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다. ‘마음 놓고 행복해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다는 사실을. 행복은 계절처럼 큰 단위로 오지 않고 몇 달씩이나 지속되지도 않는다. 마감이 코앞이니 당분간만 우중충한 채로 지내겠다는 다짐은 영영 흐린 기분으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마감 뒤엔 또 다른 마감이. 숙제 뒤엔 또 다른 숙제가 있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요령껏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야 한다. 작고 귀여운 기쁨이라도 모아야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 P-1
..밥그릇, 칫솔, 탁상 거울, 집에서만 쓰는 안경. 매일 쓰는 것이 아름다워야 일상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언제까지 예쁜 카페나 근사한 숙소로, 비일상으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일상을 가꿔야 한다. - P-1
..여러 사람의 다른 듯 비슷한 장소 궁합 풀이를 종합해 본 후에 나는 무언가를 짐작하게 됐는데, 바로 장소 궁합은 ‘그곳에서 내 모습이 어땠는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순수한 몽골 사람들처럼 맑아진 나, 일본 시골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행동하는 사려 깊은 나, 북유럽 사람처럼 담백한 일상을 보내는 나. 성공한 여행 서사에는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등장했다. 어떤 장소를 거듭 찾아가는 이유도 실은 거기에 데려다 놔야만 나오는 자신의 좋은 면을 보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 P-1
...반면 W는 사진을 찍는 대신 손으로 그것들을 만져 보는 편이었다. 나무 이파리나 돌담을 아이처럼 툭툭 건드리며 걸었다. 그리고 장소를 떠나기 전엔 담배를 한 대 꼭 피웠다. 시간을 들여서 아주 오랫동안. 그건 뭐랄까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는 사람이 치를 법한 특별한 의식 같아 보였다. - P-1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필연적으로 유해해진다. 특히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 날이면 더더욱.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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