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1p.
..젊은이의 언행에 연장자가 참을 수 있는 것도 ‘저 놈도 곧 늙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연장자의 언행에 젊은이가 참을 수 있는 것도 ‘저 놈도 머지않아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이건 고통이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어떻게 생각할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만약 고통이 1분이 될지 1년이 될지 잘 안다면 일시적인 불안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동물은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일시적인 것인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로 견디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하다는 말밖에 다른 표현이 없다.

151p.
..자신의 진짜 모습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성실한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이 사실은 성실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161~162p.
..도대체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번트에 실패한 후 아웃, 다시 타석에 섰을 때 홈런을 쳤을 경우 실패인가 성공인가. 성공과 실패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성공과 실패를 측정하는 척도가 많기 때문이다. 돈·권력·명예·가정의 평화·사랑·건강·장수·평온 등에서 어느 것을 목표로 하는가에 따라 똑같은 것이 성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실패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권력 싸움에서는 패했다 하더라도 조용한 생활을 보내는 것에는 성공한다. 가족과 헤어지고 친구가 없어지면 인간관계의 고민에서 해방되고 누구한테도 불평을 듣지 않고 청풍명월을 맛본다는 면에서 성공한 것이 된다. 직장에서 잘려도 일에 있어서는 실패지만 만족할 만큼 잘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갑을 떨어뜨려도 ‘이걸로 당분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려도 좋을 것이다.
..이것을 응용하면, 실패를 모두 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실패라는 것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실패를 근절하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무리라면 결과가 나온 뒤에 바라면 된다. 실패라고 해도 ‘이 결과를 바랬던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된다.
..적어도 성공과 실패에 담담해지고 싶다. 실패를 너무 두려워해서 어떤 선택을 할 때에도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다.‘라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보기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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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p.
..이사 오고 나서는 한동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집도 내 것이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내가 고른 내 것인데, 그런 집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내 것 같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이상한 불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잠들었다가도 쉽게 깼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일어나 침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고는 마치 처음 와보는 것처럼, 손님의 시선으로 집을 둘러봤다. 무광의 골드로 포인트를 준 방문 손잡이와 날렵한 곡선의 싱크대 수전을 매만졌고, 세겹의 셰이드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퍼져나오는 루이스폴센의 펜던트 조명을 껐다 켰다 해봤다. 내가 신경 쓰고 힘준 것들을 하나씩 짚어본 다음에야 편히 잠들 수 있었다.

142p.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193p.
..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 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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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마, 돈벌이의 핵심을 가르쳐 줄까? 예를 들어서 여기 만 엔이 있다고 치자. 이걸로 백 엔짜리 인스턴트 라면을 사면 9천9백 엔이 남지? 거기서부터는 순식간이야. 먼저 잔돈 9백 엔이 사라지고 그 다음엔 천 엔짜리 지폐가 한 장 두 장 사라지지. 눈 깜짝할 새에 다 써 버리고 마는 거야.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늘리려면 그 반대로 하면 돼. 만 엔을 먼저 만 백 엔으로 늘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그 다음에는 만 백 엔을 만 2백 엔으로 늘리는 거야. 이것도 별로 어렵지 않아. 이 어렵지 않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만 엔이 쉽게 2만 엔이 되지. 사람들은 대부분 멍청해서 만 엔을 갑자기 두 배로 늘리려고 하니까 실패하는 거야."
.."네 얘기를 듣다 보니 이 세상이 바보로 가득한 것 같네."
.."바로 그거야. 정말이지 놀랄 정도로 머리 나쁜 녀석들이 가득해."
..구라모치가 무척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그리고 그 공백의 스크린에 어떤 광경이 비쳤다.
..할머니 시체였다. 내가 지갑을 훔치려 했을 때 할머니 눈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장례식 때 내가 할머니 시체를 차마 바라보지 못했던 건 내 안의 할머니가 여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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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 상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긴 머리를 적당히 뒤로 묶었다는 것과 얼굴이 동그랬다는 것 정도만 어슴푸레 떠오를 뿐이다. 다만 그 하얀 피부는 선명히 기억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피부라는 표현은 적당치 않다. 실은 엉덩이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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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p.
...도모미는 히데키가 방에 틀어박혀 지내기 시작했을 때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세 살 위 오빠는 예전부터 어딘지 모르게 생활이나 태도에서 무리하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히키코모리가 된 후 비로소 인생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보였고, 아,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45p.
...배가 고파 마구 울다가도 젖을 먹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리던 아기 적 히데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이미 어른이 된 아들과 어릴 적 아들을 무의식적으로 겹쳐 보는지도 모른다. 다만 젖꼭지를 물렸을 때의 묘한 감각과 맞을 때의 아픔이 서로 다를 뿐이다. 자식에게 맞을 때, 그 어머니는 지금 이 아이가 운다는 것을 아는지도 모른다.

149p.
...슬픔 때문에 제정신을 잃는 사람은 있어도 외로움 때문에 제정신을 잃는 사람은 없다. 아마 지독히 나약한 사람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외로움 때문에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슬픔을 지워주는 것은 결국 시간이지만, 외로움은 그렇지 않다. 슬픔보다는 외로움이 낫다.

198p.
..막 대학에 들어갔을 때, 호리우치라는 여학생에게 핸드폰 번호 좀 가르쳐주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지금 핸드폰이 없으니 나중에 가르쳐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교실 옆에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그때, 호리우치가 사라진 풍경에 구멍이 하나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따끔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무릎과 팔꿈치 상처에 욕탕의 뜨거운 물이 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259~260p.
"...남을 구하고 싶은 욕구와 지배하고 싶은 욕구는 똑같은 거예요. 그런 욕구를 가지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혀요. 그런 사람은 상대를 구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으려고 해요. 그렇지만 그 사람 자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 결코 자신은 구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에요. 자신이 구제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고방식이 타인에 대한 의존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261p.
.."어머니가 당신 문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 자립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까운 사람의 자립은 그 곁에 있는 사람을 구원합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말이죠. 그것만이 가까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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