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의 생김새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야무지고 튼튼한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의 얼굴도 사랑했다. 그는 얼굴도 마치 사지四肢 가운데 하나인 양 그저 단단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렇긴 하다. 도시로 온 후에도 그는 머리를 아랫쪽으로 향하고 한 나절이나 물구나무를 설 수 있었다. 이렇게 거꾸로 서서 그는 자신이 마치 아래 위 할 것 없이 꼿꼿한 한 그루 나무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만약 노새나 말처럼 낙타들이 온순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에 주의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낙타란 녀석은 끔찍이도 온순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멍해졌을 때는 낙타가 여전히 그의 뒤에 있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 커다란 짐승이 어두운 갈림길 저편으로 들어가 얼음처럼 녹아 사라진다 해도 그는 알아채지 못할 것만 같았다.

...노인네는 세 마리 낙타가 정말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 낙타를 사서 수중에 넣어봐야 별 잇속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 좋아하는 이가 책만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나고, 말 기르는 이가 말을 보면 괜히 아쉬워하는 것처럼 이전에 세 다발이나 되는 낙타를 길러본 이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샹즈가 헐값에 팔겠다고 하지 않는가.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아는 전문가가 싼 물건을 보게 되면 그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 류쓰예가 샹즈를 우대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샹즈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능히 옛 습관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령 그가 군대로 들어가 병사가 된다고 해도, 호랑이 가죽虎皮(군복)을 입는 즉시 시치미 뚝 떼고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평생 하늘도 땅도 두려워해본 일이 없었지만 늙어가면서 딸자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스스로 겸연쩍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나마 법도 하늘도 없는 무뢰한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겠지. 이런 감정이 있는 한 죽을 때라도 천벌은 면할지 몰라. 좋아....

..사실 차오 선생은 그렇게 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때로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다른 일들도 하면서 살아가는, 중간 정도에 속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사회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으나 동시에 유미주의자이기도 하고 특히 윌리엄 모리스(1834~1896, 영국의 시인이자 미술가)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그다지 심오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조를 하나하나 실제 생활 속 작은 일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는 스스로가 뛰어난 재주를 지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일과 가정을 꾸려가면서, 비록 사회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언행일치을 하여 위선자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작은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마치 소소한 집안일을 잘 처리하면 사회는 어찌 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는 듯했다. 이 때문에 때론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또한 때로 스스로 만족하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집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찾아오는 이들에게 맑은 물과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을 뿐, 더 큰 의미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같았다.
..샹즈는 때마침 그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사막에서 그처럼 오랜 시간을 헤매던 그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차오 선생 같은 이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를 성현으로 여겼다. 이는 그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현실에서 이런 인물조차 만나기가 어려워서이기도 했다. 차오 선생을 모시고 나갈 때, 선생의 옷차림은 참으로 단아했고 성격 또한 활발하고 대범했다. 샹즈는 자신 역시 깨끗하고 말쑥하며 기골이 장대하여 오직 그만이 차오 선생의 인력거를 끌 수 있을 것 같은 자부심으로 유달리 신나게 달려댔다. 집안도 곳곳마다 깨끗하고 항상 조용했기 때문에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시골에 있을 때 그는 노인들이 겨울철 따사로운 햇살이나 가을 달빛 아래에서 대나무 담뱃대를 물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아직 나이가 어렸을 때라 노인들을 흉내낼 순 없었지만 그들이 그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노인들이 그렇게 앉아 분명히 어떤 느낌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그는 비록 시내에 살고 있지만 조용한 차오 선생 댁에 머물고 있으니 시골 생각이 절로 났다. 진짜로 담뱃대를 물고 과연 어떤 재미가 있는지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만큼.

..실이 끊어진 연처럼 돈을 떼먹히는 일이 없으려면 눈썰미와 수완이 있어야 하고, 조심성과 더불어 악랄함도 필요하다. 그녀는 은행 경리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보다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자본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주의主義(입장이나 주장)’는 같았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여서, 아주 촘촘하고 커다란 체로 위에서 아래로 조금씩 돈을 체질하는 듯 내려갈수록 돈이 점점 적어진다. 이와 동시에 ‘주의’도 아랫쪽으로 체질하게 되는데, 다만 이것은 위나 아래나 똑같다. 왜냐하면 ‘주의’는 돈과 달라 체 구멍이 작은 것을 꺼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놈은 형체가 없어 아무리 구멍이 작아도 멋대로 빠져나온다....

...그들이 인력거꾼을 대하는 태도는 샹즈가 늙고 병든 인력거꾼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함께 지옥에 떨어져있을지라도 계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함께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은 채 각자 나름의 길을 걸어갔다. 희망이나 노력이 모든 개인의 눈을 가려 사람들마다 맨손으로 자수성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더듬어갔다. 샹즈는 다른 이들은 아예 생각지도,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돈과 앞날의 성공만을 생각했다.

..개별적으로 해결하자니 샹즈는 그렇게 총명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청산하자니 그만한 담력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방법도 없이 하루 종일 속만 썩이고 있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해를 입은 후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이 사태를 수습할 생각뿐이었다. 싸움에서 뒷다리를 잃은 귀뚜라미는 나머지 가느다란 앞다리로 기어가려고 애쓰게 마련이다. 샹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 일이 생기는 대로 겪어가면서 기어가는 데까지 기어갈 뿐 근본적으로 뛰어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난뱅이의 운명을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대추씨처럼 양끝이 뾰족한 운명. 어릴 땐 굶어죽지 않으면 천만다행한 일이고, 늙어서 배고파 죽지 않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인생의 중간, 젊고 힘도 좋을 때야 먹고 사는 것이나 악착같은 노동도 두렵지가 않다. 그래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 않은가. 즐겨야 할 때 즐기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바보 중의 상바보다....

..앉을 곳이 없으니 그냥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어디로 가지? 이 은백의 세계에는 그가 앉을 만한 곳도, 갈 곳도 없다. 막막하기만 한 하얀 세상, 배가 주린 아기 새. 갈 곳 없는 사람만 슬픔이란 게 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샹즈는 아무 말도 없었다. 화도 내지 않았다. 마음이란 게 없어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냥 되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마시고, 일이 있으면 일하고, 계속 손발을 놀리다보면 하루가 갈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방아를 돌리는 나귀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사람이란 게 원래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먹이를 잡아먹다가 자기가 그물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참하게 조롱에 갇혀 다른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언제든지 팔려갈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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