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p. ..해리엇은 밖으로 나갔다. 날이 덥고, 햇살이 하얗게 내리쬐고, 사방이 고요했다. 치과에서 이를 때운 다음 안쪽 어금니에서 자두처럼 검게 피어오르는 통증을 느끼며 유리문을 밀고 주차장으로 나갈 때 같은 기분이었다....
21p. ...아이다는 아직 자기 의자에 앉아서 손으로 뺨을 감싼 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다가 저렇게 또렷하게 느껴진 적은, 저렇게 자리를 지키면서 놀라울 만큼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52p. ..시멘트 포대 더미의 그늘은 놀라울 만큼 짙고 시원했다. 등에 닿는 시멘트 자체가 시원했다. 해리엇은 생각했다. 나는 이날을, 지금 이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농기계가 단조로운 소리를 냈다. 그 위로 말똥가리 세 마리가 검은 종이 연처럼 날아갔다. 아이다를 잃은 날의 기억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나는 저 검은 날개들, 그림자 하나 없는 목초지와 유리 건판 같은 공기로 남을 것이다.
161p. ..죽음은 행복의 해안이라고들 했다. 해변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속 해리엇네 가족은 모두 젊었고, 그들 가운데 로빈이 서 있었다. 배와 하얀 손수건, 햇살 속으로 날아오르는 바닷새들. 그것은 모두가 구원받는 꿈이었다.
165p. ..해리엇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불 아래의 시트가 아직 바스락거렸다. 아이다가 직접 빨아서 매끄럽게 편 시트였다. 이 집에 남은 아이다의 마지막 흔적이었기에 해리엇은—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베개에 얼굴을 묻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덮고 싶었지만—마지막 남은 천국의 작은 조각을 차마 흩뜨릴 수 없었다. 밤이 되어 검은 창유리에 침대가 환하고 또렷하게 반사되면 잘 접힌 주름이 결혼식 케이크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하지만 해리엇에게 그것은 그저 바라보면서 갈망할 뿐 먹을 수 없는 성찬이었다. 침대에 들어가서 자고 나면 이제 아이다가 정리해준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희망조차 사라질 테니 말이다.
172p. ...배? 배와 관련된 것도 많았다. 리비가 생강을 넣어 만들던 배 잼. 리비가 부르던 배나무 노래. 20세기 초에 리비가 주립 여자 대학을 다닐 때 그렸던 배가 들어간 정물화. 리비의 이름은 꺼내지도 않고 물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몇 시간 동안 리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리비가 모든 대화를 사로잡았다. 모든 지역과 색깔, 모든 채소와 나무, 모든 숟가락과 문손잡이와 사탕 그릇, 전부 리비의 기억으로 물들고 희석되었다. 해리엇은 이런 식으로 리비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리비가 사람이 아니라 기묘하게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체로 변해서 열쇠 구멍과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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