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p. «줄 서기» ..인류의 적응력은 유명하지만, 향상된 생활 형편만큼 인간이 빨리 적응하는 것은 없다.... - P-1
57~58p. «줄 서기» ..푸시킨은 망설임 없이 줄 끝으로 가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와중에도 너덜너덜한 외투를 입은 남자 한 명이 가까운 골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푸시킨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친절하게 손을 흔들어 알려주었다. ‘여기예요. 이쪽이에요, 친구.‘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 남자가 와서 줄을 서면, 푸시킨은 더 이상 줄의 맨 끝이 아닐 것이다. 아니, 사실 그 무엇의 끝도 아닐 것이다. - P-1
73p. «티모시 투쳇의 발라드» ..세상이 장원과 오두막으로 나눠져 있던 시대는 이미 먼 과거가 되었다. 대신 우리 시대에는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이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팔자를 고치려면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거나 철도사업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던 반면, 지금은 일주일에 추가 수입이 50달러만 생겨도 사다리를 한 단 더 올라가 조금 더 맛있는 수프, 조금 더 세련된 셔츠, 자연광을 조금 더 받는 거실을 누릴 수 있다. - P-1
106p. «아스타 루에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나는 이미 스미티가 덩치와 달리 부드러운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나란히 서고 보니, 그가 십중팔구 그 덩치 때문에 부드러운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처럼 큰 덩치로 다른 사람들 머리 위로 우뚝 서 있다가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자세를 고치는 법, 목소리를 부드럽게 내는 법, 몸짓에 서투른 느낌을 조금 섞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그는 북극곰의 몸을 한 판다였다. - P-1
146p. «나는 살아남으리라» ..넬의 어머니와 계부 존은 파크 애비뉴와 83번가가 교차하는 곳의 웅장한 건물에 살았다. 엘리베이터 여러 대가 두 곳에 나뉘어 설치되어 있고, 도어맨이 네 명이나 되는 곳이었다. 두 사람이 사는 아파트의 여러 방은 워낙 어둡고 풍부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보자마자 도덕적인 자신감이 느껴졌다. 침실이 하나뿐인 우리 아파트가 달걀 껍질 색이나 아이보리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보면, 넬과 내게는 그런 도덕적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 P-1
189p. «나는 살아남으리라» ...나는 페기가 배신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넬의 작은 카메라 화면 속에서 남편의 비밀스러운 외출을 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순수한 기쁨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곳에 존재하는 기쁨, 게다가 그녀가 없어야만 가능할 것 같은 기쁨. - P-1
239p. «밀조업자» ..아, 우리가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처음에는 의자에 앉은 채, 그다음에는 일어서서. 우리는 이 거장 연주자나 이 작품이나 바흐에게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공유한 기쁨, 공유를 통해 더욱 풍부해진 그 기쁨에도 박수를 보냈다. - P-1
253p. «디도메니코 조각» ...그러나 디도메니코가 의뢰받은 작품의 완성보다 예술가들의 교육에 더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의 작품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바로 그가 1475년에 로렌초 데 메디치를 위해 그린 <성수태고지>였다. 내 증조부는 1888년 유럽 대륙 순회여행을 하던 중에 파리의 어느 미술품 거래상에게서 그 그림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뉴욕의 집으로 가져와 가장 상석에 걸어놓았다. 그가 식당에서 앉는 자리 뒤편의 벽 높은 곳. 그는 그 그림을 볼 수 없는 위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의 이미지에 그 그림이 융합되는 위치였다. - P-1
262p. «디도메니코 조각» ..사람의 성격은 확실히 태어난 뒤 10년 동안 형성되지만, 그 10년의 분위기는 그 사람이 태어나기 전 10년 동안 결정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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