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은 그녀의 편지를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즐긴 것은 문체였고, 그것만으로 편지의 모든 풍부함과 의도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부분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기록’이라는 문학의 목적 자체를 놓치고 말았다. 문체는 쓰디쓴 액체를 담아 세상에 권하는 하찮은 그릇에 불과하다.... - P-1
...그녀는 자신도 죄인임을 알고 있었다. 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온갖 색깔의 사랑을 포함할 만큼 광대했지만, 그 안에 폭압적인 그림자도 없진 않았으며, 결국 자신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비열한 굴레에서 벗어나길 갈망했지만, 딸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강렬해서 감당할 수 없었다.... - P-1
...소년들은 거기서 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은 침묵보다 가치가 없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시는 더욱 가치 없는 형태의 말이었다.... - P-1
...이 마누엘의 사랑은 문학을 흉내 내어 생긴 것이 아니었다. 50년 전 프랑스의 한 독설가는 "사랑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면 결코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지만, 그에게는 이런 말이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 P-1
...이제 그는 사랑에 관한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발견했다. 가장 완벽한 사랑에서조차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똑같이 착하고 똑같이 재능 있고 똑같이 아름다운 두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서로를 똑같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세상에 없다.... - P-1
.."하지만 마누엘, 우리 마누엘. 네가 어렸을 때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줬는지 기억 안 나니? 시내 여기저기를 기꺼이 돌아다니면서 작은 심부름을 해줬었는데. 내가 아플 때는 식당에 가서 수프를 끓여 달래서 가져오기도 했잖아."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줬는지 기억나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 P-1
...간밤에 선장은 나와 함께 앉아서 딸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가 손으로 턱을 괴고 화롯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어. ‘가끔은 딸아이가 멀리 여행 중이고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딸아이가 영국에 있을 것만 같아요.’ 이런 말 하면 넌 나를 비웃겠지만, 선장은 자신이 늙을 때까지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구나. - P-1
...그는 모험가의 여섯 가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타인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하되 자기 얼굴과 이름은 바꾸는 능력, 타고난 말솜씨, 무궁무진한 독창성, 비밀주의,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재능,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부자들을 경멸하여 사기를 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마음까지. - P-1
..스무 살이 가까워지면서, 피오 아저씨는 자신에게 세 가지 삶의 지향점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다소 이상한 형태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즉, 다채롭고 은밀하고 전지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는 자신이 멀리서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고 본인들보다 그들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공적인 삶에서의 명예와 지위 따위는 저버릴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이 가끔은 행동으로 이어져서 국가적, 개인적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 P-1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지만, 애욕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가까이 다가갈 때 그녀의 얼굴에 살짝 어리는 불안의 흔적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처럼 애욕을 부정하는 것 자체에서 애틋한 애정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가장 예상하지 못한 관계에 숨어 있는 희미한 열정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런 열정은 시종일관 권태로운 의무에 바쳐진 일생마저도 달콤한 꿈처럼 지나가게 만들 수 있었다. - P-1
...우리는 놀라운 수준의 훌륭한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와서, 우리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희미하게 기억한 채 살다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 피오 아저씨와 카밀라 페리촐레는 그들보다 앞서 칼데론이 스페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상계 수준의 연극을 페루에서 일궈내려고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었다. 걸작이 목표로 하는 대중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 P-1
..모든 부자들이 그러하듯,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그들의 집과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든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광범위한 독서를 한 사람들만이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 P-1
...이제 미모가 사라졌으니 헌신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이러한 가정은 그녀가 애욕으로서의 사랑 외에는 어떤 사랑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물론 애욕으로서의 사랑은 관대함과 배려 속에서 성장하고, 꿈처럼 아름다운 장면과 위대한 시를 낳는다. 그럼에도 그런 사랑은 가장 분명한 이기심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 사랑은 오랜 예속과 자기혐오, 조롱, 크나큰 의심을 겪어낼 때까지는 충실한 애정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그런 사랑 속에서 일생을 보낸 많은 사람은 어제 개를 잃어버린 아이보다도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 - P-1
..그리고 그 순간, 소녀 시절부터 집요하게 카밀라를 괴롭혀온 외로운 절망의 파도가 후아나 수녀의 분수와 장미꽃들 사이에서, 그리고 나이 지긋한 수녀원장의 흙 묻은 다정한 무릎 위에서 쉴 곳을 찾았다. - P-1
...그녀는 다짐했다. "이제는 나도 알아야 해. 세상 어디서나 은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삶의 목표로 삼았던 특성들이 어디에나 있고, 세상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것을 말해 주는 새로운 증거에, 마치 소녀처럼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 P-1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P-1
(해제) ...피오의 사랑은 "애욕"(140쪽)을 부정하면서(부정당하면서) 비틀리는데 그 경우엔 대개 가학적인 속성을 갖게 된다. 상대가 느끼는 고통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그 고통을 인내하는 모습을 보며 충성을 측정하는 식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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