을 걸 알았다. 다른 이들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그들을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데려다 놓았다. 그렇게 모인 움직임들은 결국 거대한 날갯짓이 될 터였다. “끝까지 같이 살 거라는 진경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컸다. 국가가 놓아버린 자신들을 스스로는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서.

 

사하맨션을 찾아오는 사람 중엔 범죄자가 적지 않지만, 이 소설은 죄인만큼 죄가 온 방향을 바라보게 했다. 어떤 죄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제대로 된 시스템만 갖추었더라면. 나는 이제 조남주를 읽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어 옮겨둔다. 정세랑 작가의 사하맨션추천사 중 일부다.

 

괴로울 만큼 깨어 있어야 겨우 후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지칠 때 조남주 작가를 생각한다.

그러면 계속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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