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미얀마에는 "찻주전자 하나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을이 탄생한다"라는 속담까지 있다.

...하지만 내가 쁠라 라가 들어간 라오스식 쏨땀과 숩 너마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방콕 친구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들의 표정에서 이싼이 겪은 수백 년 핍박과 처절한 가난의 역사가 읽힌다. 이싼 음식의 모양과 맛은 바뀌고 있지만 그 역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 근처 포장마차나 노점에서 먹던 빤싯이 번듯한 식당에서 팔리게 되었을 때, 이 빤싯 전문점을 ‘빤싯테리아’라고 불렀다. 이 이름도 빤싯을 대량으로 팔거나 프랜차이즈화한 중국 상인들에 의해 고안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국과 스페인의 문화가 결합한 빤싯테리아는 음식을 팔고 소비하는 장소로서 현대적 의미에 가까운 최초의 식당이 되었다. 초창기 빤싯테리아는 세계 최초의 차이나타운인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 1594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설립)와 톤도(Tondo) 지역에 몰려 있었다.

..미지의 땅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인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이들은 안전한 정착을 위해 현지 여성과 결혼했다. 중국인 이주민 남성과 동남아시아 현지인 여성 간 교혼은 동남아시아 해협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들을 ‘페라나칸(Peranakan)’ 혹은 ‘해협 중국인’으로 분류했다. 페라나칸은 말레이어로 아이를 뜻하는 ‘아나크(anak)’에서 유래한 말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과 그들의 후손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주 남성은 ‘바바(baba)’ 그리고 이들과 결혼한 여성을 ‘뇨냐(nyonya)’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인이 모인 지역을 ‘뻐찌난(pesinan)’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 정착한 중국 이주민은 현지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보장뿐만 아니라 현지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다.

..이에 반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웅산 수치다. 그는 1981년에 발간된 수필집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서양인들이 ‘커리’라고 부르는 미얀마식 커리는 실제 인도식 커리보다 향신료를 적게 쓰고 마늘과 생강을 더 많이 써서 맛이 인도식 커리와 다르다"라고 썼다. 실제로 인도식 마살라나 커리 가루가 들어간 미얀마 요리는 인도 본토 출신이라는 뜻의 ‘껄라’라는 말이 들어가 ‘껄라쳇힌’이라고 따로 부른다. 즉 인도식 커리와 미얀마식 ‘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유교 문화권이듯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1965년에 독립한 싱가포르와 브루나이(1984년 영국에서 독립)는 말레이 문화권으로 묶인다. 말레이 문화권은 7세기에 중동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온 아랍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발전했다. 13세기부터 동남아시아에서 교역을 통해 번창한 이슬람 왕조들은 말라야에서 인도네시아를 가로질러 보르네오, 술라웨시, 말루쿠(Maluku), 현재 필리핀 남부의 술루 군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이슬람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

..‘껌(cơm)’은 쌀로 지은 밥이라는 뜻이고 ‘떰(tấm)’은 부서진 쌀이라는 뜻이다. 즉 부서진 쌀로 지은 밥이다. 한국에서 흔히 불면 휙 하고 날아갈 것 같다고 표현하는 동남아시아 쌀은 인디카종이다. ‘안남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 왕조 말기에 안남이라고 불렸던 베트남 중부 지역의 쌀을 수입하면서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곡식의 알이 길고 찰기가 거의 없는 인디카종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와 같은 열대 지역과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전통 음식으로서 른당이 녹여낸 미낭카바우 사람들의 철학은 요리에 들어가는 네 개의 주재료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이 요리에 들어가는 육류(dagiang, 다기앙)는 그 지역 유지나 지도자를 상징한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혹은 이끄는 공동체를 위해 소 한 마리 내어줄 수 있는 재력과 힘을 가진 전통적 씨족 공동체 지도자들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재료인 코코넛 밀크, 혹은 코코넛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지적 능력을 내어주는 지식인, 교사, 작가 등을 상징한다. 세 번째로 ‘라도’로 불리는 칠리와 고추 같은 재료는 성직자와 전통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를 상징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향신료를 혼합한 양념인 쁘마삭(pemasak)은 미낭카바우 사회 전체를 대표한다.

..찹쌀과 멥쌀을 구분하는 기준은 전분의 주성분인 아밀로오스(amylose)와 아밀로펙틴(amylopectin)의 함량이다. 찹쌀은 아밀로오스가 아예 없거나 아주 소량 있고, 아밀로펙틴 함량이 거의 100%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을수록 밥을 지으면 광택이 생기고 찰기가 높아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멥쌀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비율이 2대 8 정도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을수록 밥을 지으면 찰기가 거의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진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만한 점은 아밀로펙틴 함량이 많을수록 소화가 빠르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양분이 빠르게 체내에 흡수된다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은 찹쌀이 백미보다 소화하는 데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찹쌀이 소화 흡수가 빠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당뇨 위험성도 크다.

...동남아시아에서 주식으로 삼는 쌀은 대부분 멥쌀인 인디카종인데 이는 한국인들이 주로 소비하는 자포니카종보다 모양이 길고 익히면 찰기가 덜해 밥알들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런데 인디카종이 자포니카종보다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다. 그래서 소화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그만큼 에너지가 천천히 공급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찹쌀 음식이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디카종 쌀이 못하는 ‘빠른 에너지 공급’을 찹쌀이 대신하는 셈이다. 태국의 ‘카오니아오 마무앙’이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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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located in Kampung Sungai Beruk, the "village of the river of apes". Well, better than a river of piss, at least. There was a lot of jungle around there, but strangely no discernible river, and I’d not seen many monkeys in the trees behind the house either, so I often wondered where the name could have come from. I could have said the same for many other places in Brunei actually; names here tend to have rather random meanings.

...My face felt hot, and the slap still stung. Pa rose and gave me an odd look, as though he suddenly didn’t recognise who I was. He looked at the palm he had used to slap me and, briefly, I almost thought I saw his head turn away from it, like he was flinching from his own hand....

...Blue was a weak ink. Black ink on white paper, now that looked like the perfect representation of truth absolute.

..But while those false smiles usually annoyed me, Mohidin’s only made me feel sorry for him. His upturned lips made a very poor cover for all the loneliness I could see written over the rest of his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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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을 휘두르고 바닥을 박차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가속하는 다리는 그때까지 잠들어 있던 진정한 자신이 눈을 뜬 듯 가벼웠다.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살처럼 사라졌다. 그때 몸속의 모든 세포가 하나도 빠짐없이 불꽃을 내뿜는 것 같은 감각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형은 살해당했고 부모는 나를 남기고 미국에 갔다. 그래도 만년상업대루의 구둣가게에서 농구화를 훔쳤을 때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려고 했다. 우리 앞에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방학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기억이 불러온 감각은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과 비슷했다. 유리컵에 물을 붓는 것처럼 추락의 풍경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을 채웠다.

..나는 진심 안타까운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한수밍이 아무 데도 없어서 좋았다. 만약 발견되면 우리는 잔혹한 짓을 하게 되었을 테니까. 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와 제이의 관계는 뒤틀려 있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아아, 집오리가 된 기분이야." 바닥을 쓸면서 아강이 커다란 목소리로 내뱉었다. "막대기를 든 녀석이 우리를 어딘가로 몰고 가는 것 같아."

...그 떠들썩한 날들 속에서 나는 그저 불행할 것이라는 예감에 겁먹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불행의 예감은 불행 자체보다 호되다. 거대하고 사악한 싹이 트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작고 귀여운 생명체일 때도 있다. 사람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반대로 무슨 일에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들은 오랜 전우처럼 서로를 놀리며 당연하다는 듯 나까지 끌어들여 웃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느낌이다. 바닥에 떨어져 깨진 술병은 아주 한순간 동안만 병의 형태를 유지했다. 병이 깨졌다는 사실을 안에 든 술이 아직 깨닫지 못한 듯. 그것은 예리한 칼이 몸을 베고 지나갈 때 바로 피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잠깐의 틈을 두고 병이 폭발한다. 코를 찌르는 고량주가 튄다. 내가 전혀 보지 못한 광경을 나는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 볼 수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마지막 날이었다.

..아버지가 꿈지럭거리며 몸을 움직이자 바닥에 떨어졌던 어스름한 불빛 속의 그림자도 천천히 움직였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당황했고 조금은 될 대로 되라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서 더 아버지보다 정직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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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는 망자들이 항상 그러하듯 과연 망자답게 유달리 묵직하게 누워 있었다. 빳빳하게 굳은 사지는 관 바닥에 푹 잠기고 영원히 젖혀진 머리는 베개에 닿아 있었으며, 여느 망자들처럼 밀랍같이 누런 이마와 움푹 꺼진 관자놀이의 맨살, 윗입술을 짓누를 듯 우뚝 솟은 코를 내놓고 있었다. 그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보지 못한 사이에 더 여위어서 몹시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모든 망자처럼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의미심장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는 해야 할 일을 해냈고 더욱이 제대로 해냈다는 표정이 어리어 있었다. 그 밖에도 아직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책망이나 무언가를 경고하는 기색이 담긴 표정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자기 권력을 남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바로 이런 권력을 의식하고 그것을 부드러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새로운 직책이 주는 흥미와 매력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 단장한 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이 아무리 살기 좋은 집이어도 딱 방 한 칸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또 수입이 늘어나도 딱 얼마가, 그러니까 500루블 정도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특히 집 단장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서 뭘 더 사들이고 주문하고 재배치하고 다듬고 손봐야 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절이 참 좋았다....

..이러한 거짓 말고도, 혹은 그 때문에 더더욱 이반 일리치를 괴롭힌 것은 아무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기나긴 고통을 맛본 뒤에 이반 일리치는 때때로 이렇게 고백하기가 창피스럽지만, 누구든 자기를 아픈 아이처럼 그저 불쌍히 여겨 주길 무엇보다 바랐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달래 주듯 상냥히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자신을 위해 울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턱수염이 허옇게 센 고위 판사에게 아무도 그렇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쯤은 알았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래 주길 바랐다. 그런데 게라심과 있으면 그 비슷한 뭔가를 느꼈고, 그와의 관계에서 위안을 얻었다. 엉엉 울고 싶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고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이반 일리치는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음을 터뜨리고 다독임을 받기는커녕 곧장 진지하고 엄격하고 고뇌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관성에 따라 상소심 결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그것을 집요하게 고수했다.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을 독살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지듯 삶도 점점 더 나빠졌군.’ 그는 생각했다. 저기 뒤쪽, 삶의 시작 부분에 밝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살아가면서 점점 더 새카매지고 어두워지는 속도 역시 점점 더 빨라졌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반비례로 빨라지는군.’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그러자 가속도가 붙은 채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돌덩어리가 그의 영혼에 쿡 처박혔다. 삶도, 커져만 가는 일련의 고통도 점점 더 빨리 끝으로, 가장 무서운 고통으로 치닫고 있다....

.."끝났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끝난 건 죽음이야.’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것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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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p.
..우리나라의 옛 마을에는 서원이 있고, 산속엔 절집이 있다. 절집은 아무리 허름해도 온정이 느껴지는데 서원은 아무리 번듯해도 황량감과 황폐감만 감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사실, 사람이 살고 안 살고의 차이이다. 선암서원 대문이 열려 있을 때 촌로들이 거기에 와서 나무토막을 베고 누워 정담을 나눌 때는 지나가다가도 들러보고 싶은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 열고 들어가라고 해도 무서운 집이 되고 말았다.

485p.
..운문사 솔밭은 우리나라에서 첫째는 아닐지 몰라도 둘째는 갈 장관 중의 장관이다. 서산 안면도의 해송밭, 경주 남산 삼릉계의 송림, 풍기 소수서원의 진입로 솔밭, 봉화군 춘양의 춘양목…… 내 아직 백두산의 홍송을 보지 못하여 그 상좌를 남겨놓았지만 남한 땅에 이만한 솔밭은 드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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