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모는 달랐다. 모모는 베포가 대답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모모는 베포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모모는 물론이고 모모의 친구들도 가져 본 적 없는 아주 값비싼 장난감도 있었다. 그런 장난감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엇에 홀린 듯이, 또는 그냥 못 견디게 지루해하며, 덜덜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장난감, 흔들흔들 걸어 다니는 장난감, 빙글빙글 돌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장난감 따위를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상자 몇 개, 찢어진 식탁보, 두더지가 쑤셔 놓은 흙더미, 조약돌 한 줌만 있으면 되는 옛 놀이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 놀이를 할 때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모모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모모는 한참만에야 그것이 지루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우리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의 가장 엄격한 법칙 중의 하나는 이렇습니다. ‘아이들을 맨 마지막으로 공략하라.’ 피고, 이 법칙을 알고 있습니까?"

..모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동굴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보물은 점점 더 불어나서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출구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보물을 헤치고 모모를 구하러 올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자기가 여기 묻혀 있다고 알릴 수조차 없었다. 모모는 그렇게 시간의 산, 땅 속 깊이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사람들에게 그건 대단한 게 아니야. 왜냐하면 사람이란 한갓 자기 안에 있는 시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거든.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란다. 허나 회색인들은 사정이 달라. 그들은 훔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몸에서 금세 시간이 빠져나가는 게야. 터진 고무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같지. 풍선은 그래도 터진 조각이라도 남지만,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단다."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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