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 ..소중한 것이 곧 신이 된다. ..필자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소중한 것과 두려운 것은 신이 된다. - P-1
28p. ..지금도 솎아내기는 계속되고 있다. ..낳고 나서 솎아내는지, 낳기 전에 솎아내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도 가장 효과적인 솎아내기일지 모른다. ..다양한 수단으로 솎아내진 아이들 대신 애완동물과 캐릭터 상품이 세상에 범람한다.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아이들이, 우리를 위한 진혼의 아이돌이, 영상 속에서 인형처럼 완벽하게 웃으며 우리를 응시한다. - P-1
70p. ..아닌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나열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쓸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은 대체품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상실의 예감을 지니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는 상실의 아픔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P-1
164p. ..바벨의 탑 때부터 파괴의 예감이 존재하는 곳에는 높은 건물을 짓게 돼 있다. - P-1
177p. ..여기가 도쿄의 중심. 자연으로 뒤덮인 일왕의 성. 과거에 이곳에서부터 소용돌이를 그리듯 도시가 형성됐다. 교토가 바둑판이고, 오사카가 바다에서부터 강을 따라 동서로 확장된 것과는 다르다. ..확실히 이곳은 늘 정지해 있고, 주위 도시만이 눈이 핑핑 돌아갈 것처럼 변화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모두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 P-1
188p. ..도쿄는 그림자도 배제해왔다. 그때 이래로 절전이 장려되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환한 도시는 없을 것이다. 어둠은 제거되고 사물도 사람도 밝게 비춰진다. ..그건 일본화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그림은 순간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변화해가는 시간 자체를 그린다. 순간이라면 그 시각의 빛을 그리고 그 빛이 자아내는 그림자도 그려내야 하지만, 흐르는 시간 전체를 그린다면 그림자는 의미가 없다. ..일본화는 이 경치를 담았던 것이다. 그림자도 어둠도 없는, 한없이 이차원 애니메이션에 가까워가는 이 세계를. - P-1
246p. .."맞아, 맞아. 나이 많은 사람들 그림이 무서워. 이렇게 보면 애들 그림은 되레 너무 잘 그린 것 같다니까. 일만 하고 사느라 그림 같은 건 그린 적도 없는 나이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그런 게 무섭지." - P-1
259p. ..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 ..봤다고 생각하는 과거. ..하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것. ..그건 조금도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주 평범하게 체험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P-1
311p. ..그렇다면 묘비명에 새겨진 이름, ‘도쿄‘라는 글자는 영원히 붉은색이다. 피가 통하는 이름이 ‘언제까지고‘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그 선명한 붉은색을 눈에 아로새길 것이다. ‘언제까지고‘ 그 글자를 우러러보고, 이윽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그 앞을 지날 것이다. 무수한 각자의 인생을 ‘과거형‘으로 하기 위해.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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