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등과 소의 등이 똑같이 까무잡잡해 보였다. 저물어가는 두 생명이 오래된 밭을 확확 갈아엎는 모습이 꼭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파도 같았다.... - P-1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마을 식당이 문을 연 뒤 식사 시간의 풍경은 정말 볼 만했지. 집집마다 두 사람씩 가서 밥과 반찬을 타 왔는데, 길게 늘어선 모습이 예전에 포로로 잡혔을 때 만터우를 타려고 줄을 섰을 때랑 다를 게 없더구먼. 집집마다 여자들을 보낸 탓에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꼭 곡식을 말릴 때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와 짹짹거리는 것 같았다네.

.."사람은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펑샤가 성안으로 시집을 가자 나와 자전은 넋이 나간 듯 무슨 일을 해도 심란하기 그지없었네. 펑샤가 집 안을 들락거릴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떠나고 나니 나와 자전 두 사람만 달랑 남았더 라구. 우리 둘이 서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는 게, 수십 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아직 다 못 본 게 있는 사람들 같았다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나를 잡고 있던 손이 싸늘하게 식었다네. 팔을 만져보니 팔도 조금씩 식어갔고, 두 다리도 싸늘해졌지. 그렇게 온몸이 차가워지고, 오직 가슴의 한 부분에만 온기가 남았다네. 자전의 가슴에 손을 대는 순간, 거기 남아 있던 열기가 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

...소는 반 사람 몫을 한다네. 나 대신 일도 할 수 있고, 쉴 때 동무도 되어주거든. 마음이 울적할 때 난 녀석과 두런두런 얘기를 하곤 해. 게다가 풀을 먹이러 물가에 끌고 갈 때면, 꼭 어린아이를 데려가는 느낌이라네.

..나는 이제 곧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해설)
..인생이라는 장도에는 큰 난관이 두 가지 있다. 갈림길과 막다른 궁지가 그것이다. 갈림길에서는 묵적(墨翟) 선생도 통곡하다 돌아갔다고 하지만, 나는 울지도 돌아가지도 않고 우선 갈림길 앞에 앉아 쉬거나 한숨 자도 괜찮을 만한 길 하나를 택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가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달라 해서 허기를 달래되, 길을 묻지는 않으련다. 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해설)
..또한 춘성이 문화대혁명으로 고초를 겪자 그의 이름을 찾아주며 폭압에 인간적으로 대응하여 춘성을 구해내고, 춘성이 삶의 의지를 잃고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는 아내 자전마저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그의 죄과를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죄과를 갚으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전진적 삶을 살아간 인물인 춘성은 결국 죽고, 그로써 푸구이는 엄정한 평가를 내린다. 문화대혁명의 허구성에 대해, 그리고 뛰어났지만 생명력을 상실한 개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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