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p. ..휴가를 마치고 난 첫 메모에는 어머니가 된 감상이나 아이에 대한 마음 같은 것은 없고, 조사 결과만 담담하게 적어 놓았다. 구리하라는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이래야 한다. 감정을 섞으면 기록에 잡음이 낀다. 어머니의 성실한 면모를 봐서 기뻤다.
151p. ..하지만 정상을 지나자 그 인상이 싹 바뀌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라고 해야 할까. 밝고 개방적이었던 오르막길과 달리 내리막길은 어둑하고 칙칙한 답답함이 감돌았다. 아마도 바다 때문이리라.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물 덩어리는 공포스러울 만큼 푸르고 무표정하게 고여 있었다. ..이 일대가 바다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런 기분이었다.
153p. ..구리하라는 숨을 삼켰다. ..삼각 지붕 사당, 호수, 해안가의 민가…… 고지도에 그려진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버려진 지 너무 오래된 탓일까. 죄다 성한 곳 없이 노후화됐고, 건물 지붕은 보기 싫게 떨어져 나갔다. ..‘주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마을의 주검이 산과 숲과 바다에 갇힌 채 수십 년이나 방치된 듯한 인상이었다.
193p. ..아무리 주위에서 꺼리고 가족이 거리를 두더라도, 구리하라는 자신의 성격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논리는 부조리한 폭언과 폭력으로부터 사람을 지켜 준다. 논리로 똘똘 뭉친 구리하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다정할 터였다.
323p.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비쓰 회장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도 올바른 일이고요. 둘 다 옳다면 자기에게 유리한 정의를 고릅시다. 세상이란 그런 겁니다."
430p. ..물론 놀이는 아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그 비일상적인 활동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을까. ..외할머니는 즐거웠던 추억을 품에 안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그것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 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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