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대상인 싱글과 사회적 사실로서의 혼자 살기는 다르다. 싱글이 판타지로 다루어질 때는 상상력만 필요하다. 상상력은 현실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날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판타지의 충족감은 현실과의 거리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러나 사회복지의 대상인 독거노인은 눈곱만큼의 판타지도 허락하지 않는 순도 100퍼센트의 리얼리티이다. 화려한 싱글에는 리얼리티가 없고, 독거노인에게는 삶의 판타지가 없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낙인 집단으로 전락했던 사람이 입을 열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과장이라는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 마침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낙인 집단의 대표자는 매우 강한 고백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는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드러내는 심정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천일야화를 풀어낸다. 하지만 천일야화가 계속되면 될수록 강한 고백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힘이 그 사람을 습격한다. 그건 수치심이다.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세상에 자신을 털어놓을 때 고백의 의지보다는 수치심에 대한 통제가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전적으로 옳다.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어떤 남편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김 아무개 씨의 개성이 요구하는 사항이 아니다.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규범은 전적으로 김 아무개 씨가 살고 있는 시대의 요구이다. 객체로서의 자아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다. 모든 자아는 "사회적 과정에 의해 또는 사회적 과정을 매개로 하여 형성되고 그 사회적 과정의 개인적인 반영"에 불과하다.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는 것은 "그에게 객체로 다가오는 것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전유함으로써 외부적인 것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것"의 문제인 이상, 다인 가구 속의 사람은 자기 내면이 아니라 미드에 의해 ‘일반화된 타자‘the generalised other라고 이름 붙여진,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들을 참조해야 한다. 규범적인 역할은 객체로서의 자아가 "스스로 가정하는 타인의 태도를 조직화한 세트"에 다름 아니다.

..가정이라는 복합 모나드가 개인이 소속될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나의 가족은 또 다른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사생활의 영역인 가정 외부에는 공적 생활이 펼쳐지는 외부 공간이 있다. 가족과 가족이 이어져 하나의 위상학적 관계가 만들어지고,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로의 분화가 일어날수록 한 개인이 참조해야 하는 ‘일반화된 타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참조를 통해 가정 내 성별 분업도 여전히 정당화된다. 아빠로서의 일과 엄마로서의 일, 남편으로서 일과 아내로서의 일, 사위로서의 일과 며느리로서의 일은 여전히 구분된다. 한 개인은 외부에서는 직장인이어야 하고 돌아오면 사적 공간에서의 역할을 참조해야 한다. 개인이 참조해야 하는 타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개인이 연출해야 하는 페르소나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주체로서의 자아의 크기는 줄어든다. 주체로서의 자아와 객체로서의 자아는 제로섬의 관계에 가깝다. 하나가 늘어나면 다른 부분은 줄어든다. 객체로서의 자아가 커지면, 즉 역할밀도가 짙어지면 주체로서의 자아는 작아지고, 그 결과 자기밀도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자기 밀도가 제로에 가까워질 때, 같이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서 자유의 향기를 느낀다.

..수행해야만 하는, 그것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아의 고유성은 설 땅이 없어진다. 아니, 단 하나의 역할만 더 추가되어도 그러하다. 좋은 아빠와 자상한 남편,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나, 자애로운 엄마와 따뜻한 아내 그리고 커리어우먼이 동시에 되어야 하는 것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잊고 있던 자기에 대한 질문을 불쑥 던질 때는 이미 갱년기이다. 역할밀도가 높은 삶을 살았을수록, 그리고 자기 밀도가 허약한 사람이었을수록, 갱년기에 찾아온 질문은 혹독하고 그만큼 고통도 오래간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갱년기의 질문과 비교할때 사춘기의 고민은 그저 연습문제에 불과했음을.

..역할에 대한 만족도는 역할 행동이 거짓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할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는, 역할의 진정성의 차이에서 온다. 역할의 진정성authenticity은 모든 형태의 자기 연출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출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력이 강할 때 온다. 역할이란 그것이 사회적 관계인 한 연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만족도의 차이는 거짓과 진실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역할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했는지 혹은 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무리에 속한 사람은 서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반드시 서로 비슷해야 한다. 유사성에 기초한, 혹은 유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상호작용의 밀도가 증가하면 비교는 불가피하다. 물론 그 비교는 제한된 상황에서만 행해진다. 처음부터 같은 유사성, 같은 타인지향적 관계를 통해 형성된 무리이기 때문이다. 본래 비교란 유사한 속성을 지닌 집단 내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측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고유성이란 대개가 강한 타자관계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에, 비교 행위 역시 자신들의 유사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이미 수백만 원대의 값비싼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의 동호회에서는 천만 원 대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비교의 준거가 된다.

...외로움의 날 끝은 사람을 향하게 되어 있고 그 방향을 통해 우리 인생은 부단히 혼자가 아님을 알게도 된다. 외로움의 명약은 외로움이다. 가장 큰 ‘혼자‘로 살수 있을 때 혼자인 자신에게 성실할 수 있다. ‘괜찮은 혼자‘가, ‘성숙한 혼자‘가 세상을 든든히 받친다. 고립되거나 고독한 개별자가 아니라 권능과 개성의 원천으로서의 혼자라는 것은 성숙을 위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거처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감각을 느끼는 촉수를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개의 모나드가, 동시에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드문 순간을 섹스가 제공해준다. 오르가즘이 신체적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라면, 공감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다. 인간의 존재방식이 근원적으로 개별적인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공감의 순간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공감의 기쁨은 상대방의 호들갑스럽고 때로는 과장되어서 진심을 믿기 어려운 과장된 리액션이 보장해주지 않는다. 과장된 리액션이 오고가는 포르노에서 우리는 말초신경의 자극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느끼기는 어렵다. 포르노에는 과장된 리액션이 있을 뿐 공감이 없다. 공감으로 향한 길은 과장된 리액션이 아니라, 모나드로서의 자기 존재를 깨달은 모나드들이 서로 조우할 때 싹튼다.

...자기 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하지 않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몰입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경쟁해야 하고 타인을 압도해야 하기에, 타인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을 때는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이 생긴다. 그 질투심은 착한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하기에, 진정한 취미의 세계에서는 질투가 사라진다.

...누구나 욕망은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욕망의 주인이 나인 것은 아니다.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내부에서 끌어내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다." 만약 허영심에서 비롯된 목표라면, 그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우리는 허영심을 만족시킨 것이지 자신을 만족시킨 것이 아니다. 만족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배려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가장 훌륭한 존재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수록, 즉 인간이 향락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 많을수록 그는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의도적인 고립을 통한 자신의 발견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경우가 그러했다.

..치타델레로 물러나 자기만의 보루를 지키려는 몽테뉴의 태도는 분명 행동주의자의 모습과는 다르다. 하지만 몽테뉴가 행동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치타델레에서 우리가 은둔과 회피의 전략만을 읽어낼 수는 없다. 치타델레에서 몽테뉴가 절실하게 붙든 질문 "내가 무엇을 아는가?"는 성급하게 어느 한편이기를 원하는, 그리고 어느 한편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는 집단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만을 알았던 유아적 단계를 지나 타인들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을 지니지 못한 철없는 행동은 성숙한 인간의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에만 머문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성장 장애이다. 일반화된 타자의 내재화 이후 한 단계 더 필요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일반화된 타자를 전제로 하여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아론唯我論이다. 일반화된 타자를 구성하기 이전의 원시적이고 유아적幼兒的인 유아론이 일반화된 타자에 의해 극복되고 유아적 발상이 상대화되는 것처럼, 과도하게 작동하는 일반화된 타자에 대한 대응책은 성숙한 유아론이다. 우리들의 치타델레는 성숙한 유아론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다.

...세넷Richard Sennett의 말을 빌리자면 "삶을 서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자신이 밟아온 경력에 비추어 앞으로 승진 경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그려보거나, 한 회사에 장기 근무하는 것과 앞으로 늘어날 재산 규모를 서로 연관짓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연한 자본주의는 어느 누구에게도 서사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하나의 우물만을 파는 장기적이고 차분한 인생의 계획을 고집하다가는 순식간에 낙오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지막까지 위대한 여정을 이어갔던 한 편의 대하 서사시 같은 삶의 궤적은 이 시대에 허락되지 않는다. 이 시대에 개인들의 삶은 15초를 겨우 넘기는 상업 광고처럼 단편화된다. 즉각적으로 변신해야 하고, 재빨리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 속에서 긴 이야기로 이어진 서사적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들의 삶은 자극적이며 전개가 빠른 광고 필름들의 몽타주를 닮아간다.

..얼치기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탐욕만을 알고 있기에, 그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택하는 방법은 경제적 이기주의이다. 경제적 이기주의는 시장 경쟁에서 자신이 유일한 승리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목표로 삼는다. 운이 좋거나 혹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경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경제적 이기주의의 길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기주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자기에 대한 배려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구체적인 욕구를 뼛속까지 알기에 자기를 탐욕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한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족은 가장 확실한 자기 보호의 메커니즘이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히 자기밀도를 낮추는 요인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 사냥의 딜레마로 바꿀 수 있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성립시킨다면 독립의 대가로 두려움을 그림자처럼 지고 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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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p.
...극장에서 나와 홀로 거리를 걷다가 처마밑에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리며 맡았던, 어느 가게의 생선구이 냄새. 뺨에 닿았던 습기의 감촉과 와아아 떨어지던 빗소리. 살아 있다는 감각과 동시에 찾아오던 이미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 아,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들은 어째서 이렇게나 생생할까?

265p.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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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p.
...나만의 쇼핑이 그냥 커피라면 남 쇼핑 시키기는 티오피랄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소비는 내 돈이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의 방증이자 헛된 돈이라도 함께 헛될 수 있다는 안정감의 상징이다.

78p.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만의 잠옷에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하였나. 잠옷 사기는 곧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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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p.
.."그렇지 않아. 네 사정을 설명했더니 ‘어머, 부러워라. 나도 숨듯이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라고 말했거든...."

115p.
.."그러게요, 중년의 나이에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고 할 때에는 어딘가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어물어물 계획이 흐트러진다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다. 특히 교코 자신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물러설 수 없는 일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 그게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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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p.
..엄마 사진을 보면서 고향의 밤이 깊어간다. 앨범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따라오는 엄마의 해설을 응, 응, 하고 듣다 보면 도쿄에서 한 시간 코스 발 마사지를 받을 때보다 더 편안해진다.
..이럴 때 나는 엄마가 좀 부럽다. 늙어서 내 사진을 찬찬이 들여다봐줄 사람이 나한테는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것대로 별수 없지만 옆에서 즐거워하는 엄마를 보면 약간 쓸쓸해진다.

63p.
..엄마와 여행하면 좋은 걸 좋다고 순수하게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영혼 없는 칭찬도 겉발림도 아닌지라 주위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실은 나도 그런 엄마를 보는 게 좋아서, 조금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 같이 여행하고 싶어진다.

71p.
..이런 것 저런 것을 먹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뭘 먹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 또한 어른이 됐을 때 마음을 튼튼히 해주는 게 아닐까.

99p.
..언젠가 엄마가 한 말을 떠올리면 번번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지금은 외동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혼자니까 할머니도 열심히 보살필 수 있어. 형제가 몇이나 된들 누가 모시느냐로 싸우는 집도 있고, 엄마는 혼자라 다행이야."
..그러고는 슬쩍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네도 싸울지도 모르지."
..부모님 병간호 문제로 싸우지 않을까 걱정이나 시키는 우리는 불효녀 자매다.
.."그럴 일 없어, 내가 다 할 거니까"라고 선언하는 게 어쩐지 위선 같아서 나는 그때 그저 묵묵히 있었다.
..할머니 장례식 때 엄마는 많이 울었다. 많이 울었지만, 할 일을 다 했다는 뿌듯한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146~147p.
..동물을 살뜰히 보살피는 엄마를 보면서 어린 나는 늘 안심했다.
..엄마의 사랑이 작은 동물들에게 향하는 게 기뻤다.
..왜 그랬을까?
..그때 나는 알았을 터다. 알았다고 할까, 절로 느꼈다고 할까.
..기니피그며 병아리며 비둘기며 다람쥐며.
..그 애들을 엄마가 아무리 예뻐한들 그보다 몇 갑절에 몇 갑절 나를 좋아한다는 걸. 지금 다정하게 기니피그를 쓰다듬는다 한들 엄마한테는 뭐니뭐니 해도 두 딸이 제일 귀하다는 걸.
..아이는 조그만 머리로 수시로 확인하려 든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언제나 알고 싶어한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둥지에서 떨어진 쇠약한 새끼 제비를 엄마가 주워 온 적이 있었다. 수건으로 따듯하게 감싸고 모이를 먹였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새끼 제비 한 마리 때문에 우는 엄마를 보면서,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묵직한 일인지 나는 천천히 배웠던 게 아닐까.

157p.
..엄마와의 추억, ‘잘 기억하시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내가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 너머에는 아낌없이 쏟아졌을 엄마의 사랑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하나하나 확인하지 못해도 내 맘 깊숙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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