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p.
..반면 동등대우의 법적 책임을 지니지 않는 이상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은 개인보다 매력적인 개인을 우대하는 행위 자체가 도덕적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개인적 영역에서 우리는 흔히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과의 친교에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려 애쓴다. 인간의 겉모습에 대한 우리의 미적 판단이 정치적 힘이나 상업자본이 왜곡한 인종적, 문화적 편견에 온전히 종속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겉모습에 대한 선호는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나 유머 감각이 출중한 개인을 선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 P-1

30p.
..시간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외모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던 나의 겉모습에서 어느 날 작은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한다면, 나는 퍽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장애가 있는, 아픈, 뚱뚱한, 나이 든, 어떤 종류의 상처나 흔적을 가진 몸에게서 "나는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라는 고백을 듣는다. 그들의 말을 그저 ‘정신승리‘나 터무니없는 나르시시즘이라고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는 자신이 늘 들여다본 ‘외모‘가 삶의 두터운 시간을 입고서 얼마간 아름다워진 순간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겉모습이 곧 나의 실체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 P-1

64~65p.
...내가 무엇인가 마음에 든다면 ‘왜‘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다. ‘내‘ 마음에 들어서 입는다고 말하지만 그런 선호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결정된 흔적이다. 어떤 옷이 마음에 든다면 그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도 고려할 문제다. 이렇게 옷의 배경에 있는 정보를 탐색하는 데는 돈, 시간, 수고로움 같은 비용이 든다. 디자이너 옷이 아니더라도 어떤 옷이 내 삶의 방식이나 가치 기준에 맞는지 탐색하는 데는 정보를 찾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없으며 남들이 좋다는 옷, 멋지다는 옷이 나에게 맞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삶이 주어지는 동안 적당한 옷을 계속 찾아가는 일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 거다. 게다가 지금 같은 대전환의 과도기라면 과거의 유산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더더욱 감수할 만한 것이 아닐까. - P-1

83p.
...디지털 인체계측학을 활용한 과학 지식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짜 과학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설명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다. 이처럼 ‘왜‘를 말하지 않는 과학의 속성은 "모든 근거 있는 믿음의 밑바탕에는 근거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표현된다. - P-1

92p.
..실제로 편견은 고정관념과 같은 인지적 요소보다 호감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목할 점은 편견을 강화하는 감정적 요인이 강한 적대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무지와 정보 부족, 낮은 접근성으로 생기는 불안과 불편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잘 모르고 많이 접하지 않은 낯선 대상에 대해 편견을 강화한다.... - P-1

121~122p.
..의료인류학자 아네마리 몰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소비자–시민의 기호와 욕망은 쾌락과 윤리가 융합하는 방식으로 양성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시민은 건강이라는 ‘선한 가치‘를 위해 쾌락을 더는 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쾌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도록 식품·건강 산업이 소비자의 욕망을 조형한다. ‘건강하고 맛있는‘ 제품을 광고하는 식품 포장을 분석하며 몰은 기업들이 ‘건강하지 않은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소비자‘가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 ‘차별화된 취향을 체화한 소비자‘를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심혈관 질환을 방지하고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유기농 주스‘나 ‘좋은 유산균을 함유한 요거트‘ 광고의 핵심은 건강할 뿐 아니라 맛있다는 점이다. 건강한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취향은 오랜 시간의 사회적 교육과 훈련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고상하다. 탄탄한 몸을 만들기 위한 나의 노력은 쾌락을 억누르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이라는 선한 가치를 향한 즐거운 일상과 차별화된 취향의 실천으로 재탄생하며, 전시해 마땅한 것이 된다. - P-1

155p.
...나와 타인이 서로 맞서는 상호대칭성에서는 얼굴을 살리는 대화의 윤리가 결코 도출될 수 없다. 나와 타인의 비대칭성, 다시 말해 둘 중 누군가 한발 먼저 물러나는 용서 혹은 사죄의 정신 또한 나를 타인에게 증여하는 대화 윤리의 핵심이다. 나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사소한 모욕이나 비방을 너그러이 눈감아 주는 것은 내가 먼저 나를 줌으로써 나와 타인의 얼굴 모두를 성스럽게 만드는 선물 기술에 속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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