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p. «빛 속으로» ..기분 탓인지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아마도 이 군 앞에서 적어도 이름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였었나 보다. 아무렇지 않은 기분으로 그를 대할 수 없었던 것은 내 마음속에 비굴함이 존재한다는 증거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조금 허둥거리며 이렇게 물었다. - P-1
118~119p. «천마» ..특히 가도이의 극히 인문학적인 설명에 의하면 조선의 청년은 하나같이 겁쟁이인데다 비뚤어진 근성을 가지고 있고, 뻔뻔하고, 심지어는 당파심이 강한 종족이라는 것이다. 다나카도 그 좋은 표본이 도쿄에서 알고 지내던 현룡이라고 했다. 도쿄의 유명한 작가 오가타가 경성에 왔을 때 오무라의 주선으로 조선의 몇몇 문인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는데, 오가타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현룡에게서 조선인 전부를 보았다고 한 것은 역시 날카로운 예술가의 혜안이라고 찬탄했다. 오가타가 여기에 조선인이 있다고 외치면서 현룡을 가리켰을 때, 실제로 조선의 문인들은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현룡은 너무나 득의양양하게 히죽히죽 웃으며 기뻐했던 것이다. - P-1
181p. «풀이 깊다» ..산간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뭔가 하늘에서 내려준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을 바란 나머지, 언젠가는 행복의 나라로 인도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몸을 호랑이에게 맡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인식은 가슴이 꽉 조여드는 느낌이 들어서, 그저 이런 두려운 현실로부터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들은 조선인은 흰옷을 벗어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교리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그의 눈앞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장 입구 포플러 나무 아래 서 있던 작은아버지와 코풀이 선생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 P-1
210p. «노마만리» ..사실 1945년이란 시기의 조선은 참으로 형형색색의 인간을 창조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기는 모르되 이 베이징 천지에도 얼핏 보기에는 범놀음을 하는 범가죽을 쓴 개들이 많을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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