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커다란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올 때 나는 빛을 노려보기 위해 눈을 크게 떴고, 혜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우리가 빛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헤임은 새떼가 무서워서 자기 눈을 가리는 아이였고, 나는 새떼가 무서워서 가까이 올까봐 눈을 크게 뜨는 아이였다....

20p. «별 세 개가 떨어지다»
...하지만 그늘에 너무 오랫동안 숨어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람은 머리에 햇볕을 쏘여야 건망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처럼 견고한 그늘에 매일같이 숨어 있는다면 겪은 일을 아무것도 까먹지 못하고 영원히 기억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30p. «별 세 개가 떨어지다»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다는 말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분좋게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슬프게 했다.

32p. «별 세 개가 떨어지다»
...매듭지은 것이든 아니든, 수습이 잘 안 된 것 같아 보여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자살하도록 몰아갔을 의지, 그런 의지를 가졌던 그가 땅에 묻혀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일 테고 자기 몸을 돌고 있는 붉은 피에 대해 그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가 걸을 때와 멈춰 설 때, 행복하거나 슬플 때, 낙담할 때와 사랑할 때, 말할 때와 말하지 않을 때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그가 나를 비웃을 때의 얼굴도 나는 모른다.

68p. «추도»
..그런 거였다. 단순히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품위가 필요했다. 돈이 만들어주는 품위가. 그것만 있으면, 너무도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105p. «나는 야구를 사랑해»
.."기도 같은 거야."
..민희는 소설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

191p. «귀신이 없는 집»
..십사 년 전의 그 강렬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재원은 그날 밤이 당장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물체처럼 여겨졌다. 팔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유리컵이라든가 안경 같은....

241p. «일일야성»
..동갑내기 부부인 운주와 경수는 마흔세 살이었고 그 나이는 이십칠 세가 그러하듯 의미심장했다. 늙음을 일찍 뒤집어쓰고 싶어지는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운주는 서른 살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오늘날 경수는 병원에서 전립선 질환을 앓는 오륙십대들 사이에 끼어 자신도 ‘내일모레면 오십‘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늙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미리 늙어버려 노화의 공포를 잊으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매를 맞으려는 겁에 질린 아이처럼.

249p. «일일야성»
...펜치는 공고의 상징이었고 그것으로 십지를 짓뭉갠다는 상상은 학교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공포이자 육체노동을 하대하는 폭력의 은밀한 조기 연습이었다. 그들은 커서 육체노동이라는 말을 의심 없이 쓰게 될 것이었다. 그 노동 안에 담긴 지적인 요소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은 채.

257p. «일일야성»
...즐거움이 부활했으면서 운주를 속였다. 금욕으로 스스로를 벌하겠라 맹세하며 애초에 품지도 않았던 욕망을 버리는 체했다. 그것은 이중의 배신이었다. 같이 삶에 실망하기로 해놓고 혼자만 해저에서 태양으로 튀어오르는 짓인 동시에 행복의 부활을 운주에게 감춘 채 참아내고 있다고, 당신을 위해 욕망을 내다버리고 있다고 낄낄대며 속이는 짓이었다. 경수는 도망치고 있었다. 권태, 무료, 물귀신. 축축 처지고 푹푹 꺼지는 침강의 감각으로부터....

318p.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괜찮다는 노아의 말에도 녹원은 재차 권했다. "노아씨, 원래 독수리는 밤에 잘 날지 않아요. 위험하거나 비상시라고 느낄 때나 비행하죠." 새들도 기이하게 여길 만한 일을 겪었으니 몸도 마음도 쉬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그렇게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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