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W-novel
사쿠라마치 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친구도 취미도 없이 잿빛 청춘을 보내고 있는 에게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붕 떠 있는 그녀, 아키야마 아스나가 대뜸 말한다. “전향성 건망증.” 뜬금없이 한 달 주기로 기억이 리셋된다는 본인의 병을 밝히는 것도 이상한데 이번엔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나라도 괜찮냐고 물으니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째서?”
너는 친화수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12p)
 
……?
 
너는 숫자의 신에게 감사해야 돼. 숫자 덕분에 이렇게 귀여운 애랑 데이트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16p
 
……으응??
아마 의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도통 알아듣지 못할 숫자 얘기를 신나서 늘어놓는 아키야마지만 는 어쩐지 그녀가 싫지 않다. 당황스럽긴 해도 불쾌하지 않고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특별해진 느낌까지 든다. 그렇게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투닥거리면서도 잔잔하게, 가벼운 듯해도 사실은 더없이 진지하게.
 
반에서 겉돌던 소년과 소녀가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번졌다.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지 않던 소년이 처음으로 반 친구와 관계를 맺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박탈감을 감내하면서도 그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리 대견해보일 수 없었다. 아스나를 향한 그의 마음은 곧고 진중했다. 그리고 그를 향한 아스나의 마음은 명랑하고 힘찼다. 한 달마다 기억이 날아가는 이상한 병에 걸렸지만 아스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소년의 집을 찾아가고 그의 누이와 친근한 대화를 주고받고, 심지어는 소년이 과거에 받은 상처를 회복시켜주려고 부지런히 뛰었다. 한결같이 씩씩하고 경쾌한 모습이었다. 그런 소녀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사랑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문고본 책을 읽는 소년과 숫자를 사랑하는 괴짜 천재 소녀. 정말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간의 거리를 점점 더 좁혀갔다. 그때마다 나는 또 괜히 설레고 막 그랬다.
 
소설을 마칠 때쯤엔 단절의 무력함에 대해 생각했다. 아스나가 걸린 병 때문에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소년과 소녀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지는 못했다. 비단 소녀가 좋아하는 숫자를 소년이 가지고 있다는 운명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노력했다. 그녀가 보는 풍경을 보기 위해 는 수학을 공부했고, 그를 다시 보길 바라며 그녀는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었다. 노력은 때론 운명보다 강한 필연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거란 걸 의심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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