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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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별 거 아닌 일로 크게 울면 어른 중 누군가가 너 자꾸 그렇게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울음을 안 그치면 어어, 호랑이 저만치 왔다, 벌써 집 앞까지 왔다, 아이고 무서워라, 큰일났다했다. 지지 않으려고 목청을 더 키우면서도 호랑이가 무서워하던 게 곶감이던가생각한 적이 있어서 기억한다. 어른들은 자꾸 무서운 이름을 대고 잡아간다고 했다. 뭣 모를 이름을 대도 잡아간다고 하면 무서운 이름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울었다. 몹쓸 성질머리를 자랑하며 숨이 껄떡거리는 지경까지 자지러지다가 결국엔 어른들의 뜻대로 했다. 아무래도 무서운 것이다. 엄마 품이 세상 전부인 줄 아는 아이에게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잡혀가는 건 몸 크기를 넘어서는 공포였다. 다행히도 당시의 나는 쓸 만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고, 제때 울음 그치고, 자랄 때 벌렁 눕고, 싫어하는 음식을 뱉어내지 않고 그냥 꿀떡 삼켜버리는 등의 작은 노력으로 무엇에도 잡혀가지 않고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귀엽게만 느껴지는 일화다. 내가 그만한 으름장만으로도 말을 듣는 아이었다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론 뭘 또 그렇게까지 무서워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억하기의 연장선인 의문. 나는 그때 내가 느낀 공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공포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면, 하는 생각은 더더욱 한 적이 없었다. 호랑이나 망태할아버지 대신 짙은 회색의 무언가가 지금도 우리 집 현관문 너머에 서 있다면. 거기서 나를 잡아갈 기회를 엿보며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면.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는 그런 식으로 내 뒷머리를 휘어잡았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머리를 들 수 없음은 당연했으리라.

◆ 23p
그게 오면 절대로 대답하거나 들여보내선 안 된다고. 현관으로 오면 문을 닫고 내버려두면 되는데 뒷문으로 오면 위험하다고, 뒷문을 열면 끝이라고. 잡혀서 산으로 들어간다고. 정말로 끌려간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말이야.

어디까지나 들은 말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해 내려오는 숱한 말 중 하나로 신빙성을 자신하긴 어렵다. 하지만 공포가 너무도 현실적이다. ‘그것은 정말 찾아온다. 알려준 적도 없는 내 아내와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회사로, 집으로, 전화로, ‘그것이 다가온다. 그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것은 실체다. 정체는 몰라도 나와 내 가족을 노리고 있다. 보기왕. , 다하라는 그것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62p).

136p
부탁합니다.”
아내와 딸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다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을 지켜다오.
나는 모든 바람을, 모든 소망을, 모든 애원을 그 한마디에 담았다.

1장 다하라의 시점을 시작으로 2장은 아내인 가나의 시점, 3장은 오컬트 작가이자 부부의 조력자인 노자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반전과 추리, 대망의 전투를 반복하면서 마지막장까지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스킬이 압도적이다. 스스로도 고개를 내저을 만큼 의심이 많아서 웬만한 기습에도 끄떡없는데 이번엔 여러 번 놀랐다. 특히 그것과 다하라가 마주하는 장면은 올해 읽은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다.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많은 리뷰들이 증명할 테지만, 이 소설의 가장 좋은 점은 필력과 장르가 다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지점에 방점을 찍고 싶다. 호러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두기에 정말 아까운 소설이다. 단지 호러라는 이유 하나로 주저하다간 정말 아까운 이야기를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추리/스릴러를 읽을 정도의 담력이라면 충분히 볼 만 할 것 같다. 나 역시 공포영화는 포스터와 눈도 안 마주치는 인간이니까.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해서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음 싶어서. 대체 보기왕은 무엇인지. 그건 왜 나타나는지.

◆ 120p
그렇게 엄청난 건 부르지 않으면 안 올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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