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소녀
황희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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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도이는 이제 그만 삶을 끝내고 싶다. 부모님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더는 보기 싫고, 스스로도 지쳤다. 어릴 적 도이의 작은 몸을 파괴시킨 괴물은 고작 12년의 형을 받고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는 말했단다. 출소를 하면 도이를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수감된 후에도 도이가 어디 사는지 찾고 있었다고 했다. 도이는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어 목을 걸었다.

 

아동성폭행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포문을 여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을 그려낸다. 동성성폭행을 당하는 소년과 넌 소년법 대상이니까 보호처분 받을 거(28p)”라는 이유로 어머니 대신 형을 살고 나온 소년, 악마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가해자들까지 다 등장하고 나면 끔찍한 장면들이 너무 많아 숨이 턱턱 막힌다. 솔직히 읽기 좀 버거웠다. 오른쪽 눈알만 기괴하게 굴리며 잔류사념*을 찾는 도이의 모습이 무섭기는커녕 반갑고 안도가 될 정도였다. 도이가 그러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 잔혹함을 넘어 다른 세상을 기대해볼 수 있었다.

 

어딘가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 거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거나, 그때 그거 말고 다른 걸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 어차피 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손사래치고 넘겨버리기 일쑤지만 가끔은 스스로도 지나치다고 느낄 만큼 진지하게 빠져들 때가 있었다. 현실을 벗고 싶은 자에게 현실을 벗는 이야기는 희망처럼 들린다. 평행세계에 관심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도이의 선택으로 세계가 바뀌었다. 인물들의 관계도 위치도 모습도 다 바뀌었다. 서로가 서로를 계속 기억할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 세계에 계속 존재하는지조차 확신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도이는 매순간 선택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소신껏. 선택한 것이 곧 현실이니까.

 

작가가 그리고자하는 세계는 그렇게 완성됐다,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만큼의 평행세계가 열린다는 세계가. 실패해도 다른 선택을 하(404p)”면 되니까, 또 다른 선택으로 평행세계를 분기해서 선택한 삶을 다시 살아가면 되니까 괜찮다는 메시지가 주인공들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여운처럼 남는 소설이었다.

 

피해자들의 비참함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먹만 꽉 쥐던 순간들이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마들의 잔학무도함에 절로 살의가 들끓기도 했다. 촉법소녀를 촉법소년들로 응징하는 대목에서 소년법을 보는 작가의 시선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고, 현재 읽고 있는 다른 소설과는 대척점인 입장이어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보게 됐던 것 같다.

 

그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숨이 자주 몰아쉬고.

 

 

 

*어떤 강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장소나 물건, 사람들에 오랫동안 고여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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