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p.
..그의 말은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달아나라, 애야. 손이 펼쳐져 있어. 빨리 날아가. 저기 유카리나무 가지로 뛰어올라 봐. 거기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멀리 날아가 버려. 어서 빨리 날아가!"
..페드로 씨는 안타깝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날 수가 없어요. 힘이 없어서 날개가 나뭇잎처럼 무거워요" 하고 겨우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유카리나무가 서 있는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빛났습니다.

40p.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망쳐 놓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늘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으므로 이것은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싶어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농장의 거대한 연못이 지긋지긋해졌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험을 위해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모험이란 굉장한 곳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물과 이상한 물에서 살아 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될는지.......

49p.
..키테리아 선생님이 철학 시간에 강조하신 글귀 하나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외로움을 이것에 비교할 수 있지요. 그것은 바로 늙음이랍니다.‘
..나도 성숙해졌습니다. 환경이란 삶에서 가장 큰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란 가장 혹독한 환경입니다. 그것은 공상의 끝없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또 내 꿈의 슬픈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경계선에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달려가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71p.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바라만 보아요."
..엄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그 옆에서 기쁨에 넘쳐 소리쳤습니다.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엄마의 두 눈에 구름이 가득 차 있어요. 왜 그럴까요?"
.."얘야, 그것은 누구든지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면 그렇게 되는 거란다. 너의 눈 속에도 구름이 가득 들어 있어."
..이 행복한 순간이 바로 나의 삶이었습니다.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픔도 없었고 배고픔도 없었으며 목마름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97p.
..칸도카 여사는 마지막 여린 빛을 걷어 아주 맑은 녹청색 덧옷 주머니에 넣습니다. 이제는 잠이 완전히 깬 것 같습니다.

108p.
..사람은 자라야 하고 다 자라고 나서는 실망뿐이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들은 나무와 얘기를 할 줄도 나무를 이해할 줄도 모르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117p.
..이제 소년은 뒤뜰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 지내던 방의 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창문은 못질이 되어 있었고 방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습니다. 그의 구두끈이 풀려 있었습니다.
..그는 칸도카 여사의 잘린 나무 등걸까지 걸어와 한 발씩 번갈아 등걸 위에 올려놓고는 무심히 구두끈을 고쳐 맸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고 있는 망고나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121p.
..꿈도 마음도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한밤의 유리알 마음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색칠해 놓은 유리알 마음은 분하여 떨고 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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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색깔 볼펜이나 형광펜을 바꿔가면서 열심히 노트 필기 하는 녀석 있잖아. 별표 표시하고 포스트잇도 붙여가면서 말이야. 하지만 꼭 그런 놈이 성적은 그저 그렇거든. 정리정돈에 만족한 나머지 거기서 뭔가를 끌어내는 작업을 잊어먹는다고."

"...알아? 인간은 놀라움이 극에 달하면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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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무도병이란 유전병의 일종인 헌팅턴 무도병이 아니라 중세에 빈번히 나타났던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를 뜻한다. 축제의 열광 속에서 무도병은 자연 발생했고 감염자 들은 광란 상태로 정신없이 춤을 췄다.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악령이 떠나간 듯 멍해지지만 간혹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단조롭고 억압적인 데다 죽음의 위협까지 가까이에 있던 중세인이 빠져드는 폭발적 고양 상태였다....

..인체를 닮은 식물의 형태와 효능을 연관 짓는 약징주의 Doctrine of Signatures 가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까닭에, 인간의 몸과 똑같이 생긴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증거로 여겨지며 자연스레 수요가 높아졌다. 하지만 덩이 뿌리 주위에는 모세혈관처럼 얇은 뿌리가 온통 에워싸고 있어서 뽑으려면 상당한 힘이 든다. 뽑을 때 나는 소리도 더없이 불쾌하다고 한다.

..괴물도 천사도 악마도 실재한다고 믿던 시대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도 미미했다. 지금이야 이 기묘한 현상이 ‘브 로켄 현상’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 표현 자체가 18세기 말에 처음 사용되었으니 상당히 최근이다. 브로켄산에서 곧잘 나타났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우선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전방에 짙은 안개가 껴야 한다. 구름안개 위로 원형 무지개가 뜨고 그 안에 자신의 그림 자가 드리운다. 브로켄 현상의 원리는 구름이나 안개의 물방 울에 닿은 태양광선의 굴절, 즉 빛과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그림자가 평면이 아니라 층층이 깔린 안개를 통과 하며 비추기 때문에 커 보인다. 태양광선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림자도 원형 무지개도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하지만 뱀파이어 vampire 라는 용어 자체는 18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했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리투아니아어의 ‘마시다 wempti ’에서 왔다고 한다....

...숲이나 호수 같은 자연물의 정령이며 사람보다 훨씬 자그마한 생물, 요정은 시대의 요구 였다. 19세기 초반까지 과학만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연료 삼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힘차게 달려온 새 시대의 사람들 에게도 피로가 쌓여갔다. 그리고 그 반동은 도시에서 자연으 로의 회귀로, 사실주의에서 내면과 정신의 탐구 및 초현실적 세계를 향한 동경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낭만적 기호에 적합한 예술이 바로 상징주의이며 요정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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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물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잠든 사이에 무언가 엄청난 소리를 내뱉지는 않을까. 이제는 나 자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본심’을 꿈속에서 말의 형태로 내뱉는 것이 아닐까. 그뿐만이 아니다. 행여 잠든 사이에 일어나서 절도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자아를 상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피해야 하는 사태다. 그리고 잠은 매일 반드시 찾아오는 망연자실의 시간이다.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옥은 괴로운 곳이라 한다. 고통스러운 곳이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있던 곳은 지옥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다이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구리 가문의 저택, 그 구석방을 차지한 나는 그곳에서 그저 시간을 보냈다. 주어졌어야 할 시간은 사라졌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날마다 먹고, 자고, 흐느껴 울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을 고통이라 부르는 건 알맞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무위無爲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위였다.

.."바벨의 모임이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덧없는 자들의 성역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혹은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모임에 모여들지요.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지병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바꿔 말하자면, 당신은 바벨의 모임에서 유일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현실과 마주하는 데에 이야기의 힘 따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당신의 빛은 우리의 어둠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몽상가가 한때의 꿈에 잠기는 곳에 현실주의자가 침입했을 때, 주눅 드는 쪽은 항상 몽상가니까요. 당신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쓰의 표정에서, 나를 ‘맛을 보장할 수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바보 같은 계집애’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긍지 높은 사람은 좋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람은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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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씌어 있는 글자를 읽지 않고, 스스로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를 읽은 것이다.

..멋진 여자와 가까워졌다고 기뻐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스와나는 진정 나에게 감사하는 건가. 그것은 편리한 자동차나 맛있는 소고기를 대하는 것처럼,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 아닐까.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느낀 것이다.

..너무나 역겨운 기분에 유키는 토할 것만 같았다. 지식과 취향을 여봐란듯 드러내는 게 얼마나 추한 짓인지 몸서리치게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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