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p.
...기분 좋게 좋아하는 것과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해서 쓰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커피에 대한 글을 써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고 커피에 대해 쓰려고 하면 그 글은 커피잔 그림과 함께 카톡에 돌아다니는 ‘어르신 짤‘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45~46p.
..처음엔 스님들 수행하시는 데 방해되는 마구니 같은 존재가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조차도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거나 누군가의 마음에 담기는 것도 욕심,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누군가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하는 것도 결국 다 마찬가지로 욕심이었다. 나쁜 인연보단 좋은 인연이 좋겠지만 그보다는 인연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좋다는 S스님의 말을 나는 마음에 굳게 새겼다. 스님들도 나도 다들 성불해서 다음 생애엔 아예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48~49p.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내 안에 한 번도 더럽혀지거나 깨진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는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니. 물론 나를 위로하려고 해주신 말은 아니었지만 절에 있을 때 책상에 붙여놓았던 문구, 자등명법등명이 생각났다. 빛처럼 붙들고 갈 존재가 있고 그것이 원래부터 내 안에 있다는 말이 그 순간 얼마나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던지. 그 불성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안의 불성이라는 것을 믿어봐야겠다 결심했다.

86p.
..조금 더 나이가 들자 세상에 약점 잡힐 일을 일부러 만드는 사람이 어른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고, 책임지고 감당하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더 어른 같다....

102p.
..장소가 아닌 장소에 있다 보니 갖가지 상념이 들었다. 상념이 들다가 내가 상념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탑승동 안을 걷고 또 걷는 수백 명의 우리들이 한 개비의 담배 안에 들어 있는 상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탑승동이 하나의 담배라면, 불꽃을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연기라면, 담배 안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우리는 하나의 상념이겠지. 다만 우리는 비행기 티켓이 없는 승객이므로,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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